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 강론 ———– 윤석원 신부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어른들께서는 아직 망자 ○○○의 생시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실 것입니다. 임종을 앞에 두고 병고와 마지막 싸움을 하시던 용감하고도 거룩한 모습이며 여러 가지 추억들이 아직도 생생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께서는 많은 친지와 친척이 이 자리에 와 계시지마는 인사 한 마디없이 말없이 잠잠히 누워계실 뿐입니다. 몸은 이곳에 누워 계시지마는 넋은 이미 유명을 달리한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께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온전히 끝나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아직도 어디엔가에서 삶을 계속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망자 ○○○의 명복을 빈다는 것은 너무나도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모순된 이야기입니다만 그 무서운 공산 독재주의자 스탈린이 죽었을 때 소련 정부에서는 장례식날 전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반기를 달고 스탈린의 명복을 빌라고 지시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사후의 세상과 영혼의 불멸을 믿지 않고 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이라고 철저히 주장해오던 유물 공산주의자들이 누구에게 무슨 명복을 빌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인간들은 말로는 하느님과 인간혼의 불멸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마음은 의식 중에 하느님을 찾고 사후에 행복을 그분에게 은근히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죽음이 인생의 결정적인 종말이라면 오히려 죽기를 바라고 기뻐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이 오래 살면 살수록 모든 것이 불리해져서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 보통인데 무엇 때문에 끝없는 안식인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괴롭고 지칠 때 깊이 잠들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자는 사람을 깨우려 하지 않고 또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자는 동안이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다고 보는 까닭입니다.
만일 죽음이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끝없는 망각의 세상이라면 기쁘게 죽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못한 것은 죽음이 인생의 최후 종말이 아니거나 다른 삶의 세상에로의 옮김이 되는 까닭입니다. 그 다른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져서 다들 두려워하고 겁내는 것입니다.
상을 받을 복된 세상이 되겠는지,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는 불행의 세상이 되겠는지 자신이 없어서 그러한 것입니다. 지상의 생활이 죄스러운 사람일수록 죽음의 공포가 더 큰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은 다음에 자신의 처지가 불행하지나 않을까 하는 예감에서 일 것입니다.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그만이라면 죄의 무서운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해야 할텐데 그렇치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이 절박한 것을 예감하게 되면 마지막으로 맛있는 요리나 권리나 재산이나 육신쾌락에 대한 욕망보다는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 상한 이에게 화해를 청하고 자손들에게는 유익한 말 한마디라도 더 남기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죽음이 박두한 사람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는 쾌락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재물이나 자식도 아닌 믿음의 평안만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생존시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착하게 산 사람일수록 죽음은 보람찬 것이어서 안심을 주겠지만 남에게 악한 일을 하고 죄를 많이 범한 사람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지닌 사람에게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에 의미가 있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느님 앞에 올바르고 가정이나 이웃에게 얼마나 좋은 일을 하였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다행히도 ○○○께서는 하느님을, 살아 생존시에 하느님을 택하셨으며 가족을 위해서 충실하시고 이웃에게 좋은 일을 하셨기에 하느님 앞에 착한 신자가 되셨습니다. 이제 하느님 앞에 후한 갚음을 받고 계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가신 ○○○께서 길이 하느님 앞에서 고이 쉬실 수 있도록 다같이 미사 중에 열심히 기도를 올립시다.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