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칼」기 희생자주도미사중 김추기경 강론전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지난 9월 1일 새벽에 천만 뜻밖에 일어난 그 충격적인 사건, 사할린 상공에서 피격된 대한항공 007기의 참변으로 희생된 승객과 승무원 2백 69위의 영혼의 안식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기도드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분들의 죽음은 너무나 뜻밖이고, 억울하고, 너무나 큰 비극이기에 무엇으로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마음 역시 슬프고 애처롭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분들의 영혼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어 마지 않습니다. 그 어느 영혼도 사할린 하늘이나 바다 속에서 표류하고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시며 그의 자비는 한이 없으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분들을 당신의 영원한 생명의 나라, 이제는 죽음도 고통과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는 나라에 인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저는 슬픔에 잠긴 모든 유가족 여러분과 이 자리에 참석하신 유가족 여러분에게 사람의 말로서는 여러분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드릴 길이 없습니다. 단지 여러분과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그 슬픔과 비통을 마음으로나마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전능전지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말로는 결코 이런 죽음으로 끝나도록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죽음을 넘어 영생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고 그 때문에 죽음은 오히려 영생으로 넘어가는 관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많은 인간을 결국 죽어 썩고 말도록 만드셨다면, 더욱이 이번 경우처럼 일격의 미사에 맞아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도록 만드시고 버려 두신다면 그 하느님은 「칼」기를 격추시킨 냉혈의 소련사람들 보다 더 잔인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잔인하고 냉혈적인 하느님, 인간보다 더 악한 하느님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만물 중에서도 인간을 가장 존귀하게 또한 당신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느님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 편에서 죄를 범하고 하느님을 등진 일이 수없이 많아도, 하느님 편에서 인간을 버린 적은 절대 없다는 사실입니다. 뿐더러 하느님은 죄를 범하고 당신을 떠나는 인간을 죄 때문에 죽음까지 자처하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심지어 외아들까지 우리를 위해 내놓으셨읍니다.
이렇게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영혼들을 결코 버리실 수 없습니다. 그들 하나하나를 위해 당신의 외아들까지 내주신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분명히 이 영혼들을 당신 생명의 나라, 영광 가득찬 나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말은 비통에 젖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우리의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이 사랑을 본받고자 권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소중하게 보시고 사랑했다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직접적으로는 핵무기 같은 군사력, 즉 물리적 힘만을 최고의 가치로 믿는 소련에 의해 저질러졌지만, 그 원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들 안에서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까지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고 있는 인명경시풍조에서 부터 이번 같은 비극이 연류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사회․세계가 핵심적인 문제를 심각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수 있고 더욱이 세계가 그와 같은 맹목적인 무력행사로 말미암아 파멸될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번 사건이 얼마나 맹목적인 군사행동에서 일어났는지 또 인명경시나 사랑결핍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깨달아야 하겠읍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본받도록 우리 자신부터 회개하고 더 나아가 전세계가 회개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인간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생명을 아끼며 생명을 다시 찾는 정신운동을 우리 안에서부터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도의적 실질적인 책임은 말할 것 없이 소련이 져야합니다.
여지없이 그들은 우리 나라와 세계 공동체 앞에 사과해야 하고 또한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해결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우리 안에서부터 다시 찾는데 있습니다. 미움은 어떤 의미로도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더 비극적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는 이 시간, 비명에 가신 분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 빌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간성 회복을 위해 기도드리고 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기도는 가신 분들의 영혼도 염원하는 바라고 믿습니다. 그분들은 실로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오늘의 인류세계가 인간애를 다시 찾고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바쳐진 사랑의 제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여,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어 주신 그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으로 그들을 비추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