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어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습니다.

관계안에서 빗어지는 일들에 마음마저 잠깐 무뎌짐을 생각해 본 날이었지요.

관계가 빗어지게 하는 첫 번째가 말인것 같습니다.

사실 올케와 엄마사이에 오해가 있었거든요.

올케가 시어머니와 통화하고서는 자기 기준대로 말을 해석하여 동생에게 말을 옮겼지요.

근데 그것이 제게도 불똥이 튀었습니다.

튀는데로 맞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제게 없었기에 상처가 남진 않더군요.

제가 조카의 공부를 봐준지 한달이 넘어가는데 이번 일로 올케가 애를 못가게 했습니다.

그냥 두었지요. 이미 닫혀있는 이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어서…

그랬는데 워낙 잘못이 있었던지라 올케가 시골에 가서 사과를 했나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제게 전화를 하셔서 다시 공부를 봐 주라고…

기다려 보자고 했더니 서운하셔서 그런지 제게 안좋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때론 기다림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음인데

사랑하는 손자의 일이다보니 마음이 앞섰나 봅니다.

이해는 하면서 서운하고 속상한 것은 사실이었지요.

세 번이나 전화를 하셨지만 전 한결같은 소리만 하였습니다.

기다려 보라고..

서운하셔서 전화를 끊으시더군요.

전 혼자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떤 결과를 내리려 하는 고민이 아니라 \”이건 아닌데..\”

한쪽을 막으려다 다른 한쪽이 터지는 줄을 모르나? 라는 의문을 생각하면서

\”집에도 가지 말아야 겠다.\”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족!

사랑의 작은 울타리 가족!

아무리 그런 집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애착이 없으면

의미는 상실됨을 새삼 느껴 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어렸을 적 많은 추억들이 담겨져 있는 곳이지만

후에 참여하게 되는 새가족에 의해 점차 사라질 수도 있음을 …

그리고 가려다 등을 돌리게 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전을 정화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의 미숙한 작은 행동들이 기도의 집인 사랑의 집이

이익을 챙기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 수 있음을 되새겨 봅니다.

저의 행동을 보고 오려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이 있을수도 있음을

깊이 새겨 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크고 비싼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간직하면서 더한 빛을 바랠 수 있도록

늘 노력하는 모습으로 아버지의 집을 지켜야 함임을 새삼 가슴에 담아봅니다.

부주의한 저의 작은 행동들이

선량하고 의로운 이들을 몰아내고 장사치들의 장소로 만들 수 있음을

몰랐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한 가계를 고집합니다.

열심하고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는 곳을 쉬이 저버리지 않는 것과 같이

아버지의 집도 그러하겠지요.

저 하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한 형제라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의 집을 사수해야 함을….

함께가 아니라면 저혼자 만이라도 의로운 모습으로 지켜야 함을 …

어떤 환경이 저를 막는다 하여도 의로운 저로 대적하렵니다.

그리하여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의 따스한 집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여

많은 이들이 찾고 쉬어가는 사랑의 쉼터로 만들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아버지에 대한 예배를 빌미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장소가 되자

장삿꾼들을 몰아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 로 만들어 버렸다.\” 라고…

이 말씀이 가슴저미게 와 닿았습니다.

시댁에서든 친정에서든 저의 행동과 말들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멀게 하는 것임을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에서도 저의 부주의한 행동이나 말들이 있는 이들을 몰아낼 수도 있고,

그리고 삶에 지쳐 아버지의 집을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적은 없었을까도 돌이켜 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담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무엇을 위한 저의 기다림이고 희망이었는지요.

제가 장삿꾼이 되어 제 이익과 욕심을 채우면서

그것을 탓하는 의로운 이들을 몰아내려 궁리하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이지만 사랑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 퇴색하지 않게 하소서.

말씀의 코팅을 입혀 어떤 환경에서도 바래지 않게 하시어

사랑이 넘치는 기도의 집을 지키는

참된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집을 찾아 사랑의 충전을 하고 갈 수 있도록

집의 온기를 체우며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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