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태 15,21-28)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태 15,21-28)


                                                                     강요셉






옛날 ‘나가루나’라고 하는 위대한 성자가 있었습니다. 이 성자는 거의  옷을 입지 않고 사자가 죽을 때 만든 외투 하나만 달랑 걸친 채 곳곳을 동냥하며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는 언젠가 자기 제자였던 왕이 선물한 황금 동냥 그릇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밤 거의 폐허가 된 절에서 잠을 청하려던 나가루나는 기둥 뒤에 숨어 자기를 염탐하고 있는 도둑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여기 내 동냥 그릇이 있소. 탐나시면 가져가시오. 그래야만 내 단잠을 방해받지 않을 것 같소.” 그리고는 손을  뻗어 황금 동냥 그릇을 도둑에게 내밀었습니다.




황급히 동냥 그릇을 받아 쥔 도둑은 총총히 사라져 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 도둑이 황금 동냥 그릇을 들고 되돌아와 그 성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밤 당신이 이 그릇을 흔쾌히 주었을 때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것쯤 가볍게 여길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님은 한갓 황금 동냥 그릇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마저 흔쾌히 내어 주시고, 그리고도 모자라서 오늘날 우리 곁에 남아 있기를 바라신 나머지 비좁은 감실 안에  빵의 형상으로 계시기를 원하신 분이십니다. 진정 우리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과 메마르지 않는 풍요로움에 감사를 드리며 그 마음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무작정 자비로우신 모습만을 취하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가나안 여인 앞에서 주님께서는 참으로 냉정한 모습을 취하고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을 위하여 이방인인 이 여인의  모습을 택하시어 말씀하십니다.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모성애의 상징으로 많은  여인 중에서 이 여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 그것을 위해 모든 어려움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비’를 청하며 길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다가가서 엎드리어 간청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거절의 말을 들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두 번째의 더욱 가혹한  거절도 참아 냅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누구든지 이 말을 듣고는  실망하고 더 청하고 싶은 열망이 식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아주 가혹한 굴욕도 참아 내며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조각의 빵에 만족하며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  “주님, 그렇긴 합니다 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 여인을 바라보십니다. 자기의 딸을 살리기 위해, 둘러싸고  있는 군중 앞에서 자신의 품위나 위신을 상관하지 않는 이 여인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이러한 행위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서도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굴욕의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멈추고 맙니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걸음 나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존심이 상할 때 차가운 돌처럼 무감각하게  변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아니 항상, 더 필요하고, 더 가난하고, 더 불행하고, 더 실패한 자식들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위대한 신앙 때문에 그녀를 도와주십니다. 이처럼 확고하고 인내롭게 조금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너무 빨리 포기하지도 않으며 하느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고 깊이 확신하는 사람만이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과 자신 사이에 무엇인가 비슷한 것이 있음을 느끼십니다.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 역시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죄인들을 찾아다니시면서 함께 지내시는 것을, 또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치욕적인 십자가상의 죽음까지 받아들이시며 자신을 낮추셨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한 그분의 끝없는 사랑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나서 상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녀는 비참함 속에서도 위대했습니다. 바로 사랑으로 자존심을 이겼으며, 희생의 정신으로 이기심을 이겼고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싶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 여인의 극도의 단순함이  예수님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덕은 우리  앞에 있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다시 인식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개방시켜 줍니다.  바로 여기에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을 높이시고 교만한 사람을 내치시는 하느님께서는 그 여인과 조화를 이루시며 신적인 상급을 주십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곁에 머무신다는 보증인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logos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