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고) 정금주양의 추도미사 —— 이기명 신부
세상에 피어 있는 꽃은 지게 마련이고! 성하다고 하는 것도 언젠가는 사그러지게 마련이고 산 사람도 언젠가는 떠나게 마련이라 하지만! ….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기억하며 기도하는 정금주양의 죽음이란, 살아서 이 사건을 생각해 보는 우리뿐만 아니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참으로 어이없고, 마음 아프기 한없는 참상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나이 27세! 이제 그는 한참 성숙한 숙녀로서, !
부모님들에게는 효성스러운 따님으로서! 형제와 동료들에게는 다정했던 언니로서! 국가적으로는 대외적인 일꾼으로서! …. 젊디젊은 나이에, 꿈도 컷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도! 피지 못한 정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평소에 7주일! 10일 후가 아니라, 이제는 영영, 그 모습!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이! …. 부모와 형제! 동료와 웃어른들의 곁을 시신도 찾을 수 없이, 어디론가 떠났기에! …. 그 아픔은, 부모님들을 비롯하여 아는 이들의 마음만 더 큰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 크나큰 비통함을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이처럼 못박고 저질러 놨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쉽게 말해서, 무자비한 소련의 어이없는 만행이라고 하지만! …. 그 소련 사람들이란 어떠한 사람들이겠습니까?
우리보다 생기기를 잘 못 생기고, 배운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하겠습니까? ….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머리와 재주! 능력으로 …. 우리보다 더 많이 가졌기에, 인공위성을! 전자장치를! 미사일로 우리 칼-기를! 죄 없는 269명의 아까운 생명들을 한 순간에, 시신도 찾을 길 없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지혜! 그러한 재산! 그러한 재능을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으며, ….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고 우리는 한없이 한탄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그들은 그럴 수밖에!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양심과 선행!/ 후세와 하느님을 모르는 그들이기에! 100살을 못살고 저희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지만!/ 무력과 권력밖에는 더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그처럼 끔찍한 짓을 생각도 없이 손쉽게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은 바가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네 영혼에 해가 되면, 무엇에 유익하리요! …. 지옥에 떨어진 네 영혼을, 무엇을 주고 되찾아내겠느냐?! …. 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음이란 쓰라리고 허망한 것이고, 괴롭고 슬픈 이별인 것 죽음 앞에서는 억대의 금력이나, 과학의 위력도 세상을 주름잡고 호령할 수 있는 권력도! 자손들의 지극한 효성,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은 한 순간에, 한 인간에서 모든 것을 빼앗고, 홀로 단신 홀로히 어디론지 떠나가게 합니다. 아무리 아껴주고 사랑해 주던 사람들, 사랑하는 처자라 할지라도 무덤밖에는 동행하지 못합니다. …. 무덤도 없기에 더 안타까운 그렇게 좋아 보이던 삶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어떤 재물이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가을 바람 찬서리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모두다 인연이 없는 듯 허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을 이 세상에서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죽음 다음에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되는가를 말씀해 주셨을 뿐 아니라, 스스로 보여주시고 증거해 주신 것입니다.
즉, 정금주양이, 현대 무기인 포악한 미사일로 잠깐 순간에 희생되었다면, 2000년 전 그 당시 최대 강국인 로마인들의 손에 죄 없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모든 일을 다 끝낸 줄 알았지만, 예수님은 미리 말씀하신 바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40일 동안 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으셨고,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이들에게도 그와 같은 당신의 천상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증거하셨기에! ….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아니한 것이며, 죽음의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으로, 현세의 짧은 세월보다는, 죽음을 지나 영원한 세상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그의 명복을 기도하고 있는 정금주양은 어떠한 삶을 준비했다고 하겠습니까?
잔악한 만행의 제물이 되어 숨져간, 정금주양이 가졌던 하느님께 대한 열망은 퍽이나 순수하고 깊은 마음씨였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정기적으로 휴일이 있고, 시간이 있어서가 아니라, 쉬는 날이면 이 성당을 찾아 하느님께 기도하였고, 누가 시키고 이끌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반년 전부터 저에게 여러 차례 들려서, 하느님과 후세에 대한 진리를 정성스럽게 받아들이면서 기뻐했던 모습이 저에게도 생생하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우리를 내시고 거두시는 아버지 주님 곁으로 가기 위해 말없이 준비하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이렇게 우리의 곁을 떠난 정양을! 우리 모두는 참으로 아쉬워합니다.
왜? 하느님은 그를 이처럼 빨리 데려 가셨을까?!
예전에, 한 임금님이 커다란 정원에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철 따라 심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곳을 관리하는 정원사도 두었습니다.
정원사는 넓디 넓은 정원에 꽃들을 철 따라 가꾸면서 자식처럼 키웠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그 수많은 꽃들 중에 마음에 들고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정원사는 으래히 아침저녁으로 그 꽃을 찾아보며 여간 좋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그 꽃을 찾아가 보니 누군가 잘라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마음에 소리소리 지르며, “누가 내 꽃을 잘랐느냐?!”고 했습니다.
정원사도 주인이 필요로 해서 쓰셨다는 데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인이 된 정금주양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이 세상이라는 이 정원에서 주님의 천상 낙원으로 그의 생명이 옮겨졌습니다. 사실 우리도 현재 살고 있지만, 육신이라는 이 몸이 본의미의 나의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목숨이란 내 자신이 자신을 의식하기이전에, 또한 내가 이러한 모습을 원하지도 않았는데! ….
부모를 통하여 주어진 것이며, 부모도 배어서 낳아주고 키워주기는 하셨어도, 당신들이 원하는 데로! 그 자녀를 만든 것이 아니기에, 오늘의 이 생명이 있기까지에 부모가 협력자이기는 하지만 생명의 주인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생명의 주인이라면, 오늘의 이러한 죽음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도 자기 몸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키 한치나, 주름살 하나라도!
피 한 방울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는 처지이기에, 주인이 되지 못하고 관리인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육신이라는 집을 떠나 생명의 원천이신 아버지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고인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찍부터 그러한 삶의 진리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고 찾아 신앙을 받아들여 그 준비를 잘 해 왔기에! 또한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사랑하셨기에! 아까운 나이에 일찍 데려 가셨다고 위로를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고인은 이제 현세의 어려움을 떠나 그의 눈에는 눈물이 없고,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없는 영원한 안식을 천국에서 누리게 되었음을 믿으며, 우리 모두가 경건하게 고인의 명복을 기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