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 인도—-김정진 신부

 

장례미사 ———김정진 신부




(미사시작때)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우리는 엇그제 세상을 떠나신 고인의 유족들과 슬픔을 같이 나누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 분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 미사는 고인을 위하여 봉헌하는 우리의 참된 제사입니다. 이 거룩한 제사를 통하여, 우리 다 같이 고인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얻어, 영원한 생명과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바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사도예절 전에)




지금 우리는, 우리와 세상을 달리하신 고인을 떠나 보내는 고별의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주님 안에 선종하신 고인의 마지막 길을 경건하게 지켜보면서, 우리의 귀중하고 사랑하는 고인을 하느님 나라로 전송하는 것입니다.


고인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살아있고, 우리가 현세를 떠난 후 하느님 대전에서 상봉할 것이며, 세상 끝날에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고인을 전송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유가족과 모든 이에게 큰 슬픔과 비애를 안겨주는 것입니다만, 신앙으로서는 슬픔을 씻고, 주님의 한없는 자비를 기도하며,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유족들과 우리는, 믿음과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면서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관문이라는 것을 믿어알고 있습니다. 미신자의 경우와 같이, 죽음을 최대의 비극으로 생각하거나, 죽음으로 만사가 끝난다는 마음으로, 극심한 실망과 낙담으로 처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무참히 돌아가셨을 적에 성모 마리아께서는 비통과 슬픔에 누구보다도 깊이 잠기셨어도, 내일의 부활의 희망을 안고 서로 위로하며 살으셨습니다. 우리는 성모 마리아와 경건한 부인들의 이같은 신앙심과 의연한 태도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죽음의 순간! 깊은 비애와 슬픔을 드러내면서 가을의 최후의 낙엽이 눈물과 같이 인간의 무덤 위에 떨어져 뒹구는 거와 흡사합니다.


인간도 그와 같은 모양으로 사라집니다. 노랗고 시들어진 나뭇잎과 같이, 얼마동안 공중에 떠돌다가 곧 지상에 떨어집니다. 그 소리는 나뭇잎 한잎, 이상의 것이 못 됩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다”(히브 9,27)라고 말씀하셨지만, 누구나 이에 도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육체는 죽으면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지든가, 혹은 지구의 흙으로 화해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사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말미암아 끝나는 이 생명, 현재 지상에서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이 생명은 단지 부패로 끝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한번은 오고야 말,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에 관하여 광대무변한 우주도, 탐구에 전념하는 현대 자연과학도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문제를 시원스럽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철학자나 종교가들이 인간의 죽음과 그 뒤에 일에 관한 진상을 가지가지로 해석하고, 억측을 표명하여 왔으나, 예수님은 인생의 죽음과 사후관을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깨끗이 해결해 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또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 11,25)라는 말씀으로써,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어 주십니다.




신앙과 사랑으로 예수님과 결합된 인간의 죽음과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며, 한 몫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실 적부터 죽으실 때까지 항상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뜻대로 따르셨고, 오로지 사랑의 길을 걸으시고, 하늘 나라에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같은 사랑의 길에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랑의 행위와 사랑의 봉사만이 우리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해 줍니다. 세상의 온갖 재물은 상실되고, 권력과 세도는 자취조차 없어지고 맙니다. 언제나 없어지고 말 것을, 절대적인 목표물인양 추구하고 얻으려고 하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라 하겠습니다. 죽음이란 거울에 비춰보아, 그래도 존속하는 가치만이 참된 가치이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죽음은 세상의 온갖 것을 빼앗아 가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직 하나만이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순수한 사랑에 의한 애덕의 실천이며, 사랑의 봉사활동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일생을 이기주의의 사고방식으로 살며, 개인의 안일과 쾌락속에서 자기만을 생각하며 세월을 보낸 자에게, 죽음이 닥쳐오면 반드시 당황하고 실망하며, 분노로 광증을 일으켜 영원한 결정적인 실패를 맛보며,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이기주의와는 정 반대이며, 이기주의자들을 근본적으로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이 행하신 것과 같이, 자기 이익을 찾지 않고, 이웃 사람을 위하여 생활하는 것을 생활철학으로 삼은 이들은, 자기가 세상에서 도와주고 위로해 주고, 간호해 주고, 존중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것이며 영원한 생명의 나라가 가까이 옴을 피부로 느낄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예수님과 같이 살고,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신앙과 사랑의 정신으로 사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천국은 지상 생활의 연장입니다.


지상에서 사랑의 생활을 한다면, 이미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고 있지만, 이기주의적인 생활의 주역들에게는, 이미 멸망의 암흑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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