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이 정숙한 수산나를 구함
남상근
우리들은 자주 ‘세상에서는 착하고 의롭게 사는 이들이 부당하게 고통받는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사실 자신의 뜻과는 달리 다른 이들의 계교와 모함 때문에 고통받는 많은 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의로운 이들이 당하는 부당한 고통을 대할 때,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어디 계시는가?’라며 묻게 됩니다.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요즈음의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의로운 여인 수산나가 겪은 모함과 고통을 통해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빌론 시절, 부유한 명망가인 요아킴의 아내인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요아킴은 당대의 중요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집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곤 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백성들이 판관으로 세운 두 장로도 있었습니다.
수산나는 점심때쯤 집 옆 정원에서 목욕을 하곤 했는데, 어느 더운 여름날 역시 그녀가 목욕을 하기 위해 정원 문을 안으로 잠갔을 때였습니다. 두 장로는 수산나를 탐하고자 몰래 정원에 숨어 있다가 그녀를 유혹하였습니다. “부인! 문은 잠겨 있고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소. 그대가 만일 우리 말에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당신이 부정한 짓을 행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하겠소”라고 말입니다. 힘없는 여인 수산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놓이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수산나는 “내 만일 당신들의 요구대로 한다해도 치욕이요, 따르지 않는다 해도 죽게 될 것이오. 내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추행하지 않고 당신들의 손에 쓰러지고 말겠소”라며 소리를 질러 당장의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러나 음흉한 장로들 역시 소리를 지르고, 그중 한 명은 문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고 사람들을 불러모읍니다. 그들은 수산나를 부정한 여인으로 몰아 거짓 고소를 합니다.
무죄한 여인 수산나는 마침내 재판정에 끌려나갑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보며 주님께 의탁합니다. 두 악인은 계략을 걸어 수산나가 추행을 범했다고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무죄한 여인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가련한 여인 수산나는 오직 하느님 외에 탄원할 곳이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은 숨겨진 것을 아시며, 또 무슨 일이나 일어나기 전에 모든 것을 아시니, 이들이 나를 모함하여 거짓 증언함을 또한 아시나이다” 그녀의 간절하고 애처로운 기도가 하늘을 움직입니다.
사람들이 수산나를 죽이려고 사형장으로 끌어낼 때, 하느님께서는 젊은 예언자 다니엘의 얼을 비추시어 사건의 전말을 알려 주십니다. 다니엘은 “이 여인의 피는 결백하다”고 부르짖으며, 백성들을 설득합니다. “이스라엘의 피를 받은 여러분이 이렇게 우둔하게 확증도 없이 한 여인을 처단할 수 있습니까? 다시 한번 재판하여야 합니다.” 다니엘은 두 장로를 심문할 권한을 받고, 두 장로를 각각 심문합니다. 이어 그 중 하나를 오게 하여 그에게 묻습니다. “저 여인이 무슨 나무 아래서 범죄하였소?” 그가 “유향나무 아래요”라고 대답합니다. 다음 둘째 장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는 떡갈나무 아래라고 대답합니다. 그 때 다니엘은 이들이 하느님을 거슬러 거짓 증언을 하였음을 백성들에게 알립니다. 가련한 처지에 빠졌던 수산나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마침내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 역시 가끔은 예기치 않은 몰이해에 직면하곤 합니다. 수산나는 그런 몰이해를 철저히 받았습니다. 예로부터 여인에게 정절은 목숨처럼 귀한 것입니다. 수산나는 자신의 뜻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두 장로의 욕망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었습니다. 누구도 그녀를 위해 변명해주지도 않았고, 아무도 그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음탕한 여인으로 낙인찍히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어쩌면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는 그런 몰이해의 시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누구도 이해하지 않지만, 모두가 자신을 버리건만 주님께서는 진실을 아시고, 자신이 무죄함을 알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애틋한 믿음은 하여 모든 몰이해를 넘어설 힘을 불어넣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믿음을 두는 약한 이들의 호소를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진리이신 하느님은 인간의 허위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손수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우리들의 아픔을 당신 안에 받아들여 주십니다.
순전히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악이 선을 이기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강한 자가 오직 그들이 힘이 없기 때문에 약한 이들을 억누르고 착취하며, 고통스럽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곳곳에서 너무 쉽게 경험하게 됩니다. 신문지상에 차고 넘쳐나는 끊임없는 분쟁, 무고한 죽음, 반복되는 사고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애처로운 사연을 가진 이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도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가?”라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소리를 조금만 귀기울이면 우리는 쉽게 듣게 됩니다. 그런 질문은 신앙인들에게 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마침내는 승리할 것임을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쳐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빛 속에 그런 희망을 품습니다. 십자가의 수치스러운 죽음은 몰이해 중의 몰이해였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서 고통과 몰이해에 휩싸인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고통이 단지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음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이 모든 불의함을 해결해주실 것임을 희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희망은 그저 가만히 넋놓고 기다리는 수동적인 희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산나처럼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청하면서 부르짖게 하는 희망입니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루가 12,2)”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당신의 진실하심이 드러나도록 기도하는 날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