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 (다니 2,1-49)

 

느부갓네살 (다니 2,1-49)


                                                                     김동희






오늘은 구약성서 가운데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느브갓네살의 꿈> 이야기를  가지고 강론을 하려고 합니다. 먼저 이야기에 앞서 그 배경이 되는 역사를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원전 922년경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 죽자, 왕국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됩니다. 두 왕국 가운데 기원전 721년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또, 기원전 587년에는 남 유다마저 바빌론 제국의 수중에 들어가고 왕과  유다 민족들은 바빌론에 끌려갑니다. 50년간의 바빌론 유배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바로 수차례의 침공 끝에 남 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빌론의 왕입니다.




그리고 이 꿈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니엘은 기원전 607년 바빌론에 끌려가 느브갓네살의 왕궁에서 일하면서 ‘벨트사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남 유다의 한 젊은이입니다. 그러면 이제 <느브갓네살의 꿈>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느브갓네살은 즉위한 지 2년만에, 그러니까 기원전 604년에 기이한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그러나 깨어나니 꿈에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술사, 점성가들을 불러, 그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또 그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왕께서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나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왕은 격노하여 온 나라의 모든 현자들과 마술사, 점성가들을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이때 다니엘과  그와 함께 유배 와서 왕궁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들도 죽음을 당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에게 나아가 시간의 여유를 주면 왕의 꿈을 알아내겠다고 청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자기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며 보호를 청하였더니 그 날 밤에 하느님께서 그에게 비밀을 계시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나아가 “임금께서 아시고자 하는 신비는 어떠한 사람도 임금께 알려드릴 수 없되, 하늘에는 신비를 밝히 아시는 하느님께서 계시나이다” 하며 왕이 꿈  내용과 풀이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습니다.




“임금님, 당신은 꿈에 큰 입상 하나를 보셨나이다. 그 머리는 황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허리는 놋쇠요, 다리는 철이요, 그 발은 일부는 철이고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그런데 사람의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산에서 돌  하나가 굴러 떨어져 입상의 발을 치니 입상은 부서져 먼지가 되어 버리고 돌은 온  땅을 뒤덮는 산이 되었나이다. 이 꿈을 풀어서 말씀드리면, 당신은 왕 중의 왕이시라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통치권과 권세와 영예를 주셨으니, 당신은 곧 황금으로 된 머리시나이다. 당신의 후에 당신의  나라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하나 일어날 것이니, 이는 곧 은으로 된 나라요, 셋째로 놋쇠로  된 나라가 일어날 것이니 이는 온 세상에 퍼지리이다. 넷째 나라는  철과 같으오리니,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처럼 이 나라 역시 모든 것을 분쇄하리이다. 그러하오나  당신은 그 입상의 발이  일부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 것을 보셨으니, 이 나라도 동시에 미약하리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 이 모든 나라를 없애 버릴 나라를 하나 세우시리니 이는 영원히 계속되리이다. 이것이 곧 당신께서 마지막으로 보신 돌의 뜻이나이다.”




이에 왕은 “진실로 그대의 하느님은 신비를 열어 밝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로다” 하면서 다니엘에게 귀한 선물을 많이 주는 한편 그를  바빌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뜻은 바빌론에 이어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메데와 페르시아와 로마의 출현을, 그리고 마침내 이  나라들을 능가하는 메시아의 영원한 나라가 도래하리라는 희망을 묵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이 영원한 메시아의 나라가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이 세상 안에서 시작된, 그러나 죽는 날까지 계속 추구해야 할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안에는 분명 기쁨과 행복 못지 않게 많은, 그리고 불가사의한 고통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약함과  허물을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건만 우리는 여태 그 나약함과 죄스러움을 벗지 못하였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건만 우리는 여전히 죄와  악에서 온전히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많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우리들은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  안에서 많은 결점들을 고치려고 노력하였고  또 고쳐왔습니다. 분명 우리는 어제보다는 성장해 있습니다. 죄와 악습과의  투쟁은 죽기까지 계속되는 투쟁입니다. 아무도 여기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오늘 저희가 들은 <느브갓네살의 꿈> 이야기는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열한번째인 요셉이 에집트 파라오 왕의 꿈을 해몽하여 에집트와 이스라엘 백성을 기근에서 구해낸 이야기와 무척이나 흡사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에집트에 팔려가  노예살이를 거쳐 에집트의 제2인자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형들에게 용서를 베풀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나를 이곳으로 팔아 넘겼다고 해서 마음으로  괴로워할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창세 45,4-8).”




