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특별 강론
정양모 신부
1. 주님은 나의 희망 – 충격적인 인물 – 예수의 생애와 사상
2. 비극적인 인물 –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
3. 희망의 주인공 – 예수 부활
1. 충격적인 인물 -예수의 생애와 사상
인간이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타인의 생애와 사상을 논하는 것은 언제고 외람된 일입니다. 더군다나 옛날 옛적 멀고먼 나라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상을 논하는 것은 두렵기까지 합니다. 두려운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사학도의 견지에서 그분의 지나간 삶을 밝히기도 쉽지 않지만, 신앙인의 관점에서 그분의 현존을 해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인간 정신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예수는 어떤 분이었는가” 묻게 되고, 신앙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I. 방법론적 반성
예수님은 문맹이 아니셨지만 아무런 필적도 남기지 않고 기원 후 30년경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석가와 소크라테스 같은 대사상가들이 집필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삼년 가까이 따라다닌 직제자들 역시 예수님 생시에나 예수께서 처형되신 직후에 스승에 대해서 기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승의 말씀과 행적을 입으로 전했을 따름입니다. 제자들이 구전으로 전한 스승의 말씀과 행적은 대체로 짤막짤막하며 일정한 틀, 곧 양식(樣式)에 속합니다. 잡다한 말씀들을 양식에 따라서 정리하면, 예언어, 지혜어, 법률어, 비유, ‘나’-말씀, 추종어 등의 부류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를 양식에 따라서 정리하면, 상황어, 논쟁대화, 사제간대화(師弟間對話), 이적사화, 예수님과 무관한 사화, 수난사화 등의 부류로 구분됩니다.
이처럼 전대 제자들이 입으로 전한 짤막짤막한 말씀-전승과 이야기 전승을 후대 제자들은 함께 모아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원 후 60년대를 전후해서 마르코 복음서와 예수어록(Q)이 씌어졌습니다. 그 중 마르코 복음서는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지만, 어록은 그 일부만 마태오 및 루가 복음서에 전제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다음에 마태오 및 루가 복음서가 씌어졌습니다. 두 복음작가는 마르코 복음서와 어록을 참고했을 뿐 아니라, 각기 별도로 예수께 관한 전승을 수집하여 복음서 편찬에 이용했습니다.
끝으로 90년경에 또 한 가지 새로운 복음서가 씌어졌습니다. 곧 요한 복음서입니다. 요한 복음작가는 자기 나름대로 예수께 관한 전승을 수집하고 아울러 예수께 관해서 많은 사색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께 관한 전승과 함께 자신이 사색한 것을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생애와 사상을 밝히기 위해서 우리는 현존하는 복음서에서 예수께로 소급하는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 복음서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단편적인 전승으로, 단편적인 전승에서 역사상의 예수께로 소급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모임의 성격상 구체적으로 방법론을 논할 필요는 없고, 방법론에 의해서 밝혀진 결과, 곧 예수님의 생애와 사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II. 생애 윤락
예수께서는 기원 원년에 탄생하셨다고 흔히 생각하나 실상은 기원 전 4년 이전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분이 헤로데 대왕 생존시에 탄생하셨으므로, 대왕이 사망한 해(기원 전 4년) 이전에 탄생하셨던 것입니다. 기원 전 6년경에 탄생하셨다고 봐 무방할 것입니다. 그분은 기원 후 27년경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까지(루가 3,1) 이스라엘 북부 나자렛 촌에서 조용히 살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공적으로 활약하실 때 ‘나자렛 사람 예수’로 통했습니다.
그분이 나자렛에서 어떻게 나날을 보내셨는지 알 수 없으니, 여느 사람들과 별다른 것 없이 평범하게 살으셨다고 생각됩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기술자로 통했습니다(마르 6, 3). 미장이, 대장장이, 목수가 하는 일을 두루 하셨던 것 같습니다. 특기할 현상은, 당대의 조혼 풍습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고 내내 독신으로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기원 후 27년경, 그러니까 그분이 33세쯤 되셔서, 사해 북부에서 심판과 회개를 외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일단 세례를 받으시고서는 고향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갈릴래아 각 지방을 두루 다니시면서 충격적인 말씀과 행위를 하셨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사상편에서 설명이 있겠습니다. 그분이 세례를 받으시고서는 고향·직업·부모친척을 멀리하신 것은 그 무렵에 강렬한 소명을 의식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 때 그분에게 하느님의 영이 임하셨다고 네 복음서에서는 한결같이 말합니다(마르 1,9-11; 마태 3,13-17; 루가 3,21-22: 요한 1,32-34). 예수께서도 요한 세례자와 그가 베푼 세례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마르 11,30; 마태 11,9-11. 21,32). 세례를 받으시고 오래지 않아 갈릴래아로 돌아가셔서 공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은 인종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불순한 지방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이 꽤 많았고 희랍 사상이 침투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분은 주로 갈릴래아 호수 북변에서, 특히 가파르나움 포구를 거점 삼아 활동하셨습니다(마태 4,12).
