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과: 의로운 신앙인의 십계명
1. 시작성가: 가톨릭 성가 49번- 옹기장이
2. 말씀읽기: 마르 9,33-37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3. 의로운 신앙인의 십계명
일상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자주 거울을 봅니다. 그런데 그 거울 속에서 가끔은 큰 인물을 볼 때가 있고, 또 더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가 자신을 큰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삶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늘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거울 속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로운 신앙인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①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져라.
영세를 받은 후 1-2년 내에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비자 교리 기간에는 교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 따로 머리 따로”가 되다보니 어느 순간 바쁜 일이 생기거나, 어떤 일을 통해 성당과 멀어지면 그 때부터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됩니다. “왜 성당 안나오세요?”라고 말하면 마치 가톨릭 종교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넘어선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서요. 이 문제 해결하고 나갈게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주 귀한 것을 샀습니다. 그런데 “이걸 괜히 샀나? 다른 것을 살걸!”하고 늘 생각한다면 내가 산 그 물건이 마음에 들 일이 없습니다. 배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선택했다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내가 선택한 가톨릭 신앙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어야 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 세례를 받으면서 “부족하지만 확실하게 믿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노력할 수 있고, 그래야 더더욱 큰 신앙을 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신앙생활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가 싫어서, 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하지 않으니까, 이런 저런 상처를 받아서…,” 하면서 신앙을 등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이런 어려움들을 이겨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참기 힘들어도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겨 냅니다.
한 자매가 성탄자정 미사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와 보니 누군가가 자신의 차를 받고서 그냥 가 버렸습니다. 그 자매는 “어떻게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나?”하면서 그날부로 성당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 자매는 신앙에 대한 확신은 없었던 것입니다.
한 자매는 세례 받은 후 성가대원들이 이끌어 성가대와 함께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화장실을 갔다 와보니 지갑에서 돈이 없어졌습니다. 너무도 놀랐지만 그 후로는 사람들에게 유혹을 주지 않기 위해서 봉헌금과 약간의 돈 외에는 가지고 다지니 않았습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그 일을 계기로 “혹시 내가 남을 것을 탐낸 적은 없었던가?”를 성찰하게 되었고, 탐내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이 자매는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신앙인의 모습은 웬만해서는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의로운 신앙인들에게는 전혀 낯선 말입니다.
②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라.
신앙인은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이 믿음은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졌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5,1-5)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은총을 받아 누리게 되었으니 지금 주어지는 시련이나 어려움들을 인내 롭게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의로운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고통은 자신을 성숙시키며 인내를 키워주고, 그 인내력을 통하여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게 해 줍니다. 기도하는 신앙인들에는 끈기가 따라오게 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끈기 있게 주님께로 향하는 삶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인들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희망은 어떤 처지에 있던지 감사하고 받아들이게 만들며, 기도하게 만듭니다.
물은 100도에서 끓습니다. 그런데 97도나 98도에서 멈춰 버린다면 물은 끓지 못합니다. 조금만 더 열을 가하면 끓는다는 것은 헛된 희망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날 것에 대한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멈추지 맙시다. 주님께서는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주저앉기를 바라지는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희망을 가지고 변함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덕을 쌓는 삶이고, 그 삶이 바로 구원에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내가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라십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강렬한 희망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확신이 없는 사람은 “해 주시면 좋고, 아니면 말고…,”하는 식의 마음으로 설 수 밖에 없습니다.
③ 신앙생활을 즐겨라.
예수님께서는 나를 괴롭히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고통 자체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기쁨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 아니라 희망의 사다리입니다.
