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왜 이렇게 마음이 답답하지요?
그리고 무섭다는 기온이 저를 감쌉니다.
미사 후 만났던 형제님과 자매님의 얼굴이
지금도 아른거리네요.
그리고 실망인지 아쉬움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제가 알던 그 형제님은 참 좋은 분이였는데 웬지 그 마음이 사라질 듯합니다.
그렇다고 내색은 못하겠지만 그에게 열려있던 마음의 문을 살짝 올리고
담너머로만 웃어 보이겠지요.
차로 향해 가면서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살며시 가방을 만지면서 주위를 살피더니 \”이거 드리려구요.
조용히 혼자 보고 주세요. 다른 사람 줄 사람있으면 빼고 주셔도 되구요.\”
라고 말했습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며 건네주는 노란 서류봉투를 받았지요.
그리고 집에 와서 열어보니…. 나주 율리아…
이게 웬일인지요. 방송 후에 다시 작성된 듯한 것인데
이것이 유포되고 있었나 봅니다.
세밀하게 묘사된 색이 저를 언잖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살짝 화도….
전 얼른 그것을 넣고 남편에게 보이지 않게 책사이에 끼었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제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인지…
목적지는 같은데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 듭니다.
아버지!
일치란 어려운 것일까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되어 진한 결속력으로
같이 한마음으로 나아가기란 진정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다면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 이리떼!
바로 바리사이들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일텐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다.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에 비한다면…\”
오늘 말씀 윗켠에 자리잡은 이 글귀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한참동안을 그렇게 …
저도~ 그도~ 마음이 오그라져 있는 것은 아닐런지…
늘 아버지를 없앨 궁리를 하던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께서는
안식일날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속내를 다 아셨던지라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가운데로 세우시며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라고 그들에게 물으신뒤
\”손을 뻗어라.\” 라고 말씀하시자 그의 손이 성하여졌습니다.
하고자 하시면 못할 것이 없으신 아버지의 이같은 사랑의 보호막임에도 불구하고
바리사이들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침을 흘리는 이리떼처럼….
서로가 맞지 않아 시기했던 이들이 제 삼의 먹이를 위해
함께 동맹을 맺는 공동체의 모습처럼…
물과 기름이었지만 같은 뜻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더 끈끈한 결속력이 생기기도 하지요.
허긴 언제 어느때 제가 그런 비열한 모습으로 서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긴장하고, 더 목청돋우어 아버지를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심도 많이 부족하고, 더 많이 사랑하지도 못하고
다른 자식처럼 효를 드리지도 못하니
그저 길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큰 소리로 아버지만을 부르지요.
제가 어디에 있는지 들으시라고….
그러지 않아도 다 아시는데.. 그쵸?
아버지께서 주신 사랑의 날을 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선을 넘어서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 왜 넘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보고,
사랑으로 움직이는 묵직한 신앙인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저의 레이다망은 오로지 아버지의 향만을 감지하게 더 기도하고, 더 바삐 움직이면서
진리를 몸소 살아가는 저가 되어 진정한 안식일의 주인이신 아버지의 딸이 되려
더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어떻게든 고발할 빌미를 찾으려는 바리사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아셨던지라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가운데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라고….
기본을 벗은 줄도 모르고 기본에 충실한 줄 착각하는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제게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리사이들을 늘 욕하지만
제가 바로 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망각하며
두손모으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해야 함이지만 그 기본이 가장 어려운 장애임을 모르고
드러나는 것에 충실하려 하고 정해진 형식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를 사랑함에 제가 안아야 할 기본 또한 사랑이거늘…
부족한 저는 받기만을 바라면서 행할 능력을 갖추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생을 오그라진 손으로 살아왔을 그 사람의 고통을 치유해 주는 것이
무슨 문제인냥 꼬투리를 잡는 바리사이처럼
오늘도 그렇게 우메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자신들의 자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버지!
제가 지금 오그라든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면
말씀안에서 사랑의 기온을 받아 오그라든 손에 따스한 사랑이 감돌게 하소서.
그리하여 형식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아버지께 찬미드리며
제 십자가의 무게만을 측정하기보단
함께 하는 이들의 십자가의 무게를 가볍게 해 주는 사랑을 행하게 하소서.
그런 저의 모습을 보시고
제 것은 아버지께서 들어주실테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화답송에서 처럼 노래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저의 반석 울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멘.

선행을 한 다는 것, 생명에로 나아간다는 것..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거울을 보아야 하고, 숨을 쉬고 있는지 진맥을 해 보아야 합니다.
…
온전히 뛰고 있는지,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주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하고 있는지..
…
가장 중요한 것은 착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착각은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어 버리고 맙니다.
…
《Re》^*^ 님 ,
“착각은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어 버리고 만다.”
저를 돌아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더 기도하며 저를 돌아보아야 겠다는 생각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