공적으로 활동하신 기간을 밝히기는 쉽지 않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의하면 공적인 활동 중 세 번 해방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순례했습니다(2,13; 6,4; 11,55). 요한 복음서의 증언을 따른다면 그분은 약 삼년 동안 공적으로 활약하신 셈입니다. 즉 기원 후 27-30년에 공공연히 활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그분이 출가하신 것을 심히 못마땅히 여겨 고향으로 데려오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마르 3,20-21·31-35; 요한 7,5).
한 동안 예수님의 인기가 충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몰려왔습니다.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지만 오천 명이나 모인 때도 있었다고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말합니다(6,44). 그러나 차츰 인기가 하락하여 그분은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그분이 고립되어 가는 흔적을, 코라진과 벳사이다 및 가파르나움에 대해서 발설하신 경고(마태 11,20-24), 미약한 양떼를 격려하는 예언어(루가 12,32),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3-9),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다는 기사(요한 6,66-69) 등에서 명백히 보게 됩니다. 그분이 고립된 이유는, 군중이 메시아에게 건 정치적 기대를 예수께서는 실현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로, 유대 지도계급, 특히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그분의 충격적인 가르침과 파격적인 처신을 맹렬히 공격한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불길한 앞날을 예감하시고 또한 예고하시면서 열 두 제자 및 몇몇 부인과 함께 기원 후 30년경 해방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순례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 때 일어난 역사적 비극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국사범으로 몰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약 36세를 일기로 외롭게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사건은 십자가로써 끝나지 않았고 그분은 부활하여 세세대대로 방방곡곡에 현존하신다는 불가사의한 주장을 그의 제자들을 외쳤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제자들의 외침이 우리 나라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기회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관해서 상세히 말씀드릴 것이므로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III. 사상
어느 문화권에고 그 문화권을 지배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분위기가 명랑하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분위기도 밝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식민정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율법의 중압감 때문이었습니다. 시민법이면서 동시에 종교법인 율법이 인간의 삶을 옭아매었습니다.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법규가 무려 613조항이나 되었습니다. 그중 365조항은 금령이고 248조항은 명령입니다. 법률은 활개치고 사람은 허덕이는 상태였다고나 할까요? 예수께서는 율법을 ‘무거운 짐’이라고 하셨고 ‘수고하고 짐진 사람들’을 향해서 당신께 오라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과 처신을 살펴보면,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면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우선 그분의 처신을 살펴봅시다: 열심한 사람들은 불결한 사람들과 상종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에 개의치 않으시고, 예수께서는 자주 죄인들 특히 세관원들과 어울려 잡수시고 술잔을 나누셨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사람, 세관원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마르 2,16-17). 세관원들은 부정수입을 노릴 뿐 아니라 줄곧 이교도들과 접촉하기 때문에 신분 자체로서 불결한 사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이 포목을 재는 데 사용하는 자막대조차 불결한 물건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 아래 예수께서 자캐오의 집에 유숙하신 것은 파격적이며(루가 19,1-7), 세관원들과 창녀들이 천국에 들어가는데 반해서 의인들은 천국에서 제외되리라는 말씀은 폭탄선언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음식규정에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 쥐고기, 뱀고기, 토끼고기, 낙타고기, 개고기,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피를 금기식품으로 간주했는데, 예수께서 그 규정을 따르지 않아서 비판을 받으시자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힐 수 없습니다”고 단정하셨습니다(마르 7,15).
