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아들 면회를 갔다가 서점에 들렀습니다.
여러 가지 책들을 보면서 아들도 저도 두어권씩 골랐지요.
숙소로 돌아와서 아들이 뜬금없이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의 멘토(mentor)는 누구예요?\” 라고…..
그래서 제가 성경을 가리켰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어이없는 듯 웃었습니다.
전엔 특정한 인물을 저의 멘토로 정하고 닮으려 하였던 적이 있었지만
신앙생활을 하고서는 \”성경\” 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고
또 그 안에는 아버지의 호흡이 느껴지니까요.
남들은 저보고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랍니다.
미치도록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 늘 곁에 말씀으로 함께 하심에 전 행복하답니다.
말씀이 곧 아버지시고 아버지께선 말씀이 되시어
제 곁에서 또 다른 저를 보게 하십니다.
못난 저가 싫어서 보지 않으려 해도 아버지께선 거울을 제게 비추이시지요.
저의 부족을 낱낱이 볼 수 있고 저의 어리석음도 보여주는 거울!
바로 \”성경\” 이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라고 하십니다.
제가 진정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면서
다른 이를 아버지께로 전교할 수는 없음을 생각해 봅니다.
믿음의 확신이 제안에서 기쁨으로 승화될 때
비로소 제가 다른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으니까요.
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남의 단점을 입에 올리며 그를 심판하는 저라면
어둠의 기운이 저를 덮어 빛을 보지 못함을 이젠 깨달았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말들로 상처를 주고 등을 돌리게 합니다.
제가 그를 아프게 하지 않아도 그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감인데
그를 더 어둠으로 몰아 넣었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언젠가 강론중에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초보는 복잡하게 가르쳐주지만 프로는 단순하게 가르치는 법이다.\” 라고….
이젠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이는 말보다 실천으로 보여줄 것이고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이는 실천보다 많은 말을 필요로 합니다.
험담과 단정적인 말로…..
그 무리중에 제가 들어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말씀에 저를 비추이면 저의 모난 구석이 잘도 보입니다.
기가 죽은 저를 그냥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총으로 안아 주시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아버지!
저의 영원한 멘토는 아버지와 말씀이랍니다.
그래서 제 눈에 있는 티를 보기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오랫동안 머무니 진정한 고요를 즐길수 있었고
가슴벅찬 기쁨과 행복의 힘을 느끼며 평화를 담을 수 있게 되었지요.
집에 있던, 운전을 하던, 성당에 있던,
늘 함께 하는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찹니다.
제 단점도 보지 못하고 남의 단점만 꼬집어 내었던 저가
그나마 철이 들어 가고 있음도 바로 아버지의 사랑때문임을 압니다.
그래서 전 다른이의 단점을 보기보단 그 시간에 저를 추스립니다.
그의 단점을 파헤치고 그의 모난 구석을 찾아내는 시간에 차라리 저를 추스립니다.
그게 남는 장사지요? ㅎㅎ
건강하고 똘똘한 세포가 어둠으로 가득한 저의 기운에 눌려
나쁜 세포가 되면 어떡해요. 그치요? ㅎㅎ
잘났던 못났던 모두가 아버지의 자식이고
저 또한 못난 무리속에 있을수도 있음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그의 단점을 찾아내는게 아니라
그저 아버지의 사랑으로 같이 대하는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진 아버지께서 하실 일이니까요.
자식의 단점을 고쳐주시고 어루만져 주실 아버지시니까
그저 전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말씀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사랑으로 가득채울 것을 다짐해 봅니다.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으로 담아야 사랑의 꽃을 피우는 방법과
믿음의 화초를 키우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힘들게 손에 쥔 어여쁜 꽃이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면
저보다 그는 영원히 아버지로부터 멀어져 갈테니까요.
그것은 제 잘못이잖아요.
제가 눈이 어두워서 그를 구렁텅이로 빠뜨린 격이 되니까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시면서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정말 가슴이 뜨끔할 정도로…..
제 단점을 보기보단 남의 단점에 대해 말하기를 즐기며 살아온 저를
꾸짖는 듯 하였습니다.
제가 보는 틀로 저 또한 그리 판단됨을 모르고
어리석은 삶을 살아온 저는 아니었는지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어야 했는데
저의 욕심과 아집의 틀에 박혀 그리하지 못했음을 반성해 봅니다.
자비로운 사람으로 새로나기 위해 성령의 은사를 안고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더 힘들게 사는 형제를 도리어 격려해 주면서 함께 하였는지요.
아버지!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가 저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사랑이 넘치는 모습으로 늘 말씀에 귀를 기울려
많은 말보단 행동으로 말하게 하소서.
그의 열매를 탓하기 전에 제 열매를 돌아볼 수 있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험담과 시기와 질투속에서 오는 티를 만들어
되려 형제에게 붙이는 어리석은 저가 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아멘.
찌뿌드듯 해야 한다고 할 까요, 흐리 어리 해야 한다고 할 까요, 오늘의 하늘과 구름과 바람들이 그렇습니다. 중국 속담에 마르지 않는 장강도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른다. 라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그렇게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좋은 습관 입니다. 오늘의 날씨는 변해야 하는 계절에 알맞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습관을 가진 것이나 변화를 맞으려는 날씨나 주님께서 주신 것 이어서 자신에 충실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못한 저는 바보입니다.
험담과 단정적인 말로….. 그 무리중에 제가 들어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말씀에 저를 비추이면 저의 모난 구석이 잘도 보입니다. 샘지기님의 묵상을 생각하며 또 바보인 저를 봅니다. 오늘은 자꾸 바보인 저만 보입니다.
“엄마의 멘토(mentor)는 누구예요?” 라고 말하는 정답고 사랑스런 자제분과 샘지기님의 모습이 풍경화 같습니다. 사랑으로 그리신 풍경화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풀림을 느낌니다. 샘지기님은 역시 샘 지기 이십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 할 수 있게 샘지기님 건강하세요. *^*
《Re》아리랑 님 ,
누군가에게 평화를 안겨주는 분!
바로 아리랑님이시네요.
겸손된 고백에 고개숙여집니다.
날씨는 흐리지만 마음만은 화창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