사실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도 그분의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자신의 나약함이나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와의 투쟁을 계속하면서 다음의 말씀에 희망을 둘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아멘.




느부갓네살


                                                                     남궁경






느부갓네살 왕의 행적은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의 선지자들에 의해 후대에 전해지는 사적 외에 비문이나 바빌론의 역사가 베롯수스의 저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도 3년 동안 바빌론에 속하여 공물을 바치다가 반역했는데, 느부갓네살은 이를 직접 진압하여 여호야킴 왕을 사로잡아가고,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웠다. 그는 정복한 민족을 이주시켜 노예로 동원하여 대역사를 이룩하였다.




기원전 561년 그이 아들 이브로 멜로닥에게 양위했습니다. 전에 세네게립에게 파괴되고, 이사하돈이 재건한 바빌론은 느부갓네살 때에 이르러 가장 큰 제국을 이룹니다. 그는 세계의 운하를 파고 견고한 성을 만들었는데 그 중 두 큰 운하는 임길벨, 님치벨이라고 했는데, 바빌론 대성벽이나 궁전의 신축, 멜로닥 신당의 수축 외에 아내 암히야를 기념하여 고향 메대의 구릉에 건설한 공원, 십비라 부근에 팠던 저수지 등등이 유명합니다. 그는 리간드로베로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었으며, 자기가 동물이 되었다는 착각을 일으켜 소가 되어, 7년간 들에서 풀을 먹었습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평원과 동남아시아에서 정치, 문화, 종교, 무역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함무라비  이래 최대의 군주로서 가장 광범위한 지역을 소유하게 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복(예레 21,7.10)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바알신에게 분양했던 이스라엘에 노하신 하느님의 뜻을 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 기구를 취하고 왕족과 귀족, 학식있는 소년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여호야킴은 3년 동안 그를 섬기다가 돌이켜 배반하였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그 종 예언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 와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킴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망시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느부갓네살과 관련된 예언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정복과 예루살렘의 파의 파괴, 열방의 정복, 애굽의 정복, 완전한 패망 등을 예언자들로 하여금 예고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이미 여러 예언자들로 하여금 미리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야훼 하느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이스라엘 백성은 처참하게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바빌론 유배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도구로 쓰여졌던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하였으나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병을 얻었습니다. 한번 불리움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영원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긴장과 깨어 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실천할 때, 우리는 올바르게 하느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빌론의 왕이었습니다. 엄청난 제국을 건설했고 다스렸습니다. 또한 애굽왕 느고를 파하고 불레셋 전역을 정복하였습니다(기원전 605년). 그러나 하느님의 진노를 받아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수 생활을 하였습니다. 드디어 정신에서 회복되자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꿈을 해석해 주었던 다니엘을 바빌론의 중요한 관리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두라 평원에 금으로 만든 우상을 세우고 관민들로 하여금 그 우상에 경배하게끔 합니다. 여기에는 다시 다니엘이라는 주님의 도구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은 느부갓네살은 야훼 하느님의 권능을 다시금 알게 되었고, 우상을 섬기는 제관들을 죽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에 온전히 굴복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하여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교인들을 통한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사건을 통해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징벌은 징벌 그 자체에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길 바라는 하느님은 가혹한 방법을 써서라도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상을 버리고 온전히 당신께 투신하길 요청하십니다.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바로 지금 우리들에게도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온전히 투신하길 요청하십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당신께 우리 자신을 드리길 원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우리를 투신하길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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