안식일에 노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다가 밀이삭을 비벼먹었습니다. 이것은 추수작업이라고 바리사이들은 판단하고 항의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지 않습니다”고 답변하셨습니다(마르 2,18). 법률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명답입니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법, 법을 위한 법은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명답입니다. 오늘날에는 상식에 속하는 말씀입니다만, 당대의 법률관으로 볼 때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율법에 대한 말씀을 살펴봅시다: 여기서는 마태 5,21-48에 있는 명제와 반명제만을 고찰할 것입니다. 명제는 구약성경과 거기서 파생한 전통을 내용으로 하고 있고, 반명제는 명제에 대한 예수님의 단언으로서 명제를 심화하는 경우도 있고 명제를 완전히 폐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절 | 명제 | 반명제 | 비고 |
21-26 27-28 33-37 31-32 38-42 43-48 |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맹세를 하지 말라 이혼장을 써주고 이혼하라 손해에 비례하여 보복하라 원수를 미워하라 | 분노하지도 말라 음욕도 갖지 말라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절대진실) 이혼불가 보복불가 원수를 사랑하라 | 명제심화 명제심화 명제심화 명제폐기 명제폐기 명제폐기 |
구약성경(하느님의 말씀!)과 거기서 파생한 전통을 문제시한 반명제야말로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율사들이 그분을 적대시하고 마침내 그분을 죽이고자 작심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율법관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성경에 담겨져 있다는 사상이 신명이 이후부터 강하게 대두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전에 생동하던 종교가 서적종교로 경화되어 갔습니다. 유대교의 율사들은 성경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해설하는데 전심전력했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전대 율사들이 전한 해설에 성경이 성경에 준하는 권위를 지니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전통입니다. 성경과 전통에의 집착은 유대교가 사활우기에 처했던 시기 즉 안티오코스 4세가 유대교를 말살시키고자 한 기원 전 170년대에 한층 더 굳어졌습니다. 예수 당대에는 성경과 전통은 가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영역을 침범했습니다. 왜 그분이 그렇게 하셨을까? 하느님을 지극히 가깝게 느끼시면서(압바!), 하느님의 뜻과 처사를 마음 깊이 의식하셨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리시며(마태 5,45),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한층 더 온정을 쏟으시고(루가 15,11-32), 여자들조차 인격으로 대우하여 아끼시는(마르 10,1-9) 압바의 심정과 처사를 예수께서는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리하여 성경문자와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하게 압바의 뜻과 처사를 구현하는 일에, 곧 철저하게 사람을 위하는 일에 헌신하셨던 것입니다. 요나와 살로몬(루가 11,29-32) 혹은 아브라함(요한 8,56-58)보다 위대한 분으로 자처하실 만큼 전전의식을 갖고서 말입니다.
압바의 뜻과 처사대로 사람을 극히 아끼신 예수님은 철저한 인도주의자이십니다. 그분이 율법에 대해서 취하신 태도에도 인도주의적인 면이 환히 드러나지만(특히 마르 2,18!), 반명제에도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가치관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가치를 일컬어 흔히 진선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절대적인 진실을 요구하였습니다(마태 5,33-37). 사람들이 서로 불신하여 하느님을 증인으로 등장시키는 명세행위를 금하시면서, 맹세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진실되기를 예수께서는 요구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가치를 신앙의 세계에서는 흔히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일체의 보복을 단죄하시고 원수에게까지 사랑을 베풀도록 요구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그분이 제시한 예들은 너무나 엄청납니다: 오른 뺨을 치는 사람에게 왼뺨마저 돌려대주고,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주며, 오리를 가라고 강요하면 십리를 가라고 합니다. 너무나 엄청난 말씀을 두고 주석가들이 고민하는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몇 가지 설을 말씀드리면,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살라고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을 환히 아시면서도 요구하셨다는 설이 있습니다.
인간의 무능력 내지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실천 불가능한 윤리를 제시했다는 설입니다. 또 다른 설로는, 일상생활 가운데 실천할 윤리가 아니라, 곧 닥칠 세말위기를 목전에 두고 잠시 동안 전력투구하라는 비상윤리에 불과하다는 견해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두 가지 설은, 산상수훈의 요구는 결국 일상생활에는 무용지물이라는 견해입니다.
