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1.말씀읽기: 마르8,14-21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마태 16,5-12)



2. 말씀연구

 유혹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나도 모르게 빠져 들고 있는 것. 나도 모르게 형제자매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쳐서 다른 곳으로 이끌어 버리는 것. 예수님을 믿지 않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공동체가 분열되고, 가정이 분열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에 신경 쓰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필요한 것에 관심을 두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14 그런데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가끔은 준비했다고 했는데 잊어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혼자일 경우는 문제가 안 되지만 여럿일 경우나, 좀 높은 사람이 있을 경우는 당황하게 됩니다. 혹시 그렇게 당황한적 있으십니까?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다가 빵이 한 덩어리밖에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설마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 되도록 예수님께서 놔두시겠습니까? 하지만 제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스승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빵 한 덩어리이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스승님께 대한 공경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먼저 헤로데는 누구입니까? 그는 예수님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예수님을 “자신이 목을 베었던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불신했고, 기껏해야 대중 운동의 지도자로서, 유달리 비범한 어떤 인물 정도로밖에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누룩은 불신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또한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누룩은 허례와 위선과 교만과 불신입니다.



 누룩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주로 나쁜 의미에서의 내적 충동력과 관련한 은유였습니다. 누룩이 사람에 관계되어 표현될 때는 악의 성향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좁은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사악한 행위, 즉 죄와 악덕에로 기우는 성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영향을 미치는 부패한 “정신 상태”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어울리다보면 분명 예수님께로 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결코 예수님을 믿고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 하지 말고, 그렇게 신앙이 약해지도록 남을 유혹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누룩에 관한 절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를 함께 거론하고 있는 것은, 첫 번째로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가 밀착해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명분에서 출발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통일된 유대 백성과 민족 국가의 성취에 대한 공동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 같은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마음에 품는 데 대해 경고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종교적 시각에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불신에 찬 배척으로 하여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는 모든 상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의견이 일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할 때에 보였던 그 불신으로서, 그분은 이에 대해 당시 놀라울 정도로 단호하게 맞서 대처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경고하고자 하시는, 앞 못 보는 소경의 상태요 천박함이자 고집스러움이기도 합니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동문서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까지도 동문서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이 누룩처럼 퍼져서 제자들 마음속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데 제자들은 다른 걱정을 합니다.

 제자들은 빵을 미리 사 두지 않은 것을 걱정합니다. 예수께서는 미래의 안전을 위하여 재물을 축적하는 체제에 집착하지 말도록(바리사아파 사람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도록) 제자들에게 주의를 주십니다. 모든 사람이 골고루 나누면 부족함이 없을 것임을, 모든 것을 나누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임을 믿고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사랑이 넘쳐흐르는 분이신데 그분께서 해야 할 걱정을 내가 하고 있으니. 나는 그분께 사랑과 신뢰를 드리고 나머지는 그분의 몫으로 돌려 드리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식사를 걱정해 줘야지, 아이가 아버지와 자신의 식사를 걱정해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제자들의 마음은 더욱 믿음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이해하지 못한 그들,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닫혀 있는 그들. 까마귀 고기 먹어서 그럴까요? ^*^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고, 믿음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마음이 완고해집니다.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레미야서와 에제키엘서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예레미야:“우몽하고 생각이 없는 백성아, 너희는 제발 이것을 들어 보아라. 그들에게는 두 눈이 있으되 보지 않는도다. 두 귀가 있으되 듣지 않는 도다.”(예레5,21)

에제키엘:“두 눈이 성하면서도 보려고 하지 않고, 두 귀가 성하면서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반역적인 족속들”(에제키엘 12,2)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적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쓸데없는 곳에 신경을 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아서 신앙생활 하며,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을 두는 신앙생활.

 좀더 중요한 것에 가치를 두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맡길 것은 확실하게 맡겨 놓고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마음이 닫혀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답답하실 테니 안다고 대답합시다.

“너무 그러지 마세유. 다 알고 있는데 출력이 안 되는 것 뿐이유. 담엔 잘할께유…”



3. 나눔 및 묵상

① 요즘 내가 근심 걱정 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줍니까? 또한 나의 취향이나 행동들이 다른 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② 신앙인들이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어떻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카테고리: TN-lectiodominus-C2, 복음 나눔(주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바른 순명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기준을 두고 행해야 하는지를… 본인들이 함께 하기를 꺼려하여 밀어내면서
    다른 말을 하고 있지요. 심지어는 “함께 하지고 했는데도 저 사람은 함께 하지 않는다고..” ㅎㅎ
    참 미묘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건드리기도 어렵지요.
    제가 판단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두고 악의 영향을 미치는 누룩이라 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이 아무리 악한 누룩이라 칭한다 하더라도 휩싸이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야 하겠지요?
    지금은 제 누룩이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긴요히 쓰일 날이 있을 것이라 믿기에
    더 깊은 발효를 하고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누룩이 되기 위해 …
    지금은 존재감 없는 누룩이지요. 하하^*^
    하지만 그 존재감은 아버지께서 인정해 주시면 그만이니까 그런 이유로 다른 이들을 미워한다면
    제가 나쁜 누룩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당당히 맞서는 의로운 모습을 그들은 긴장합니다.
    고개를 교만스레 들어 경계하지만 그들은 더 두려워 합니다.
    세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과 손잡지 않고 당당히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좋은 표양이 되라라 생각합니다.
    진정한 신앙인이 살아가는 방법을….
    그 모습에서 바른 신앙인의 삶을 배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본을 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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