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의 비유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

1. 말씀읽기:루카14,15-24 혼인 잔치의 비유 (마태 22,1-10)

2. 말씀연구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누구에게 초대를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나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내 일이 우선인 사람. 그가 바로 나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말씀을 묵상해 봅시다.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식사를 하는 중에 한 사람이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면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될 사람.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을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이것은 하느님 나라에서 있을 의인의 행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사람도 자신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자신이 하느님 나라의 빵을 먹게 될 것임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충실하게 율법의 규정을 지키고 있었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하느님의 잔치에도 특별한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초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비유를 드십니다. 세상에 대한 근심을 잊고 초대에 알맞은 응답이 있어야 만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아마 잔치를 연 사람은 지위가 높은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주인은 친절하게도 약속을 다시 환기시키고 혹시 길 안내를 위해 종들을 보냈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을 향한 예의는 모두 갖춘 것입니다. 이 종들은 예언자들을 의미합니다. 즉 유다인을 회개와 믿음으로 이끌려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잔치에 초대한 이의 마음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밭을 샀기에, 겨릿소 다섯 쌍을 샀기에, 장가를 들었기에…이렇게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보잘것없는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연기할 수도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려고 잔치 초대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기 싫은 것이 있으면 무슨 핑계를 대서든지 빠지려고 합니다. 그 자리가 나를 위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빠져 나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를 초대 안 해주면 얼마나 서운할까요?



 오늘 이 잔치는 하느님 나라에로의 초대입니다. 회개하라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그런데 회개에는 관심이 없고, 하느님 나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께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바로 오늘 이 식탁에 자리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구원에 참여할 것이라고 장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영세를 받았다고 해서, 내가 성직자 수도자라고 해서, 내가 본당이나 공동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100% 구원 받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회개하고 깨어있으면서 그분의 초대에 응해야 만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주인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거절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잔치에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이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부릅니다. 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죄인, 즉 세리나 창녀나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주인은 이들을 억지로 끌어서 잔치에 초대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억지로일까요? 사실 억지로 끌려갔다는 것이 그들이 들어가기 싫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 죄로 얼룩져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인 자신들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하고, 치유해 주시고, 말씀을 전해 주시니 그들은 황송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초대를 받았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재산에 대한 애착과 이기적으로 희생을 피하려고 하는 마음은 하느님 나라의 발전을 가로 막습니다. 이와는 달리 모든 것에서 벗어난다면 내 안에서 하느님은 쉽게 역사하실 것이며, 나를 통해서 당신 나라를 키워 나가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영화 보러 가야하고, 내일은 등산하러 가야하고, 다음주는 결혼식 가야하고, 또 그 다음주는 친구와 약속이 있고…

하느님의 초대에는 언제나 뒷전인 나는 과연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복음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너무도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이끄심에 의해서 황송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억지로 자리에 앉게 해 주셨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의 그 일을 잊어버리고 당연히 자격이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당연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나의 권리가 아니라 은총인데 그것을 까먹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② 내가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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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잔치의 비유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봉사를 하면서 신앙의 참모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흔히들 봉사를 하다가 그만두면 냉담을 하거나 겨우 주일을 지키면서 되려 큰소리를 칩니다.
    예전에 뭐도하고 뭐도 하고… 지금 이게 뭐야.. 이러면 안되는 건데.. ㅉㅉ
    현실입니다.
    부족한 저를 이렇게 장의 자리에 앉아 봉사를 하게 해 주심에 더 열심히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이끄심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과 믿음이 강해서 자신이 불리워지는 것이라 착각하고 봉사를 하는 이들이 반이상인 것이 사실입니다.
    공동체안에서 능력이란 없습니다.
    공동체안에서의 능력이란 모두가 같습니다. 더도 덜고 아니고… 다 ..
    왜냐면 양들을 아버지께로 이끌어 주시는 신부님께서 계시기에 응답만하고 앞으로 나가면
    그 나머지는 신부님께서 다 채워주심인데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면서
    브레이크를 거는 봉사자가 많습니다.
    예비신자들이 와서 보고 하는 말이 처음 그들이 믿음이 깊은 사람인줄 알았다고…
    담겨져 있지 않은 그릇이었음을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눈에도 보인다는 사실에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나도 그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나이가 들면서 더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라
    하얀백발의 노신사가 아니라 신앙의 깡패로 편가르기 싸움을 거는 저가 되지 않을런지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저의 내일이니까요.
    그래서 그 말을 잊지않고 늘 긴장합니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는 저라면 그 어떤 것도 제것이 아니라 형식에 젖어 사는 철새의 이사일테니까요.
    철새는 주어진 은총임을 모르니까요.
    그러기에 공동체의 철새가 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를 사랑으로 내시어 저에게 영혼육신을 주시고..” ㅎㅎ
    모두 다지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 저의 삶까지…
    전엔 자신이 잘나서 잘 사는 것으로 알았던 무지하고 겁없는 아이가
    이젠 철이들어 범이 무서운 줄 알게 되었지요.
    기도속에 저를 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모든 지혜를 주시는 말씀에서 살아가는 힘과 용기,
    그리고 주어진 삶에서 비굴히 타협하지 않는 강하고 무서운 당당함!
    그 사랑의 힘으로 제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제 손을 데워 아버지의 차거운 손을 데워주려 늘 고민하는 철없는 딸이 되려 하지요.
    예전에 일을 하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손을 데워주려고 아랫목 이불속에서 제손을 데웠다가
    대문을 들어오시는 아버지를 보면 쏜갈같이 달려가 볼과 손을 녹여드렸지요.
    밉고 말안듣는 자식이지만 그 사랑에 아버지의 마음은 녹아내리니까요.
    그 마음을 가슴에 담았기에 너그러울 수 있고 아파도 웃을 수 있습니다.
    저 혼자라면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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