정반대로, 그 요구를 매일매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처럼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그는 ‘부활’의 작중인물 네후류도프가 산상수훈을 읽고 느낀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오늘 비로소 산상수훈 속에서 추상적이면서 아름다운 사상, 대부분 과장된 실행 불가능한 요구로 보이는 그런 사상이 아니요, 단순하고 명백하며 실제적이고 실행하기 쉬운 계율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계율은 실행하기만 하면-그것은 충분히 가능하다-인간사회가 전연 새로운 조직으로 제정되어, 그렇게도 네후류도프를 분개케 하던 온갖 폭력이 자연히 소멸될 뿐 아니라, 인류에게 허여된 최고최대의 행복-지상천국-을 누리게 될 수 있는 실로 중대한 계율이었다.” 톨스토이가 예수님의 요구를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고 극히 존중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과연 ‘씌어진대로’ 예수님의 요구를 쉽게 실천할 수 있겠는지 의문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예수님의 철저한 요구를 견지하되, 그 요구를 문맥에 따라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열거하신 엄청난 예(마태 5,39b-42)는 결국 복수하지 말라는 근본적인 지침(5,39a)을 주지시키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낡은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드는 행동원리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마르 12,28-34): “첫째 계명은 이것입니다. 당신의 온 마음과 당신의 온 정신과 당신의 온 생각과 당신의 온 힘으로 주님이신 당신의 하느님을 사랑하시오”. 둘째 계명은 이렇습니다: “당신의 이웃을 당신처럼 사랑하시오.” 여기에 몇가지 반성이 필요합니다:
(1) 사랑은 법으로 규제할 수 없는 행동원리입니다. 법이 간섭할 수 없는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2) ‘이웃’은 우선 지금 이곳에서 나와 함께 사는 구체적인 이웃입니다. 가까이 함께 사는 이웃을 미워하면서 삼천만 동포, 세계 만민을 상대로 한 박애주의를 부르짖는 것은 위선입니다. 이웃사랑은 가까운 이웃에서부터 점차로 넓게 확산되어야 합니다.
(3)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흔히 말하는데 여기에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계명에 자애(自愛)가 전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것 역시 인간에게 속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입니다. 인간은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극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4) 우리 국민은 가족․친족을 중시한 나머지 가족적 이기주의, 친족적 이기주의가 강한 민족인 것 같습니다. 가족, 친척 혹은 동창, 고향사람은 위하면서 그 밖의 사람을 못본 체 하는 습성은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겠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비대해지면서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가정을 외부세계의 긴장으로부터 헤어나는 장소로 생각하고, 자기 보존의 수단으로서 사회적 은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적 이기주의는 오히려 더 강해질 우려가 다분히 있습니다.
(5) 이웃사랑과 사회참여의 문제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위험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루기 지난합니다. 극히 일반적인 말이기는 합니다만, 이웃사랑의 내용을 줄여서도 안되고 사회 현실을 어느 한 관점에서 평가해도 안되겠습니다. 이웃사랑은 교회 제의방에 감금되기에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사회 현실은 사랑의 원리 하나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2. 비극적인 인물 – 십자가 사건 –
I. 수난 예고 및 수난사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고 사람을 아끼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셨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진실과 사랑을 외치고 구현하는 데 전심 전력하셨습니다. 당대 사람들, 특히 지도급 인사들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태평성대에 불안을 안겨주는 위험한 인물로 보였습니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처세술을 익힌 사람들이 보통 제 명을 다 누리는데 반해서, 철저하게 ‘위하는 삶’을 영위한 사람들은 흔히 비명에 갔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마하트마 간디, 디트리히 본회퍼, 마르틴 루터 킹 같은 분들이 두드러진 예입니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질분자를 제거코자 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생리입니다.
예수께서도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예감하시고 때때로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의 군주인 헤모데 안티파스가 당신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바리사이들이 예수께 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여우’같은 군주가 무슨 협박을 하든 한 동안 소신껏 활동하시다가 끝장을 볼 각오를 하신다는 결의를 표명했습니다(루가 13,31-32).
야고보와 요한이, 신국이 곧 도래할 줄 믿고 자기네에게 좌의정, 우의정 감투를 안배해 달라고 예수께 청하자, 그분은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네는 내가 마실 잔을 마실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 마실 잔은 불운 즉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그분은 예감하셨던 것입니다(마르 10,38).
예루살렘 근처 베타니아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실 때 어떤 여자가 향유를 갖고 와서 그분의 머리에 부은 적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례 때 시신을 기름으로 바르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여자는 당신의 시신을 기름으로 바르는 예절을 앞당겨 했다고 예수께서는 해석했습니다(마르 14,8).
