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과: 우리가 사랑하는 성모님
1. 시작성가:
2. 말씀읽기: 루카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3. 믿음을 가진 복된 여인
어느 날, 한 형제님께서 자신이 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오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무척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출근하던 직장은 성당 앞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성당 앞을 지날 때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천주교는 성모님 믿는 종교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모님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저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할까? 성모님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것일까? 하느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저들은 우상을 섬기는 것인가?1) 왜 성모님 상 앞에 절하고 기도를 하는 것일까? 언젠가는 나도 성모상 앞에 가봐야겠다.”
그는 이런 생각을 성모상 앞을 지날 때마다 했습니다. 그런데 출근할 때는 시간이 없어서 성모님 앞에 가지 못했고, 퇴근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두움이 내려앉은 늦은 저녁에 드디어 성모상 앞에 나아갔습니다. 성모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모상 아래에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모님을 하느님으로 믿고서 성모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의 믿음을 따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삶과 믿음을 본받으려고…
성모님만큼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 없었고, 성모님만큼 예수님의 길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없었고, 성모님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침내 성당에 나오게 되었고 성모님을 진실하게 따르며 성모님의 신앙을 본받고자 매일 묵주기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모상을 보고서 성모님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우상이라고 하여 십자가에 예수님 상을 달아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 누구도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상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힘들 때 더욱 힘을 내는 것처럼…
① 은총이 가득한 여인 마리아!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것은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앞당겨 입으시고 은총에 충만한 분으로 지극히 높은 성덕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께 은총이 충만하신 분,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② 주님과 함께 하는 여인 마리아!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주님은 그녀의 마음속에 어떠한 피조물보다 뛰어나게 완전히 깃드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그 누구보다도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말을 들은 성모님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천사를 보고 당황한 것이 아니라 천사가 자기에게 해 준 인사말에 당황했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 천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성모님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신비를 접할 때마다 곰곰이 생각하고, 마음 속 깊이 품는 다는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다가오는 체험들 안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천사는 성모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천사는 먼저 성모님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라고 전해줍니다. 총애를 받았다는 것은 마리아가 하느님 마음에 드셨다는 것입니다. 총애는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즐겨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늘 하느님께 기도하였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청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③ 천사의 알림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2) 이제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하느님께 늘 기도드렸고, 그 기도의 내용은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총애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아드님이 동정녀의 아들이요 법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며 다윗왕가의 후손이 되도록 모든 것을 안배하셨습니다. 약혼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약혼자라는 말은 기혼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율법도 기혼자나 약혼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약혼녀가 남편의 집에 들어가는 예식이 결혼의 완성으로 보았습니다. 정결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처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시고,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오명을 쓰지 않도록 약혼자를 갖게 하시고, 요셉을 보호자(양아버지)로 삼으셨습니다.
천사는 예수님에 대해서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며, 다윗의 왕좌를 주시어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은 예수님 안에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고 불리실 것이라는 것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같으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그분으로 인정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처녀이신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인간적인 본성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적인 본성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언자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계자이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상의 나라, 이스라엘 국민에게만 군림할 다윗의 후계가 아니고, 영원히 계속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영적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집안”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들 위에 하느님의 자비와 다스림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가 다스릴 대상이 야곱의 피를 받은 자손 뿐 아니라, 히브리인, 이방인을 불문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맺어진 교회, 나아가 온 인류를 말하고,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④ 동정녀의 잉태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이름까지도 듣게 됩니다. 처녀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이지만 아직 요셉을 알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말씀 안에서 그녀가 동정녀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아직 완전히 순결한 처녀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로 계속 살고 싶으며 따라서 어머니가 될 수 없고, 또 그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하는 결심이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실 만일 마리아가 결혼의 권리를 사용할 가능성을 생각했다면 아기가 태어나리란 말을 들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처녀로 한평생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기도하고 있었으므로, 이 처녀와 어머니로서의 구실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를 겸손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요셉과 약혼을 했을까요? 그것은 부모의 의향을 따르려 했다든가, 관습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던가, 요셉과 같은 사람과 맺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청혼을 피할 수 있고, 안심하고 자기 결심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그 당시 유다인에게 있어서 처녀로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평범한 결심은 아니었습니다.3)
천사는 마리아에게 처녀로서 임신하게 될 일을 알립니다. 예수님의 잉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그에게 내려오실 것이고 오직 하느님만이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4)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천사는 엘리사벳의 경우를 들면서 확신을 시켜 줍니다. 아이 못 낳는 여인에게도 아기를 낳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못 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지만,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것을 하느님께 투영하여 하느님도 불가능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이 종은 곧 노예란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주인은 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몸은 말씀이 강생하셨고, 그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믿음과 승낙을 통해서 예수님의 어머니로 삼으시고, 그녀를 온 인류의 구속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겸손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와의 불신과 반역행위를 지우셨습니다.
