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구원되는가?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것을 멀리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수도원에 갓 입회한 수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수사님은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수사님은 수도원 안에서는 하느님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사님은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하느님을 찾기로 결심 했습니다.
수사님은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살며시 수도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밤새 정처 없이 걷다가 커다란 나무아래에서 잠시 쉬어 가려고 기대어 앉았습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그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이 밤에 어디를 가느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더듬 더듬 답을 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찾으러 가는 길입니다.”
“너는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다고 생각하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수도원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또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이런 말씀이 들렸습니다.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가거라. 수도원에 돌아가면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있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분이 바로 너의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성당에 들어가 보면 십자가 아래 꿇어 기도하고 있는 분이 계실 것이다. 그분이 바로 너의 하느님이시다”
……
젊은 수사님은 다시 발길을 돌려 수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마당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원장 수사님이셨습니다.
그는 원장 수사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나의 하느님! 저는 하느님을 몰라 뵙고 먼데서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원장 수사님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자네가 나의 하느님일세! 우리는 하느님을 먼 곳에서 찾으면 안 된다네.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지.”
젊은 수사님은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캄캄한 성당 안에는 성체 등 만이 희미하게 어두움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희미한 어두움 속에 꿇어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수도원에서 자신을 제일 많이 괴롭혔던 수사님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 내 눈에 보잘것 없어 보이는 그 사람이 나의 하느님이셨구나. 엄한 원장수사님의 모습으로, 나를 많이 괴롭히는 수사님의 모습으로 다가온 하느님을 나는 몰라 뵈었구나…
바로 옆에 계신 하느님을 몰라 뵙고 멀리서 하느님을 찾으려고 하였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몰라 뵌 나자렛 사람들이 먼데서 메시아를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고장 나자렛에 가셔서 늘 하시던 것처럼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칭찬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당신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우리에게 증거를 보여주시오.
그들은 뭔가 특별한 것을 요구했습니다. 어떤 특권을 요구했습니다. 적어도 동네 사람이고, 아는 사이이니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문을 합니다. 하지만 동네사람이라고 해서 구원을 보증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는 이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 등장하는 시리아 사령관 나아만도 그랬습니다. 나아만은 나병에 걸려서 치유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했습니다.
“요르단 강에 가서 그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시오. 그리하면 새살이 나서 깨끗하게 될 것이오”
하지만 나아만은 화를 냈습니다. 물에 가서 씻기만 하면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좀더 특별한 예식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의 부하들이 나아만에게 이렇게 조언을 했습니다.
“만일 이 예언자가 더 어려운 일을 장군께 시켰더라면 장군께서는 그 일을 분명히 하셨을 것입니다. 그는 장군께 몸이나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는데 그것쯤 못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나아만은 결국 예언자 엘리사가 일러 준대로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씼었습니다. 그러자 새살이 돋아 그의 몸은 마치 어린아이 몸처럼 깨끗해 졌습니다.
화를 내던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돌아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습니다.”
이방인 나아만은 이렇게 하느님을 믿게 되었지만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산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려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내가 아니겠습니까? 뭔가 특별한 것을 요구하면서 당신께서 정말 하느님이시라면 제게 이것을 해 줘 보십시오. 그러면 제가 믿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더 보여 주어야만이 나를 믿겠느냐? 내가 너에게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건만 너는 너의 틀에 나를 맞추려 하는구나. 왜 너는 네 옆에 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사랑이신 주님!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제게 다가오셨는지, 그리고 제가 어떤 모습으로 당신께 다가갔었는지 살펴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매 순간 당신을 알아 뵈올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