특히,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음식을 나누신 최후만찬 때 예수께서는 당신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을 절감하셨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따로 축성하신 것은, 몸과 피가 갈라질 것을 뜻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겟세마니에서는 죽음을 예감하시면서 지독히 고민하십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어린이가 아버지에게 달라붙듯, 당신의 압바에게 호소하십니다. 죽음의 관을 거두어 주십사고. 그러나 즉각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기도를 덧붙이셨습니다(마르 14,32-42). 이 순간에라도 원하셨다면, 예수께서는 해방절에 예루살렘에 순례온 군중들 사이로 잠적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걸어가신 길을 죽음으로써 날인하는 것이 압바의 뜻임을 의식하시고 조용히 체포되셨습니다. 때는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그 다음의 사건들은 신속히 진행되었습니다. 금요일 아침에 유대 최고의회가 협의한 결과(마르 15,1) 하느님을 모독한 죄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14,62-64). 그러나 유대 최고의회는 사형언도를 내릴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압송하여 엉뚱하게도 정치적인 죄목으로 고발했습니다. 예수께서 로마 황제의 허락도 없이 ‘유대인들의 왕’으로 자처했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리하여 총독이 예수께 “당신이 유대인들의 왕이요?”라고 묻자, 예수께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모호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오”(15,2). 그러고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순간까지 한 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고 합니다(마르코의 기록). 예수님을 처단코자 주력한 사람들은 유대 지도급 인사들, 특히 고급 제관들이었습니다. 군중은 지도급 인사들의 충동을 받는대로 움직였구요. 예나 지금이나 군중이란 그런 것입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께서 정치적으로 위험한 인물이 아닌 것을 즉각 알아차리고서 석방코자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민의에 못이겨 예수께 사형온도를 내렸습니다.
총독의 눈에는 갈릴래아 출신 청년의 운명쯤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민의를 따랐던 것입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스승이 십자가에 달리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공관복음서의 기록).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분을 따랐던 몇몇 부인은 끝까지 그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15,40-41).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로다”하는 말은 적어도 십자가 아래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또 한 마디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예수님 모국어로 전해오는 한 마디 말씀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였습니다. 시편 22장 1절의 말씀입니다. 이 시편에 대해서는 서인석 신부님께서 3월 13일 강론 때 자세히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백성과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하느님에게조차 버림받은 심정으로 예수께서는 이승을 마치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없는 고독을 맛보시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철저하게 하느님을 섬기고 끝까지 사람을 아끼신 분(마르 14,36;요한13,1;15,13)의 죽음 치고는 너무나 처절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II. 신학적 반성
(1) 우선 십자가는 비극적 종말입니다. 진실과 사랑을 부르짖고 구현하신 예수께서 처절하게 실패한 것입니다. 원시교회에서도 십자가를 스캔들이요 어리석음이라 했고(1고린 1,23), 거기에 달리신 분을 저주받은 분이라고 했습니다(갈라 3,13). 비극을 미화해서는 안됩니다. 역가치를 가치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2) 십자가, 거기에 달린 몸, 거기서 흘린 피가 값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지시하는 고통이 가치일 수도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극한상황 아래서도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이 가치입니다.
(3) 그러나 삶이 허무로 완전히 무너진다면 사람인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언젠가 만사가 끝없는 허무로 귀착한다면 사랑과 성실이 정말 뜻있는 것일까요? 정의와 불의, 진실과 거짓, 자유와 속박 간의 차이를 정말 견지할 수 있을까요?…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차이도 없이 결국 고철더미에 던져져 그곳에 영원히 머무른다면, 거짓과 불의를 거스려, 진리와 정의를 실현코자 투신하는 것이 정말 뜻있는 것일까요? 죽음으로 모든 것이 허무로 끝난다고 하면 일체의 의미와 일체의 인간윤리행위를 근본적으로 뒤엎게 됩니다.”
이점을 어느 정신의학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인간에게 요망되는 것은 몇몇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듯이 인생의 무의미를 견디어가는 일이 아니요, 오히려 인생의 절대적인 의의는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로고스는 논리보다 깊다. 초월적 의의를 배제하는 정신의학자는 조만간 환자들로부터 난처함을 겪게 된다”(프랭클).
3. 희망의 주인공 – 예수 부활 –
I. 사학의 한계
기원 후 30년경 해방절 주간 금요일 오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숨을 거두시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라는 사람이 그분을 석회석 언덕에 뚫은 무덤에 안장했습니다(마르 15,46).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요일 새벽에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다른 부인들이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입구가 열렸고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은 여러모로 확실시됩니다.