4.성모의 노래(루카 1,46-55)
46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성모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찬미가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해방을 주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찬미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역사 속에 변혁을 이루십니다.
① 찬미
마리아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진실된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께로 향할 때 주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성모님께서는 당신 품에 내려오신 하느님을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찬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성모님 안에 넘쳐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모든 것을 행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이겨내게 만듭니다. 즉 하느님께로 마음을 향하는 이들은 하느님 안에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② 영광
미천한 신세는 이름도 없는 마리아의 낮은 생활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평민의 딸, 가난한 목수의 약혼자였던 여인을 하느님께서는 그 지극히 높으신 왕좌에서 돌보아 주시고, 하느님의 어머니란 고귀한 지위로 끌어 올려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성모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언제까지나 복된 분으로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는 말씀”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찬미를 통해서 말입니다.
③ 자비
왜 언제까지나 세대를 이어 사람들은 성모님을 공경할까요? 그것은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의 전능, 성덕, 자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의 인간이 되심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은 죄의 노예인 우리에게는 그 노역에서 풀려나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이 자비는 언제까지나 만민에게 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일”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하느님께서 한 시골 처녀를 메시아의 어머니로 삼으신 놀라운 일을 가리킵니다.5)
경외(敬畏)한다는 것은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 넘치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이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자녀들에게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쏟아 부어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서 나를 늘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 주시고, 세상 사람들이 부자나 권력자들을 들어 높이는 것과는 반대로 겸손한 이들을 들어올리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반대자들의 교만한 생각이 드러났고, 예수님을 통해서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섰습니다. 빛을 통해서 어둠을 몰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통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둠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끌어 내려지는 통치자들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위와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늘 풍요로운 사람들로서 비천한 이들을 돌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그들도 모두 당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고, 해주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방식을 꼭 기억합시다. 주님을 왕으로 섬기는 이들은 당연히 기억하고, 그것을 삶으로 옮겨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겸손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권력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늘 사랑 지극한 마음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것을 조금만 나누어 주지 않겠니?”하지만 나는 늘 “주님! 좀 더 있다가요.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는 분명 나를 빈손으로 내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시고 싶어 하십니다. 내가 “예”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④ 계약을 지키시는 분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지키시고 항상 믿는 이들을 눈여겨보아 주셨습니다. 더욱이 몸소 인간이 되시어 새로운 영광을 주셨습니다. 도우셨다는 것은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인간이 되시어 구원의 손길을 내 미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하셨던 계약을 지속적으로 지켜주신 것입니다.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지 하느님은 아니십니다. 구원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만민에게 미치게 될 것입니다.
5. 고통의 어머니 마리아: 성모칠고
성모님의 삶을 생각해 보면 늘 고통이 함께 하였습니다. 가장 큰 고통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큰 은총을 받았기에 미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긴 어떤 어머니가 의로운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계신 어머니. 성모님의 고통은 그렇게 엄청나게 컸습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보통 성모칠고를 생각합니다.
①그 하나는 시메온이 예고한 성모님의 고통입니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②두 번째 고통은 이집트로의 피난입니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헤로데를 피해서 이집트까지 피난을 가야한다는 것.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럽겠지만 마음은 더욱 아프셨을 것입니다. 무죄한 어린이들의 학살까지도 보아야 했고, 갓난아기이신 예수님이 먼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③세 번째 고통은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서 어린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사흘을 찾아 헤매실 때의 성모님의 고통입니다.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1-48)
④네 번째 고통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매 맞고 가시관 쓰실 때 그것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성모님의 고통입니다.