대장이 부하 장병을 데리고 골프연습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너무 안 됐습니다. 신경질이나 대장은 부하 장병에게 “야! 이게 일이냐 놀이냐?”라고 투덜대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하 장병은 “대장님! 그게 일이라면 직접 하셨겠습니까? 저 시키셨겠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도 신경질이나 의무감으로 하면 일로 다가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서 하는 봉사나 교육 참여, 평일미사 참례 등은 일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주일을 기쁘게 지냅니다. 어떤 분은 주일을 지키시는 이유가 “빠지면 고백성사를 봐야 하니까 주일을 지키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주일미사에만 참례한다고 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주님께로 가야하고, 몸이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아버지 생신날” 자녀들이 왔는데 큰 아이는 마지못해서 왔고, 며느리는 빨리 가려고 안달이 났습니다. 작은 아이는 전날 온 것도 아니고 아침 먹을 때 와서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하고 돈 만원 주고, “제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 가야 해요.”라고 밥 먹자 마자 가 버리면 그 아버지는 어떨까요? 아버지의 생신에는 가족이 함께 모여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드리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며, 아버지께 사랑과 존경을 드리는 날입니다. 당연히 선물과 용돈도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마지못해 오고, 오자마자 가려고 하고, 선물은 고사하고 돈 만원 놓고 간다면 그 아버지는 행복할까요? 또 막내는 전화를 해서 “아버지! 이번 생신 때는 바빠서 못가겠네요. 생신 축하드려요!”하고 말로 때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래, 역시 착한 아들이야! 네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니 저 뒷산 과수원은 너에게 주마!” 그럴 아버지가 계실까요? 물론 사랑밖에 모르시는 부모님이신지라 그렇게 주고도 계산하지는 않으십니다.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부활을 희망하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미리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날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가 부모를 찾듯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님께로 모이는 것입니다. 기쁨의 장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형제가 본당에서 아주 열심히 웃으면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옆에 있던 자매가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매일 하는 일인데 힘들긴요. 그리고 내가 이것을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반면 어떤 형제는 성당에서 일하는 날이 되면 꼭 집이나 밖에서 일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날 때 즈음에 말끔하게 정장으로 차려입고 나와 “수고가 많으시네요.”하고 인사했습니다. 일로 다가오면 어떤 것도 하기 싫고, 또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원해서 한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군대에서 등산을 하는 것과 산이 좋아서 친구들과 산에 오르는 것은 다릅니다. 군대에서 행군을 하는 것과 성지 등을 걸어서 순례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행동이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다르기에 다른 것입니다. 마음만 바뀌면 똑같은 행동이라도 기쁘게 할 수 있고, 그것의 참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기쁜 일이라도 짜증나고, 하기 싫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신앙생활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의로운 신앙인들은 신앙생활을 즐깁니다. 말씀안에 머무는 것이 기쁨이요,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봉사하는 것도 기쁨이요,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 것도 기쁨입니다.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것도 기쁨이요,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것도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고, 참된 가치에 대한 이해와 앎이 있기 때문입니다.
④ 필요 없는 것들은 잊어라.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한 사람이 “혹시 수술이 잘못 됐나?” 하고 매일 꿰맨 상처를 풀어서 확인한다면 그 상처는 결코 낫지 않을 것입니다. 수술을 했으면 이제 낫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열심한 신앙인들 중에서 종종 과거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백성사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매번 아문 상처를 다시 파헤쳐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더욱 성숙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자신의 죄만 강조하다보면 우울해지게 되고, 기쁨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죄책감에 쌓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것들은 잊어야 합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했거나 손해를 끼쳤던 것들, 미워하는 감정이나 형제자매가 나에게 잘못했던 사소한 것들. 이런 것들은 잊어야 합니다. 잊어야 행복해 질 수 있고, 잊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참된 용서는 용서해준 것 까지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 안에서, 말씀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필요한 것을 기억하고, 필요 없는 것들은 잊을 수 있습니다. 또 필요 없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잊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정작 중요한 것을 기억하려 하면 잊어버리고, 필요 없는 것들은 자꾸 떠오르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힘을 빼니 굳이 좋지 않은 감정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이해도 된다고 합니다. 필요 없는 부분에서는 꼭 힘을 빼는 내가 되어 봅시다.
⑤ 신앙생활에 도전하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심지어는 무엇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떠내려가는 기분으로 나를 맡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지금 처해진 상황과 환경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행동으로는 옮겨지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를 저어가야 하지만, 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서 맡기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으면 목적지로는 갈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흘린 땀만큼 사랑의 은총이 밀려드는 것이고, 의로움이 커 가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예비자 교리를 이수하면 공부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겨우 기초과정”을 끝낸 것입니다. 또 교육 하나 다녀오면 마치 “교회의 박사”인양 어깨에 힘을 주기도 합니다.1)
신앙인들이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려면 “미사에만 참례하는 수동적인 생활” 보다는 적극적인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예비자 교리를 받았다 할지라도, 첫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 교리를 받았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을 잊어 먹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들은 내가“겨우 걸음마 수준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더욱 깊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 노력을 도전이라고 생각합시다. 왜냐하면 시간을 내어서 교육에 참석하거나 몇 주간의 성지 순례 등은 큰마음 먹기 전에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을 더 잘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을 필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강론 시간이나 성경교육 시간에 열심히 듣고 정리한 것을 가지고 묵상기도로 이어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머리로만 신앙을 받아들이면 입에만 신앙이 달라붙었다가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여, 일 년에 두 세 번은 성지순례를 통해 순교자들의 신앙을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예수님의 발자취나 사도들의 발자취, 성인 성녀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성지순례를 떠나기도 합니다.
