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1. 말씀읽기: 마르코 1,29-39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다 (마태 8,14-15 ; 루카 4,38-39)

많은 병자를 고치시다 (마태 8,16-17 ; 루카 4,40-41)

전도 여행을 떠나시다 (루카 4,42-44)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청하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의 손길을 내 미시어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나 또한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 예수님처럼 그렇게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자연스럽게 나를 통해서 기쁜 소식(복음)이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29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당신의 백성을 가르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십니다. 즉 시몬이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의 장모를 위해서 예수님께 사정을 이야기 합니다. 누군가가 고통 중에 있을 때, 그를 위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를 위로 한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또한 그런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시몬의 장모는 덕망이 있는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다른 이들에게 복을 줄 수 있고, 또 내가 다른 이들을 통해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변덕만 쌓아 간다면 시간이 지난 후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봉성체를 주선해 주고, 환자들을 위한 미사에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즉, 내 삶을 덕 있는 삶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시몬의 장모의 사정을 알린 것처럼 나 또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가 아프면 본당에 알려주고, 공동체에서 방문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그러자 열이 가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문득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서 고쳐 주셨나?” 하는 분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이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당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분은 결코 아니십니다. 그분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청하는 이들의 청원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녀의 봉사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예수님을 통해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도 기쁘게 주님께 봉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동네에는 예수님의 소문이 돌았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셨다는 소식, 시몬의 장모를 고쳐 주셨다는 소식들이…, 아픈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을까요? 그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식일의 규정은 해질 때까지 지켜야 했기 때문에 해가 지자마자(안식일이 끝나자마자) 곧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요? 하지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의 눈을 의식해야 했기에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예수님께로 달려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해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은 모두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눈치를 보는 사람 중에 내 모습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데 할 용기가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시선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또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눈치 보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데 나 때문에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옹졸한 내 모습 때문에 내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부족한 사람들은 그의 그 순수한 마음에 나는 상처를 주고, 눈치를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온 고을 사람들이 시몬 베드로의 집 앞에 모여 들었습니다. 집안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 결국 못 들어 간 사람들은 문 앞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당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도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당으로 몰려들어 모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성당 문 앞에서 미사에 참례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이 매일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항하려 하였지만 어림도 없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의 입을 통해 당신이 누구신지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마귀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말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마귀들이 말한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힘 있는 메시아”로서, 로마의 식민지 상황을 뒤엎어 그들에게 평화를 주는 메시아로 예수님을 바라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메시아로,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군중들이 믿음을 가지고 편견 없이 예수님께로 다가오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르침을 청했고, 또 치유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벽녘에야 비로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기에 예수님께서는 혼자 기도하실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시 쉬신 다음 일어나 외딴곳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었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은 예수님께 일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늘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 그러므로 예수님을 본 것은 바로 아버지 하느님을 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이 하느님 아버지의 일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과 그 일행은 새벽에 사라지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라지시자 당황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로부터 기적의 힘이 나오고, 예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걱정 없을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 이들이 예수님을 참된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기쁜 소식(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일이기도 하지만 제자들의 일이며, 우리들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려 하시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신앙만을 생각하지 말고, 내 구원만을 생각하지 말고 내 형제자매들의 신앙과 구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씨를 뿌리셨습니다. 그 씨가 나를 통해서 풍성한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안주하지 않으십니다.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해서는 늘 기도하셔야 했고, 하느님의 뜻을 물으셔야 했고,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상기하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 일이 아니라 기쁨이듯이, 예수님께서는 기쁨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나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활짝 열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힘차게 가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병자들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곳에 기쁜 소식이 퍼져 나가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것은 접어 두고라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냉담중인 부모님이나, 아이들, 비신자인 남편이나 아내, 동네 사람들, 직장 동료들. 그들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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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지금은 감히 기도라고 말을 할 뿐 그 어떤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문도…
    그들은 육신의 고통보다 그의 손을 잡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기를 원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자신을 더러워하지 않으며 함께 하는 것을…
    그들은 이상하게도 형식인지 아니면 마음을 전하러 온 것인지를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럿이 방문을 했더라도 유난히 한 사람과 눈을 주시합니다.
    아마도 그의 마음을 알았겠지요.
    이처럼 냄새가 나고 환경이 더럽다 하여도 그 안에서는 나도 그와 함께 머물러야 하고 그의 손을 잡고
    식사를 할 때는 그의 코까지 닦아주면서 안고 트럼도 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제가 그런 방문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을 겁니다.
    한송이 꽃을 가지고 살포시 웃으며 들어가면 먼저 경계를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방문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환자는 육신의 고통을 접고 손을 잡는답니다.

    어떤 경우보다도 가장 어려운 것이 냉담자의 마음을 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냉담자의 길을 걷고 있음에 완고한 마음이 한층 더 심화되어 그 어떤 얘기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했던 일만을 얘기하면서 가득한 교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잘 난척 하기도 어렵고…. ㅎㅎ
    신앙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수 밖에요…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간다기 보다는 말씀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가 저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며,
    감사와 기쁨의 삶으로 저를 보여주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봉사를 그만두고 저의 신앙생활이 작아지는게 아니라 유람선이 없더라도 유유히 흐르는 강이되어
    살아간다면 조용히 지켜 볼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매일미사에 참례하고 특히 새벽미사에 빠지지 않으며
    남보다 더 부지런히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이 바로 훗날 그들을 전교하는 저의 자리마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차지 않으면 그 누구도 잡아줄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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