⑤다섯 번째 고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고통입니다. 망치소리가 울릴 때 성모님의 가슴은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찢어지셨을 것입니다.
⑥여섯 번째 고통은 아들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아들의 고통 앞에서 울 수도 없었던 어머니.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어머니, 마지막으로 자신을 요한 사도에게 맡기시고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 그 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부둥켜안고 울고 계시는 성모님. 피에타 (pieta)상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처절한 고통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경건한 마음 또는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뜻으로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무릎에 안은 구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다비드상“,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 중 하나라고 합니다.
⑦성모님의 일곱 번째 고통은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심에 있습니다.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이제 무덤에 묻히시는 예수님. 성모님의 마음도 그렇게 어두운 무덤 속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이렇듯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서 나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모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6. 우리의 어머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19,2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유언.” 서서히 죽음의 고비에 다다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십니다. 이제부터 요한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게 됩니다.
탈출기 30장 12절을 보면 아들은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이 책임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제자를 자신의 형제로 지명하면서 그 의무를 떠맡기는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여인의 남자 친척은 여인을 항상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아래에서의 요한 사도는 우리 모두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사도 요한의 어머니가 되신 것처럼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시고, 어머니께서 요한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어머니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언제부터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을까요? 십자가 아래에서 비롯되었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동정녀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 그 순간부터 벌써 구원받아야 할 인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골고타(해골산)에서 성모님께 온 인류가 위탁된 것은, 이미 그러했던 사실에 대한 장엄한 확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요한사도께서 어머니를 공경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성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숨죽이시며 한생을 살아오신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받들어 공경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길을 걷고, 예수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성모님의 눈에서 눈물을 가시게 하고, 성모님의 가슴에서 슬픔을 몰아내고 기쁨을 담아 드릴 것입니다.
7. 성모님의 승천”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생활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라갔음을 기념하는 축일로 마리아께 바쳐진 초대 교회시대의 교회 하나가 예루살렘에서 헌당식(獻堂式)을 행한(5세기) 날에 지켜졌습니다.
7.1. 몽소승천(蒙召昇天)
예전에는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했는데 그 말뜻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부르심을 받고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뜻에서 알 수 있듯이 마리아의 ‘몽소승천’ 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의미는 예수님의 ‘승천’과는 구분됩니다.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 그 영혼과 육신을 지닌 채 하늘의 영광으로 영입(迎入)되었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승천’은 능동적이지만, ‘마리아의 몽소승천’은 피동적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이후에 하늘에 오르신 것과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에 의하여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몽소승천이라고 하지 않고, ‘성모승천 대축일’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한자로 “몽소승천”라는 말이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자로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7.2. 성모님 승천의 의미
① 약속의 성취
몽소승천으로 마리아는 인간의 삶 안에서 가장 큰 축복을 먼저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잉태하실 때 천사의 아룀에“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라고 천사의 알림에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모든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또 마리아는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의 만남에서“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이라고 엘리사벳이 기쁨 중에 노래를 하였는데, 그 말씀이 그대로 성모님께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낳았기에 행복하셨을 뿐만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한 생을 살아가셨고, 그렇게 “몽소승천”이라는 축복을 받으셨기에 행복하신 것입니다.
그런 은총을 입은 것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사랑의 결과입니다. 즉,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한 생을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축복입니다. 나 또한 성모님과 같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런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② 영광과 약속과 희망인 몽소승천
몽소승천은 하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마리아는 지금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계십니다. 마리아의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빛이요 생명이며 사랑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기쁨을 의미합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이 영광스러운 몽소승천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의 영광이요, 약속이요 희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마리아의 승천은 영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충실히 하였고, 마침내 그 영광을 얻었기에 교회에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잘 아시며, 예수님을 믿고 따른 마리아에게 내려진 “몽소승천”은 나 또한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간다면 마리아처럼 그렇게 영광을 받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이요, 나의 희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도 승리를 위한 신앙의 갑옷을 입고, 죄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투구를 쓰고,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서 약속하는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믿음의 길에 들어선 나는 성모님께서 이미 받으신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 성모님께로부터 배우고,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향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성모님과 함께 나 자신의 부족한 것을 돌아보며, 예수님께로 달려가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함께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갑시다.
8. 나눔 및 묵상
9. 실천사항
10. 마침기도 및 성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