또 일년에 한 두 번은 묵상 피정 등에 참례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인 증진에 힘씁니다. 고요 안에 머물면서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주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시간을 가지며, 흩어졌던 신앙생활을 바로 잡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도구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작은 봉사들을 실천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고자만 하면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오17,20)
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도전”입니다. 의로운 신앙인들은 늘 “도전”을 하며 살아갑니다.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에 가득 찬 도전은 언제나 큰 성공을 거두며, 더욱 의로운 삶으로 열매 맺습니다. 그리고 이 도전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온전한 투신으로 이어집니다.
⑥ 겸손한 신앙인이 되어라.
겸손한 신앙인은 말씀 안에서 신앙의 꽃을 피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단점까지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움츠리지도 않습니다.
참된 겸손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말씀 안에 머물 때 비로소 가능해 집니다.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줄을 알고,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열등의식을 느끼지도 않고,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 서로 높아지고 싶은 욕망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자리다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왕이 되실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들이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에 앉게 될 것임을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서로 다투며 순위를 정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모든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도 그런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 자리와 권력에 대한 욕구가 있기에 세상 사람들이 경쟁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는 서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질 때가 더 많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질투의 끝은 자신의 죽음이었습니다. 상대방 위에 올라서려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까지도 파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손수 보여주십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을 보았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신앙인
예수님께서는 서로 높아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제자들에게 어린이 하나를 세우며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9,37)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방법, 예수님의 큰 제자가 되는 방법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상대방이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서로 어울려 친하게 지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바로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님의 첫째가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백할 수 있고,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며,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은 비굴하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배우려 하고, 내가 한 것을 굳이 자랑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신앙인은 열심히 살아가지만 영광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그 영광을 상대방들에게 돌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한 형제가 열심히 봉사를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겸손했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신앙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해 놓고, 조용히 뒤로 빠지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겸손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란다.’라고 늘 말씀하시면서 ‘네가 하는 일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임을 명심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그 형제는 참으로 훌륭한 신앙의 스승을 만났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신앙의 스승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그 형제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괜히 시비 걸고, 말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겸손한 신앙인이기에 웃음으로 넘겨 버립니다. 의로운 신앙인이기에 “누가 뭐래도”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훈련과 굳은 믿음을 가진 기도를 통해 얻은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때론 그 겸손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용히 해 놓고 물러간 사람이 말이 없으니 엉뚱한 이가 자신이 했다고 생색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해 놓은 사람은 그냥 웃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⑦ 인간관계에 충실하기 보다는 신앙생활에 충실하라.
한 번은 둘이 분명 사이가 좋지 않은데 “하하호호”하면서 놀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저 형제님이랑 싸우지 않으셨어요?” 그러자 그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원한 친구도 없지만 영원한 적도 없지요.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어울려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둘은 화해를 한 것이 아니라 없었던 것으로 한 것이고, 지역 안에서 “계”로 묶여 있기에 서로에게 “그런 모습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말 못하는 관계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관계의 중요성을 떨쳐 버리지 못합니다. 사회에서의 고리를 놓지 못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주는 것을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을 합니다. 상을 당했을 때나 결혼을 할 때, 애경사에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하고 관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나를 바로 서게 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됨을 모릅니다. 냉담 하는 사람들과 부정적인 사람, 그리고 비 신앙인과 어울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도 신앙을 잃어가는 것을 모릅니다. 형식적인 관계 안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게 되고, 자신의 신념이 사라지게 됩니다.
진정한 관계는 내가 그들과 어울려 똑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면 결국 그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 주변으로 모여들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엔 \”네가 뭐가 잘났냐?\” 라고 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그 의로운 사람과 함께 하게 됩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⑧ 신앙적 성숙을 주는 사람들로 관계를 맺어라.
“친구 따라서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와 어울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나도 상대방에게는 무척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형제자매들과 함께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서로가 적당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형님! 동생!”하다보면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게 됩니다. 서로 “계”로 연결되어 있으면 냉담을 해도, 신앙을 등져도 함께 만납니다. 물론 그에게 권면도 하지 못합니다.
