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늘 묵상했던 말씀이지만 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의로움에 저를 묻어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빠져서는 안되는 의로움에 대해

다시한번 돌이켜 보는 시간입니다.

늘 멋진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한다지만 진정 의로움으로 가득한 저였는지요.

공동체에서 사랑을 배워가면서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저의 입을 움직이고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며

제 색을 죽인 채 살아오진 않았는지요.

참 많은 생각이 저를 감쌉니다.

누구와 맞지 않아서~

제 말을 들어주고 따라 주지 않는다 하여서~

제가 지금 인정을 받지 못해서~

여러 가지 이유아닌 이유로 저의 의로움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의로움의 살해자는 바로 저임을 모르고

다른 누군가를 탓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세례자 요한의 겸손과 의로움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늘 그처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주어진 관계속에서 저의 욕심과 이기심이

협상의 입과 손을 내밀게 하였던 것은 아닌지요.

따라올 수난을 알면서 의로움으로 바로서는 그 모습!

죽음에 다다른다 할지라도 \”아니오\” 라고 말하는 그!

겸손과 끝없는 사랑이 있기에 안을 수 있는 의로움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을 내어놓으며 드리는 사랑에서 오는 의로움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원을 그리는 것임을 새삼 가슴에 담아 봅니다.

오로지 아버지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그의 목을 요구하는 헤로디아나 그녀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헤로데나

그냥 바라보고 있었던 고관들이나 무관들 모두 세례자 요한을 이기진 못했습니다.

그의 목을 기꺼이 내어놓았기에 모두다 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저였다면 잘못을 인정하면서 살려달라 애원하며

저의 목숨을 먼저 구걸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안아주실 것을 가슴으로 느끼기 보단

주어진 현실앞의 제 목숨이 먼저 보였을테니까요.

참 부족하지요?

그처럼 되기를 청하면서 실상 전 움직이지 않았었던 것은 아닌지요.

바라고 청하기만 하면서 제가 의로움으로

새로나기를 위해 노력하지 않았음을 반성해 봅니다.

제 앞에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의로움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그 다음엔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의탁하면서 한결같은 미소로

미움이 아닌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있었어야 했는데 그리하였는지요.

공동체에서도 그런 의로움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랑의 관계안에서 함께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의 욕심을 키우기 위해 의로움을 꺽었던 저는 아니었는지요.

헤로디아나 헤로데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저가 의로운 사람처럼 고개를 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여러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안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려 소리를 지릅니다.

장소를 불문하고…….

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임에 신중해야 함인데

제 의견을 세우려 핏대를 세우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이를

꺽으려 했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우선이지 보다는 제 권위가 먼저였던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의로운 이의 말을 막아버리면서 그를 배제시키며

심지어는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시고 판단하시는

신부님의 말씀도 듣지 않으려 하면서 등을 돌리고

같은 욕심을 가진 고관들이나 무관들이 되어 뒷짐을 진 채

자리를 잡은 채, 바라보면서 살인미소를 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기념일을 맞이하여

의로운 저가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해 봅니다.

가장 기본인 사랑위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의로움의 싹이 자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하렵니다.

공동체에서도 의로운 모습이 아니라면 당당히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저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러각도에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헤로디아의 모습에서도~ 헤로데의 모습에서도~

그리고 고관들과 무관들의 모습에서도 저를 보았습니다.

장을 맡아 봉사하면서 저의 이익을 위해 권위를 위해

의로운 한 사람을 옭아맨 적은 없었는지요.

그리고 보조역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한 사람을 덮어버리려 했던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함께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일원으로서 무너져 가고 있어도

그저 방관하면서 구경꾼의 자세로 서 있진 않았었는지 가슴 깊이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아직 의로움의 꽃을 피우며 향을 내진 못하지만

말씀안에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모난 부분은 다듬으면서 새로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사랑에서 의로움의 샘이 솟구치게 하시어

언제 어디서나 의로움의 샘물로 갈증을 지우게 하소서.

수난의 두려움에 고개숙이는 저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웃고 계심을 깨달아

두려움에 저를 버리지 않고 사랑의 힘으로 고개를 들어

흙을 묻히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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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에 1개의 응답

  1. 아리랑 님의 말:

    아멘!
    오늘이 요한 성인 수난 일 임을 알았습니다. 잘 모르던 것을 샘지기님을 통하여 알아가는 것이 기쁩니다.
    말씀안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현재의 공동체 안에서 말씀의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반성하며 기쁨과 희망으로 사랑이신 주님께 나아가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뒤에서 바라보기에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요한 성인의 의로움을 간직하기 위해 현재에서 노력하시는 모습 또한 정말 아름답습니다.
    ‘자신을 내어놓으며 드리는 사랑에서 오는 의로움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원을 그리는 것임을 새삼 가슴에 담아 봅니다.’ 저 마음에 새기어 봅니다.*^*
    모기 입이 비뚤어졌다지만 살짝 마시고 갑니다. 요즘은 신종플루에 걸리면 위험하다고 합니다.
    샘지기님! 영 육 간의 건강하심을 기도합니다.

  2. 샘지기 님의 말:

    《Re》아리랑 님 ,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힘으로 기쁨과 행복이 드리운 삶을 살아간다면
    비로소 의로움의 길을 걷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으로움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말씀안에서 머무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청해 봅니다.
    아리랑님처럼~~
    행복한 주일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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