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정말 바쁜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오늘을 맞게 되는군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감사할 뿐이랍니다.

세상사 힘들다고 푸념하는게 현실이지만 사실은 안타깝기도 합니다.

편하고 쉽고 돈이되는 것만을 고집하니

그만큼 마음과 생각이 마비되어 가는 것인가 봅니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한만큼의 보람을 안기보다는 쉬운 것을 원합니다.

다음세대에 불어올 상황을 생각하기 보다는 임시 자신의 앞날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찔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오늘 구원과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떠나라고 합니다.

헤로데가 죽이려 한다고 하면서 그리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 라 비유하시면서 단호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 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라고 하시며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았는지 모릅니다.

과연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저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듣기가 무섭게 도망을 가지 않았을까요?

예언자의 삶!

다시금 저를 돌아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는 예언자의 삶을 살면서 당당히 걸어왔는지 생각해 보지만

그다지 당당히 내세우긴 너무나 어렵다는 것에 고개를 떨구고 맙니다.

그때도 지금도 예언자는 있는 것인데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제가 바리사이나 여우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칼을 갈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무서운 기분이 듭니다.

아버저의 사랑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이들이 존경받고 그들이 알려져야 함인데

진정 그런 오늘인지요.

오히려 그들이 비난받고 도외시되어

예언자로서의 슬픈 길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죽음을 이미 알고 계시지만 굴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당당히 전하는 모습에서 사랑의 유함속에 또 다른 권위가 보였습니다.

사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예언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너무나 쉽게 돌아서 버리는 저의 모습이 참으로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누가 뭐라든 예수님처럼 제가 가야 할 길을 가면 되는 것인데

중간에 무너지고 가야 할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라고…

명심하겠습니다.

멸망의 기로에 선 저이지만 구원으로 나아간다면 첫째가 될 수 있음을 가슴깊이 새깁니다.

첫째에서 꼴찌되어 우는 저가 아니라 꼴찌에서 첫째로 나아가는 저가 될 것을…

허긴 첫째에서 첫째로 변함없이 간다면 더 말할 것이 없겠지만요.

아버지!

멸망에서 아버지를 잃고 탄식하는 저가 아니라

구원의 배를 타고 아버지의 따스한 빛을 받으며 늘 행복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머금고

지친이들에게 제 손을 내밀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구원과 멸망에 대해 말씀하실 때 바리사이 몇 사람이 다가와

헤로데가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전해 줍니다. 그런 그들에게

가서 그 여우에게 전하라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 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우의 삶을 살고 있는 저는 아닌지..

또 예언자로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같아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그 말씀처럼

전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는 예언자로서 당당히 머물곳에 머물렀는지 반성해 봅니다.

한편으로는 사랑을 드러내는 예언자들을 학대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진 않았는지요.

공동체에서 마음을 다해 사랑을 나누는 이들을 속박하고

제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벼랑으로 밀어넣으려 안간힘을 쓰진 않았는지요.

아버지의 말씀과 사랑을 저버리고 다른 이상을 꿈꾸며

부푼 헛된 이상주머니가 터질 줄 모르고 신나 기뻐하는 어리석은 저가

하루빨리 깨우침으로 눈을 뜨게 하소서.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확신으로 당당히 서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를 위해 저를 봉헌하는 어여쁜 자식이 되어 제가 머물러야 할 곳에서

사랑의 힘으로 물러나지 않게 하소서.

어떠한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험도 칼도 저의 사랑을 갈라 놓을 수 없게 하시어

첫째에서 밀려나는 저가 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Re..“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오늘도 내일도 성실히 내 일을 해 나가는 모습
    비록 주어진 여건이 어렵다 할지라도 힘을 내는 모습
    그것이 바로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의 자세이겠지요…
    힘차게 내일도 이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 봅시다.

  2. 샘지기 님의 말:

    《Re》^*^ 님 ,
    네.
    할일을 하지 않고 불평을 해 버릇하면 기본도 못하는 바보가 되다고 친정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가슴에 새록새록 살아나더군요.
    기본도 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청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짠해 오기도 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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