(1) 빈 무덤을 맨 먼저 발견한 이들은 부인들이었습니다(마르 16,1-6). 조작한 이야기라면 남자들이 발견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남존여비사상이 강했던 유대 사회에서는 여자들의 증언을 법적으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2)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 자체는 유대교인들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이 비게 된 원인을 두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유대인들 간에 다툼이 있었을 뿐입니다.
(3)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해서 부인들이나 제자들이 예수 부활신앙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의 부활관을 참고한다면(1고린 15,44) 무덤에 시신이 있건 없건 별 관계 없이 예수 부활신앙은 싹틀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구태여 빈 무덤 발견사화를 조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빈 무덤 발견사화 이외에 또 한 가지 사학의 영역에 극하는 것은 제자 예수 발현사화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려서 발현하신 그리스도는 시공을 초월하는 분이므로 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고, 단지 제자들의 체험은 시공 안에서 있었던 것이므로 사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1고린 15,4-8에 원시교회에서 작성한 발현 목록이 있습니다. 발현 체험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파 베드로, 열두 제자들(부활 선포 사명을 준 공적 발현), 한꺼번에 500명 이상(55년 경에 대부분 생존), 예수님 친척 야고보(생시에 예수님을 불신), 모든 사도들, 바오로(교회 박해자)
발현 체험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할 마음 자세가 전연 안된 사람들이 있습니다(야고보, 바오로). 또한 바오로가 기원 후 55년 경 고린토 전서를 쓰면서 발현을 체험한 500명 이상의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당시까지 생존해 있다고 장담했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을 체험했다는 증언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예수 처형 때 낙담한 나머지 도망친 제자들이 미구에 예루살렘에 집결하여 용맹스럽게 예수 부활을 외쳤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어진 이면에는 확실히 극적인 체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체험을 했기에 그처럼 달라졌을까? 그들은 한결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뵈었노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이라고 해서 앞서 간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 목숨을 걸고 한 증언을 무시할 권리는 없습니다.
II. 신학적 반성
(1) 예수 부활은, 철저하게 하느님과 인간을 위하신 예수님의 생애가 옳았다는 영원한 확인입니다. 그분이 추구한 진실과 사랑의 가치가 새로운 차원에서 영원히 구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진리이며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진시로가 사랑을 허무로 돌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렴풋이 의식하면서 속삭이는 사랑의 영원성이(영원한 사랑, 한없이 사랑하오) 허황한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을 신생과 영생으로 바꿀 수 있는 위력이라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경우는 소크라테스, 공자 같은 여느 위인들과는 달리 그분의 사상만이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써 그분 자신이 현존하십니다.
(3) 그러나 그분은 공간에서 해방된 양식으로 현존하십니다. 또한 공간 속에 있는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생성소멸법칙에서 탈피한 양식으로 현존하십니다. 하느님의 존재양식을 취하셨다고 하겠습니다.
(3) 부활은 세말사건이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세말을 앞당겨 사시는 분입니다. 역사의 종점인 세말을 앞당겨 사시는 예수님에 의거해서, 신앙인은 역사의 의의를 파악하게 됩니다. 역사는 맹목적으로 계속되다가 비극으로 끝맺은 것이 아니고 영원한 삶으로 옮아갈 것입니다.
(4) 예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양식을 취하셨기 때문에, 시공에 밀폐된 우리에게는 그분의 현존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오관으로 도착 불가능한 양식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현존은 동시에 비현존이기도 합니다.
(5) 우리가 오관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포착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놀라운 사건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부활선포를 듣고서 우리의 부활신앙이 싹틀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요. 우리가 부활선포를 듣는 순간 부활하신 그리스도 친히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시면 부활신앙은 싹틀 수 없습니다(사도 1,8).
(6) 신앙인은 단순히 하느님의 분위기 안에서 살 뿐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감싸주시는 주 예수께서는 당신이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걸어가도록 요구하시고, 또한 당신의 요구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충동을 받아 경천애인(敬天愛人)에 헌신하고 진실과 사랑의 가치 구현에 가담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이승에 살며 또한 세말 이전에 살고 있으므로, 거짓과 비정에 가담하는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을 비관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충동으로 사랑받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망적인 사관에 사로잡히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의 미래에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이들로부터 예수님을 벌써 부활시키신 하느님께서 언젠가 우리의 하찮은 진실과 사랑까지도 영원히 구제하실 것을 믿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부활의 희망으로 통하는 위력임을 믿나이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