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영원한 안식을 —-고 윤형중 신부 장례미사 추도사(요약)
김 수환 추기경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는 고 윤형중 신부님과 마지막 하직인사를 나누려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고별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널리 또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시던 윤 신부님은 말씀과 글로써 복음전파에 평생을 바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분을 가리켜 명강론가, 탁월한 교리교사, 한국에 있어서의 가톨릭 사상의 선구자, 한국교회의 정신적 대변인, 진리의 증거자, 정의의 투사 등 여러 가지 칭호로 찬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님이 얼마나 큰 열성으로 복음전파에 헌신하셨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찬사도 이 분에게 대해 다 말한 것은 되지 못합니다.
해박한 신학지식과 질서정연한 이론전개로 수많은 지성인들을 입교시켰고, 가톨릭을 반대하는 어느 누구와도 두려움 없이 맞서신 가톨릭의 보이스셨습니다.
제가 직접 신부님을 주교관에 모신 마지막 11년, 그 중에서도 최근 수년간 윤신부님은 모든 것에서 진정 해탈된 해맑고 깨끗한 삶을 가지셨습니다.
이 기간에 신부님이 지니신 것은 오직 사랑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나라에 대한 사랑, 겨레에 대한 사랑, 교회와 이웃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신부님이 말년에 민주회복 국민회의에 참여하시고 한때 그 대변인이 되신 것은 어떤 정치적 야심이나 사회적 명성에 대한 욕망에서가 아니라, 억눌린 사람들과 소리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시겠다는 사랑에서 였읍니다. 신부님의 이런 정신은 그 유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신부님은 당신이 교구 경리국에 맡기신 얼마 되지 않는 헌금 중에서 백만원을 국제사면위 한국 위원회에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국제사면위 한국 위원회는 정의와 인권회복을 위해 싸우다 투옥된 이들의 사면과, 고통받고 있는 그 가족들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기구입니다.
신부님이 이 위원회에 당신이 남기신 금전의 거의 대부분을 내놓으신 것은 정의를 위해 일하다 박해받는 이들의 고통을 형제적 사랑으로 나누고 그들을 돕겠다는 복음정신에서 였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이 없어지고 약한자의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의롭고 밝은 나라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일념에서 였다고 믿습니다.
또한 신부님은 당신의 병이 무거움을 아시고 입원하기를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당신이 입원해서 병원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보다 한사람이라도 더 그 자리에서 병원진료의 혜택을 받게 하시겠다는 신부님의 높은 사랑이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유언 중 무엇보다도 감명깊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의 마음을 상해준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바이니 용서해 주시고, 내가 누구에게 용서해 줄 일이 꼭 있다면 진심으로 용서합니다. 이제 나는 먼저 떠나갑니다.”
참으로 이 짧은 말씀 속에서 우리는 신부님의 복음적 가난, 그 사랑과 용서, 그리고 하느님 손에 당신 생명과 모든 것을 내맡기는 믿음이 다 포함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정신으로 신부님은 당신의 임종의 날을 평화 속에 고요히 맞이하셨습니다.
신부님이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고맙습니다.”였습니다.
임종하시기 바로 전날 저녁 병상에서 당신을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세 번이나 거듭하신 이 말씀은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삶 자체와 죽음까지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시고 감사드리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한때 이 사회의 어두움을 밝히고자 훨훨 타오르는 횃불과도 같았던 윤 신부님은 모닥불처럼 고요히 타들어 갔습니다. 실명한 이에게 광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두 눈까지 바치셨듯이, 남을 밝혀주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 순간까지 불태우셨습니다.
이제 모닥불은 꺼졌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이 평생을 통하여 당신의 삶 전부를 태우신 그 사랑의 불꽃, 진리와 정의의 불꽃, 복음의 불꽃은 많은 이의 가슴속에 계속 타오를 것입니다.
주여! 가신 윤 형 중 마태오 신부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