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과;신앙인의 삶

 

제 7과: 신앙인의 삶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

1. 시작성가: 가톨릭 성가 446장

2. 말씀읽기: 마태오 7,21-27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25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27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3. 신앙인의 삶

 신앙인의 삶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는 삶이고, 그 삶은 바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내 주변에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들로 넘쳐 납니다. 그들의 모습을 본받아서 주님 마음에 드는 삶,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① 실천하는 신앙인

 예수님께서는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신앙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앙을 실천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주님을 부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거짓 예언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들의 생각을 가르쳤고,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악행을 자행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주님!”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입만 열면 성령을 찾고, 주님의 이름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들 때문에 상처 받아서 냉담하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성당 다니면 뭐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당 다니니까 그 정도 하지 안다녔으면 더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줘야 합니다.




 또 우리 주변에는 위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사기 치거나 이용하려 드는 사람이 종종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고, 그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실 때에는 사람을 보지 마시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고, 대충 하는 사람을 보지 마시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아름답게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행복한 신앙생활,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② 반석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신앙인들을 향하여 축복의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마음에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시련이 주어지면 사라져 버립니다. 외적인 것만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결국 시련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말씀의 실천입니다. 그가 바로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즉 말씀을 듣고 그것을 가슴에 깊이 품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이 비나 강물이나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슬기로운 신앙인은 결코 멸망의 길로 갈 수 없습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온다는 것은 시련과 유혹이 끊임없이 신앙인들에게 밀려오는 것을 표현합니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나의 신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나를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올려놓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석 위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면 어떤 유혹과 시련이 닥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게 됩니다.




③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는 하였지만 세상 시련과 바쁜 삶 안에서 예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들 입니다. 말씀이 입술에만 담겨 있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는 사람들 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실행하지 못했으니 결국 들을 귀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의 기초는 마치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처럼 약합니다. 약하다는 것은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당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1) 그 믿음이 반석위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니라 모래 위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 성사 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는 것, 기도 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행동입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다는 것은 성경을 자주 읽고, 가까이 하며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고 기도를 하고,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성사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바로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이 슬기로운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님 안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입술로가 아니가 행동으로 주님께 사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4.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

① 성경을 읽는 신앙인

 슬기로운 신앙인은 성경을 가까이 합니다. 성경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요, 내 삶을 안내해주는 삶의 네비게이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미사에 오실 때에는 반드시 성경을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② 미사에 참례하는 신앙인

 신앙인은 주일에는 꼭 미사에 참례합니다. 미사가 의무라 참례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주일미사에는 참례하십시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4대 축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부활 대축일, 성모승천 대축일, 성탄 대축일)에는 반드시 참례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에서 나와야 하고, 그 사랑의 행위를 통해 기쁨이 솟아나야 합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주일에만 성당에 가는 것”이 “왠지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옵니다. 그래서 새벽에 한 시간을 걸어와도 행복해 지고, 비를 맞으며, 눈을 맞으며 미사에 와도 행복해 집니다. 왜냐하면 미사 안에서 주어지는 은총과 축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고, 그렇게 평일미사에 참례함으로써 신앙이 말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③ 마음이 담긴 봉사를 하는 신앙인

 성당에 와보면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고, 없던 것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봉사하는 형제자매들인 시간을 내어 땀을 흘린 덕분입니다. 기도하는 신앙인들에게 봉사는 기쁨입니다. 또 참된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봉사하는 형제자매들은 자신의 일을 자랑하지 않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을 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예”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바쁜 일로 형제자매들과 함께 못할 때는 오히려 미안해하며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그런 봉사를 하는 형제자매들이 있기에 성당이 밝은 것입니다. 마음이 담긴 봉사를 하는 신앙인! 그가 바로 슬기로운 신앙인입니다.




④ 베풀 줄 아는 신앙인

 베풀 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드러나는 자리에서는 누구나 베풀 줄 압니다. 하지만 다수 안에서는 “누가 하겠지!”하면서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실제로 실험을 했는데 혼자 지나갈 때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즉시 응답을 하고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지나가다가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면 “누가 하겠지!”하며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누가 알아줘서가 아니라 그가 내 형제 자매이기에 베푸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있기에 베푸는 것입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자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움켜잡는 사람은 슬기로운 신앙인이 아닙니다. 움켜잡은 손을 펴서, 움켜잡은 마음을 열어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가는 삶. 그 삶이 바로 슬기로운 신앙인의 삶입니다.




⑤ 고통을 이겨내는 신앙인

 한 형제가 그렇게 사랑하던 딸을 잃었습니다. 너무도 똑똑하고 예뻤던 아이였는데, 부모님 마음을 언제나 기쁘게 해 주던 딸이었고,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아이였는데 암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꿈은 수녀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죽어가면서 아이는 부모님께 웃음을 드렸습니다. “언젠가는 다 죽잖아요. 그런데 아쉬운 것은 엄마 아빠에게 수도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그걸 못 보여드리네요. 죄송해요.”

 부모는 가슴이 무너졌지만 웃으면서 딸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고통을 이겨내며 웃으면서 하느님께로 가는 네 모습을 바라보니, 네가 입고 있는 환자복이 수도복 같구나! 예쁜 딸! 하느님 곁에 가더라도 부족한 부모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렴!”

 그 형제는 딸 아이를 가슴에 묻었지만 늘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 제 딸 아이를 데려가신 것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청이 있습니다. 딸 아이에게 영원한 안식 주시고, 천국에서는 아프지 않게 해 주십시오”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은 그 고통을 기도하며 이겨냅니다. 주님께서도 그것을 바라십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고통 속에서도 인내를 키우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기를 바라십니다. 나 또한 그런 신앙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4. 나눔 및 묵상

① 슬기로운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②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시련이 밀려옵니다. 나는 그 시련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혹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은 없었습니까?







5. 실천사항










6. 마침기도 및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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