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인의 헌금!
온 생활비였던 렙톤 두닢!
만약 저라면 그리 소중한 생활비를 헌금함에 넣을 수 있었을까요?
먹을 걱정에 빈손만 넣었다 빼진 않았을런지요.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자매님이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헌금을 하는 것을 두고 그러더군요.
저것이 바른 모습은 아니라면서
먼저 살 궁여책을 마련해 놓고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에 전 무엇이 바르다 틀리다고 말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사자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가장 자세히 속을 알 수 없음이니까요.
마음의 여유가 아닐런지요.
잘사는 사람의 손에서 나오는 것은 큰 금액이 아니라 의외로 적게 헌금을 합니다.
그러면서 천원씩 한다고 흉을 봅니다.
어찌나 챙피하던지요.
현재 일을 하는 저희가 부끄럽게 하는 것이지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용돈을 쪼개서 하는 금액과 비교해서는 안됨인데
그것을 모르고 쉽게 말을 던집니다.
잘사는 자식이 내의를 선물하는 것과 근근히 살아가는 자식의 내의는 분명 다릅니다.
오늘 가난한 과부의 헌금 또한 그러함을 압니다.
아버지께 향하는 마음의 자세임을….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저의 속내를 다 알고 계시는 아버지!
적어도 뭐라 하지 않으시고 되려 사랑만을 주시는 아버지시건만
못난 자식은
따지고 계산하고 보이는 이익을 위해 아버지께 온전히 드려야 하는 주일마저도
외면하거나 대충 메우고 홀연히 떠납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를 몰고 가버리는 자식의 모습으로 …..
참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밤입니다.
그런 못난 저의 등을 아버지께 보여드리진 않았나 싶어서….
삶을 살아가면서 만족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유를 느끼기도 쉽진 않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팔을 베고 누워 잠시 눈을 감는다면
모든 시름을 날려버릴 수 있음인데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한 저는 아닌지요.
그리만 한다면 더 넓고 깊은 사랑의 눈으로 바로 보고 깨달아
진정한 사랑을 드리는 저가 되어 아버지께 짜투리가 아닌
저의 마음과 정성을 드릴 수 있음일텐데요.
행사가 있었던 어떤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봉헌이 있다고 안내하자 저를 두고 한 부부가 나누어 서 있었는데
자매님이 슬며시 손을 내밀자 당연하기라도 하듯이
형제님은 천원짜리 하나를 건네 주었습니다.
바로 제 눈앞에서…
행사에 참례한 아이의 부모인 듯한데 가슴이 답답했지요.
신앙안에서의 단체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던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핑계로 관심을 받기를 원하면서
무엇 때문에 그리하는 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세상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저도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제 모습은 어떨까 싶어서…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그토록 사랑을 주시건만 부족한 저는 단 한시간도 오롯이 드리지 못하는 그런 마음으로
교만스레 서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봅니다.
생활비 전부가 아니라 할지라도 제 정성을 담아드렸는지 돌이켜 봅니다.
일이 없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변하는 계절을 느끼려고 여행을 다니는 길에
부모님께 얼굴도장을 찍고 금새 가버리는 자식처럼….
주어진 오늘에 만족하고 그 안에서 여유를 갖고 주위를 돌아보며 사랑의 눈으로 정화한다면
몸도 마음도 맑게 하여 제 사랑과 정성을 다해
아버지께 온마음을 드릴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제 정성을 다 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드리려 늘 노력하렵니다.
형식이 아니라 정성을 담아 드리는 저의 두손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도록 노력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라고…
풍족한 가운데 넣은 이들보다 궁핍한 가운데에서
생활비 모두를 다 넣은 그 여인을 칭찬하십니다.
가난하였지만 기쁨으로 정성을 다해 사랑을 드리는 여인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가진 것에 비하면 너무나 작게 드리면서 많이 한다고
교만의 고개를 세울 저를 걱정하시는 듯 깊은 깨우침이 되어 와 닿았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면서도 고개세우고 자랑하려는 어리석은 저는 아니었는지요.
세상사의 관계에서는 넘치게 하면서도 고개를 조아리고,
아버지껜 천원짜리 하나를 쥐고도 당당해 하진 않았는지요.
조금의 시간마저도 드리지 못하고 마음도 담아드리지 못했음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넘치는 사랑을 받고도 드리기는 아까워 하는 저가
말씀에 귀기울여 새로나게 하소서.
가장 첫 번째이자 중요한 것이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이 되게 하시어
삶속에서 사랑의 힘으로 만족과 여유로
늘 평화의 강을 거스르는 작은 배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마음과 정성의 노를 저어 아버지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소서.
제 것을 드리고 배를 곯는게 아니라 드림에 채워지는 지혜를 얻게 하시어
형식의 손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손을 내밀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