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어두워지면서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몸을 움츠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많이 추워진다는 소리를 들으니

가장 먼저 아들이 걱정되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향한 연민은

사랑이라 표현하기보다도 더 아린 듯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더하시지요?

한생을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에게 넘치는 사랑을 쏟아부으신 분이 계십니다.

아들이 둘 있는데 정말 다릅니다.

장남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자신이 대접받기만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작은 아들은 정이 많은 듯한데 너무 자신의 색깔만 내세우며

때그때 분위기를 잘 타면서 자신이 처한 입장을 이용하여

자리를 뺏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두 사람의 사이는 좋지 않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편안하게 대하면서 주위가 조용하면

남보다 못한 시선으로 경계를 취하지요.

\’아니오\’ 와 \’예\’ 를 번복하면서 서로에게 유리한 자리를 잡으려 피곤하게 살아갑니다.

부모의 사랑이 넘치는 가슴에 묻혀 살면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울타리를 위해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모습을 사랑이라 하면서

진실된 부모의 마음을 교란시킵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지 못하게…

나이가 들면 판단이 흐려지고 맘도 작아지고 두려움만 커간다고 하지만 더 나쁜 것은

부모가 가지고 있는 재물에 대한 자식들의 욕심이

그리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그러지 않겠지요.

오늘 아버지께서도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들의 회개하는 모습!

요한이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그를 믿었던 세리와 창녀들!

반면 형식에 젖어 살며 회개는 커녕

아버지를 인정하지 못하고 매번 기적은 바라면서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

전 어떤 아들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이켜 봅니다.

대답은 늘 \”예\” 하면서 행하지 않는 저는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차라리

\”아니오\” 라고 하였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에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저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넘치게 주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저가

바로 바리사이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을 살아감은 내일을 위한 준비라 합니다.

그런 큰 일인데 늘 부정의 답만을 하면서 아직도 얼어붙은 몸으로

긴장속에 서있는 저가 아닐런지요.

성경 한편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라고…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지요.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지요.

왜냐구요? ㅎㅎ

그냥 그랬습니다.

정말 사랑하지만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엔

너무나 역부족인 저를 보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서 회개의 길이 아니라

형식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게 형식만이 남아있다면 그것을 벗어버리고 말씀대로 충실히 순명하면서

제게 다가올 미래를 향한 희망의 나라로 들기위해

가슴으로 회개하는 저가 되려 다짐해 봅니다.

제가 변하지 못한다면 어떤 것이 주어진다 하여도 그것을 제것으로 만들지도 못할 것이고

도리어 더 큰 형식만이 저를 지배할 것을

잊지 않고 새기렵니다.

그리하여 \’아니오\’의 \’예\’도 아니고, \’예\’의 \’아니오\’도 아닌

그저 \”예\” 라는 응답을 하면서 진정한 회개의 길로 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아버지의 나라로 가기위해 준비하느라 땀을 흘리는 저가 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지는 사랑의 기회인데 그것을 갖지 못한다면

바로 형식만을 안고 속이 빈 그런 바리사이가 아닐런지요.

회개를 통해 성숙한 모습으로 구원으로 나아가는 저가 되어

오늘의 발걸음에 힘을 싣는 저가 되려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형식에 젖은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 …

이 말씀이 형식에 젖어 사는 저가 아닌지 돌아보게 하시어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나보다 먼저? 설마? 아니겠지.

나를 혼내려 일부러 그러시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사실 바리사이의 모습으로 살아감은 아닐런지요.

거부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맘을 바꾸어 포도밭으로 일하러 간

맏아들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의로운 이의 모습이어야 함인데…

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의 사랑속에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저였는지요.

순명과 불순명을 오가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의 번복속에

자신의 가치관마저 혼동스러워 진정한 회개도 모른 채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맏아들인지.. 아니면 작은 아들인지…

세 개의 밝혀진 촛불을 보면서 애타게 기다립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형식에만 젖어 아버지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회개하여 변화된 삶으로 아버지를 기다리게 하소서.

저가 변화하지 않으면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어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께 순명하면서

그저 \”예\” 하는 저가 되어 구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회개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Re..“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에 1개의 응답

  1. ^*^ 님의 말:

    마음을 비운다는 것.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배려한다는 것
    인정해 준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랑한다는 것

    한 순간 마음 한번 잘못 먹으면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 같아요.^*^
    또 유혹하는 대상에 대해 비우지 않으면 어려운 것 같구요…
    언제나 자유로워지려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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