제 8과: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라
1. 말씀읽기: 마태7,21-27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라 (루카 13,25-27)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내 말을 실행하여라 (루카 6,47-49)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 마음으로 주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삶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슬기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 듣고 실천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됩시다.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모두 완벽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 성숙해 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다닌다고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알면서 공동체를 깨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를 받아서 뒤로 물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성당 다니면 뭐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 품성을 그래도 간직하면서 살아갑니다. 남이 변화되기를 바라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신앙생활 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봉사도 아닙니다. 자기 취미생활입니다. 신앙생활과 취미생활은 다릅니다. 취미생활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기쁨을 얻고, 친교를 맺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면서 취미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손해를 보기도 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향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하려 하는 것은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달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취미생활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앙도 취미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취미로 하다보면 ① 힘들면 포기합니다. ②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포기합니다. ③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하려고 합니다. ④ 내가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다보면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취미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당 다니니까 그 정도 하지 안다녔으면 더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줘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위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기 치거나 이용하려 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던 사람들. 하느님의 목장으로 인도하던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보셨습니다. 목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양들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 자신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하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파견 받은 제자들이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지 복종시켰습니다.”라고 보고했던 것을 기억해 봅시다. 그런데 그것이 지속되어야지 일회적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면 무슨 상을 받겠습니까?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불법을 일삼는 자들은 율법학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고, 결국 거짓 예언자들의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결국 불법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남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그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로 인정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유다도 마음에 배신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도들과 같이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언하고 기적을 행하고, 악마를 몰아내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공덕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그에게 이 능력을 주셨는가 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신앙인”이라면 항상 기도합니다. 힘들수록 기도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살아가기에 편을 가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을 찾아서 행하지도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행합니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과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야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술과 오락에 취미를 들이면 운동실력에서는 멀어진다는 것을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사람처럼 어떤 시련이 들이닥친다 할지라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당에는 다니지만 그 뿌리를 예수님께 두지 않고 사람에게 두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아서 시련이 주어지면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서 안 나오는 사람,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안나오는 사람. 그 이유는 뿌리를 예수님께 내리지 못해서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 위에 모든 것을 올려놓고 살아가는 신앙인과, 세상 것 위에 신앙을 올려놓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삶도 다르고, 열매도 다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 위에 모든 것을 올려놓고 살아가는 신앙인, 뿌리를 예수님께로 두는 신앙인들은 조건이 없습니다.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변명하지 않습니다.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하면서 살아갑니다. 내가 지금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직 예수님께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신앙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운동을 할 때도 상대방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내가 연습을 안 해서 입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입니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변함없이 그분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행동보다는 입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다도 그랬습니다. 함께 전도여행을 떠났고, 많은 기적을 행했을 유다. 주님의 제자로 3년간 폼 나게 살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목 메달아 죽었습니다. 살다보면 당신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안에 내 뜻이 더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반석위에 집을 지으려고 터라도 잡으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봅시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성호경을 긋는 사람은 뭔가 달라야 합니다. 삶으로 신앙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뿌리를 깊이 내린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나보기).
– 고백성사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고, 성체성사로 강한 힘을 얻어야 합니다.
– 형제자매들에게 인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기도는 필수입니다(기필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랍니다.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이름으로 가르쳤고, 그 스승의 말을 전하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적으로 “신앙이 어떻고, 이것은 저렇고” 하면 상대방은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으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열성을 쏟아 부을 때, 그의 마음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상대방은 나를 권위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나의 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십니다. 공동체는 더욱 활기있게 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와 닿았습니까?
② 가끔은 신앙인이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앙인이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어떤 권면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까?
③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런데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고, 반석위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은 형제자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4. 실천사항
①
②
③
④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