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들린 딸의 어머니

 



마귀들린 딸의 어머니


                                                                     안  향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이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께 매달리고 기도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탓하고 심지어는 신앙마저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 고통이나 어려움이 왜 하필이면 내게 일어나는지 한탄하고 원망한다. 그렇다면 그 고통들은 왜 있는 것일까?




띠로 지방에 한 가나안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은 귀신에게 몹시 시달리고 있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귀신에 시달려 아파하는 것을 보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치유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를 하고 이곳 저곳을 찾아다녀도 딸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차츰 그녀도 지쳐가기 시작했고 자신의 딸이 치유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과학적 의학 지식이 무척 부족했다. 이러한 이유로 병에 대한 이해가 특이했다. 병이 난 그 사람의 죄 혹은 그 가족의 죄로 인해 벌 대신 내려진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이 악령들을 쫓아내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박식한 사람보다는 신앙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또한 구약 시대부터 유대인들은 병을 낫게 하는 방법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병에 대한 이러한 이해로 인해 그 가나안 부인 역시도 딸이 아파하는 것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죄책감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절망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예수라는 분께서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을 치유하고 다니신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암흑 속에 비추는 한 줄기 빛이었으며 깊은 절망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께서 자신이 사는 띠로 지방에 오시게 되었다. 그녀는 그분께서 오셨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그분께로 달려갔다. 그녀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분의 발치에 엎드리며 간청하였다.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 다윗의 아드님! 제 딸이 귀신한테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으며 그분의 제자들이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돌려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히 버텼다. 이분만이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간청에도 아랑곳없이 예수께서는 “나는 오직 이스라엘 가문의 잃은 양들에게 보냄 받았습니다. 자식들이 먹을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는 말씀만 하실 뿐이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그녀는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강아지 취급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자신과 딸이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또한 그녀는 이미 도저히 물러설 수도 없을 만큼 지쳐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애원하였다. “주님.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시험해 보시고는 그녀에게 굳은 신앙이 있음을 발견하시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인. 믿음이 장합니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바로 그 때 부인의 딸이 나았다.




이 가나안 부인의 믿음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더 이상 딸을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 포기한 상황에서 예수의 등장은 그녀에게 절대 놓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한다고 해도 기꺼이 바칠 각오로 예수께 매달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부인의 모습에 비하면 우리의 모습은 너무도 나약하고 미천하다. 이 복음 말씀은 일상의 작은 고통이나 어려움에도 쉽게 쓰러지고 하느님을 탓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버리는 이들, 혹은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을 원망하며 한탄하는 이들에게 그 고통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한 고통이나 어려움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려고 내리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들로 인해 절망에 빠지고 한탄만 하고 있다면 결코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어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이겨내고 끝까지 그분께 매달린다면 우리는 그분의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나안의 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들이 이루어짐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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