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성종 프란치스코 신부를 주의 품에 보내면서– 김창렬 신부

 

박 성종 프란치스코 신부를 주의 품에 보내면서——- 김창렬 신부




내 사랑하는 동지, 나의 벗, 나의 형제 프란치스코 성종! 내 말 좀 들어보오.


나는 그대가 지금 내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줄 믿소.


이 사람, 갑자기 떠나갔구료. 나는 그대를, ‘사람’이라고 부르오.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지금 사람이시고 또 영원히 사람이시니 그대 주검을 앞에 두고도 나는 그대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소.




회갑을 불과 두 달 앞두고 가버렸다는 사실이, 아니 부르심을 받고 돌아갔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 동안은 나를 슬프게 잠기게 했오만, 그러나 지금 나는 제 정신을 바로 잡고 말할 수 있게 되었소.


“지금 그 벗에게 회갑이 문제겠는가? 영생을 시작한 이 마당에.”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오. “우리가 지금 갈라져 있지만 그것은 다시 만나기 위한, 그리고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한 갈라짐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소.


“그가 오늘 불리어 갔지만 불행하게 만들기 위한 부르심이 아니라 평화와 기쁨 속에 당신 생명을 함께 누리게 하시기 위한 부르심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단 말이오. 그대를 지어 세상에 보내시고, 그대를 불러 당신의 아들과 사제 되게 하신 그 아버지 부르시니 기꺼이 응하여 돌아간 그대, 그러한 그대에게 그 좋으신 아버지께서 어련히 잘 해 주시랴 싶어 눈물을 거두었소이다. 그분께 받은 나의 작은 우정으로 인해 나 어찌 한량없는 자비와 사랑을 욕되게 할 수 있으리오.




그대는 지금 많은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리라.


그곳에서는 이 세상에서 그대가 즐기던 음식이며 푸른 들에서의 공치기가 문제되지 않음을, 그곳에서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 오락이나 기호 따위가 문제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으리라. 그리고 그대는 지금 그 사실을 내게 말해 주고 싶으리라.




사랑하는 신우 성종, 그대는 지금 나를 보고 있겠지?


나는 그대가 지금 나를 보고 내 말을 듣고 있으리라 믿으오. ‘모든 성인의 통공’이 있다는 것을 그대와 나는 믿지 않았소? 세상과 천국과 연옥의 형제 자매들이 서로 통공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우리는 다 같이 배웠고 믿지 않았소?


나는 그것을 믿기에 이렇게 그대에게 말하는 것이고, 또 그대를 존경하고 사랑하던 이들이 여기 이렇게 모여 그대를 위해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간청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오.




한편 그대는 여기 있는 우리들, 그리고 여기 오지 못한 다른 많은 형제 자매들을 바라다보며 기도하고 있을 줄 아오. 우리는 지금 주님 안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통공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소?




그대에게 나 잘못한 일 많았소. 용서해 주오. 또 다른 이들도 그대 마음 상해주고 넉넉히 사랑하지 못한 일 있으리다. 용서해 주오.


그대 주검 앞에서 나는 그대가 이 세상에 함께 있을 때 그대가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며 기쁘게 해준 만큼 내가 그대에게 못 해준 것을 깨닫고 매우 마음 아파지더이다.


그러나 그대는 지금 세상의 부족하고 흠 있던 친교나 인간 관계를 벗어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된 사람들과의 친교를 즐기고 있으려니 믿으며 내 자신을 달래고 싶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는 거울에서 보듯, 안개 속을 더듬어 보듯, 구름에 가리어진 것을 희미하게 알 수밖에 없어 안타깝고 때로는 원망스럽기까지 하던 분을 속 시원히 뵙고 있을 터이니 그 얼마나 좋겠소? 그대에게 진심으로 축하하오. 먼저 발탁되었음을.




혹시 그대 아직 고통 속에 단련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더라도 염려마오. 좀 참기 어렵겠소만 주님께서 지금 목욕을 시키시는 것이리라. 또 우리가 있지 않소? 계속 주님을 졸라서 빨리 목욕 끝내 주시도록 해 보리다. 오늘 이 미사로 훨씬 개운해졌겠고 목욕의 진척도 빨라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오. 앞으로 계속 기억하리다. 그대도 우리 위해 빌어주기 바라오.




오늘 미사를 드리며 나는 참 기뻤소이다.


오늘 나는 마치 두 제물을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심정이었소. 하나는 하느님의 ‘친아들’ 예수님,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양아들’ 프란치스코. 하나는 ‘그리스도’ 다른 하나는 ‘다른 그리스도’ 하나는 ‘큰사제’ 다른 아들은 ‘작은 사제’ 이런 느낌이 들어 흐뭇했소이다.




미사 때 나는 그대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공동 스승이며 형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그대가 짊어졌던 크고 작은 십자가들, 그대가 이룬 모든 업적, 그대의 성취와 좌절, 성공과 실패, 한 마디로 그대의 모든 것을 스승이며 형님이신 본 제물에 묶어서 존엄하고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바쳐드렸소이다.


또 한가지 내가 미사 때 느낀 것은 사제의 죽음은 너무나도 복된 것이라는 것이었소. 우리 스승께서 돌아가신 것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그 분의 덕으로 호화로운 죽음이라는 것을, 많은 이의 환송 속에 본 고향으로, 즉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기쁜 여행길임을 깨달았소이다.




보오. 여기 추기경님을 비롯해 주교님들과 동료 사제들, 수도자들 그리고 이 많은 형제 자매님들을. 이것은 스승님의 죽음의 장면. 매장의 장면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 좋으신지 이렇게 좋으실까! 그대는 지금 그것을 알고 있겠지.


그리고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와서 보고 맛드려라”하고 외치고 싶겠지. 알았소이다.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며 살아가리다.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주오.




이곳에 아직 남아있는 그대의 작은 형제/  바오로 창렬 신부




이 글은 카테고리: logos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