어느 본당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계”가 깨지는 바람에 “천주교 신자는 돈 떼먹고 도망간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본당신부님께서는 신자들에게 “계”를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후에 변함없이 계를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곗돈을 포기하지 못하기에 그 무리에 계속 남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팀은 곗돈을 모두 성소후원금으로 넣고 모두 레지오로 들어간 팀도 있었습니다. 그곳에 레지오 단장이 한명 있었는데 그가 권고하여 “계”를 해산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신앙인들은 인간관계에 충실하기 보다는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나의 신앙생활을 소홀하게 만드는 사람들로부터는 거리를 둡니다. 아무리 잘 하는 운동선수도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 초급과 몇 년을 함께 하다보면 실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형편없이…,
사실 처음에 신앙생활을 할 때는 누가 어떤지를 모릅니다. 많이 보이고 많이 움직이는 이가 정말 멋지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를 존경하고 그를 멋있게 생각합니다.
한 자매가 이런 푸념을 했습니다. “제가 영세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자매가 저에게 말을 건네고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단체에 들어오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아니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멋있게 보았던 신앙인이었는데 결국은 비신앙인이나 다를 바가 없고, 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여 지는 모습이 다가 아님을 알았고, 천주교 신자들은 다 천사인줄 알았던 그런 저의 생각이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성당에서도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가 겸손한 자세로 마음을 열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나를 이끌어줄 성숙한 신앙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남의 말을 하지 않으면서 겸손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신앙인, 행동하는 신앙인, 기도하는 신앙인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기 세력을 불리려고 하는 듯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되고, 방향도 잡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기도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갈 때, 의로운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갈 때, 어느 순간 의로운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⑨ 하루 10분 성찰하라.
신앙인들을 기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가 있음입니다. 오늘 하루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아침기도는 힘을 솟게 만들고, 활기찬 하루를 만들어 줍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하루가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바치는 기도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가정을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주어진 삶에 허덕이다 보면 자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다른 모든 일들에는 관심을 집중하면서 자기 자신과 가족, 신앙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나 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울함과 공허함에 빠져 자신을 학대하고, 가족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루 일을 마치고 단 10분만이라도 하루의 일과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볼 수 있다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열매를 주시지 않고 씨앗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루 10분, 내가 나를 돌아볼 때 비로소 내가 보입니다. 가족이 보입니다. 소중한 것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움 들이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을 잃고서 후회를 합니다. 하지만 하루 10분 자신을 돌아본다면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변화되어 의로운 사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 때문이고, 사랑 넘치는 사람으로 가족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준비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에 주님께 감사하며 아기 예수님을 두 손에 받아 안은 시메온처럼 기쁨의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됩니다.
⑩ 가족의 중요성을 알아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해야만 모든 일이 잘 풀립니다. 또한 모든 일을 잘 푸는 이유는 가정이 화목해지기 위해서입니다. 나만을 생각하고, 일만을 생각하다보면 가족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너 없이는 못살아!”하면서 혼인하지만 또 많은 이들이 “너 때문에 못살아~”하면서 이혼을 합니다.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가정은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또 신앙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사랑을 키워주고, 결속력을 강화시켜 줍니다.
한 자매는 “제게 신앙이 없었다면 벌써 헤어졌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은 부부관계를 억지로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신앙은 주어진 상황이 어렵다 해서 다른 아픔을 만들어 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어려움들을 쉽게 이겨내고, 분열을 일치로 만들어 놓습니다. 아무리 배우자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탓하지 않고, 아무리 배우자가 모가 졌어도 껴안아 줍니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배우자는 다듬어지고, 부드러워 집니다. 마치 강가의 돌들이 모난 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은 모난 돌들의 모서리를 어루만져 부드럽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가정 안에서 “이 사람만 아니면 어떤 사람이라도 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그 어느 누구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가정을 꾸려 나가려고 지혜를 청하고, 힘을 내는 것이 바로 가정생활의 기본입니다.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싶으면 다음의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 가족을 위해 기도하시고, 잠들기 전에는 꼭 함께 기도하십시오.
– “이해해 주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 비교하지 말고, 모욕을 주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 작은 것들도 늘 칭찬하고, 사랑한다고 자주 고백하십시오.
– 저녁식사는 늘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원칙임을 명심하십시오.
– 배우자가 싫어하는 것은 안 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작은 것 때문에 큰 분란이 발생합니다.
–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배우자에게도 시키지 마십시오.
5. 나눔 및 묵상
① 의로운 신앙인의 십계명 중에서 와 닿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누구에게 의로운 신앙인으로 인정받고 싶습니까?
6. 실천사항
7. 마침기도 및 성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