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1. 말씀읽기: 마태21,1-11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다 (마르 11,1-11 ; 루카 19,28-38 ; 요한 12,12-19)

2. 말씀연구

이제 수난을 앞두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뭇가지를 들고 환호를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하면서 환호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영합니다. 성지주일을 보내면서 예수님을 환호하던 그 사람들의 마음으로 돌아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나의 주님으로, 나의 구원자로서 평생 변치 않고 믿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러 올리브 산 벳파게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벳파게(익지 않은 무화과란 뜻, 무화과의 집)는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올리브산 정상에 있는 작은 마을이고, 베타니아(억눌린 이들의 집)는 예루살렘에서 15리쯤 떨어진 마을입니다.

예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은 먼저 베다니아를 지난 다음에 벳파게를 거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순례객들이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 정결례에 관한 규정을 지킨 것은 벳파게에서 였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십니다.



2 말씀하셨다. “너희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매여 있는 암나귀와 그 곁의 어린 나귀를 곧바로 보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풀어 나에게 끌고 오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 맞은 쪽 동네로 가거라. 매여 있는 암나귀와 그 곁에 어린 나귀를 곧바로 보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풀어 나에게 끌고 오너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또한 그 나귀 주인과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냥 빼앗아서 쓰시는 분은 결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3 누가 너희에게 무어라고 하거든,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그러면 그것들을 곧 보내 줄 것이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라는 말씀. 참으로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필요하심에도 불구하고 내어 드리지 않는 경우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신 것을 내어 드릴 수 있는 그런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을 드리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이상으로 받는 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4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일이 일어난 것이다.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르야 9,9).”이 말씀을 통해 즈카르야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즈카르야는 평화를 가져오는 겸손한 메시아를 예언했습니다.



5 “딸 시온에게 말하여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짐바리는 말이나 소로 운반하는 짐을 말합니다.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이 어린 나귀는 메시아가 나타나실 때 타셔야 할 것이므로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나귀여야 했습니다. 병사들은 말을 탔지만, 가난한 이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타는 전형적인 가축은 나귀였습니다.

 희생물로 바쳐질 동물은 일상적인 일에 사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느님을 위하여 한쪽으로 잘 보존된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메시아 왕이신 예수님께서 타시는 동물은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여야 했습니다.



6 제자들은 가서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하니 나귀 주인은 아무 말 없이 나귀를 내어 주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늘 놀랍기만 합니다.



<웃어보자고 씁니다.^*^>

예수님의 명을 받고 마을로 간 제자들이 나귀를 풀어 가려고 하는데…

1. 나귀를 가지러갔던 제자들이 나귀를 끌고 가려 하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도둑이야!” 그러자 제자들 왈. “어! 이게 아닌데…”^*^



2. 나귀를 가지러갔던 제자들이 나귀를 끌고 가려 하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니! 왜 나귀를 풀어..”

그러자 제자들은 지팡이를 들었습니다. 2대 1의 상황.

상황을 파악한 그는 말꼬리를 돌리며…

“풀어····가셔야지요.”

나귀 한 마리와 목숨을 바꿀 수야 없었겠지요.^*^



3. 나귀를 가지러갔던 제자들이 나귀를 끌고 가려 하자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니! 왜 나귀를 풀어 가오”

그러자 제자들은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하였습니다.

나귀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30만원입니다.”^*^



7 그들은 그렇게 암나귀와 어린 나귀를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펴 놓았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앉으시자,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나귀도 예수님을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나귀가 뭐라고 했을까요? “사람이란 짐승들은 참 이상하네…, 분명 환호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나귀들도 쉽게 바뀌지 않는데 나귀보다도 못한 짐승들이네…,”하지 않았을까요? 성지가지를 바라보면서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합시다.



8 수많은 군중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예리고의 소경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선포하였고,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다윗의 왕손이며, 평화의 왕으로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 위에 옷을 펴서 깔아 놓는 것도 왕의 즉위식에 수반되는 의식의 일환이었습니다.

<예후가 왕으로 불렸을 때, 그들은 재빨리 옷을 벗어 돌층계에 깔고는 예후를 그 위에 모시고 나팔을 불며 ‘예후가 왕이 되셨다’ 하고 외쳤다. 2열왕9,13>



9 그리고 앞서 가는 군중과 뒤따라가는 군중이 외쳤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예수님께서는 아직 예루살렘으로 향한 올리브산 서쪽 내리막길에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기쁨은 지금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과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사람들도 무리를 지어 군중에 섞여 시끄러운 소란을 피웠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 따라 벌써 준비된 군중은 어린 나귀를 타고 나아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즈카르야의 예언의 성취를 보았던 것입니다.



메시아는 올리브 산으로부터 그 도시에 들어가시리라고 기대되었습니다(즈카르야 14,4). 사람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에 자기들이 목격한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다다른 순례객들은 성소로부터 나온 사제들에게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시편118,26)라는 축복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이 축복 양식이 예수님께 표하는 경의의 외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왕이셨으며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온갖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고, 그분을 왕으로 환영하여 맞아들인 사람들은 그분에게 인사하고 그분을 예루살렘 왕도로 모시면서 한껏 찬양하였습니다. 메시아 왕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호산나: “구원하소서.” 라는 환호성.



10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도성이 술렁거리며, “저분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니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온 백성이 환호하는 저분이 누구신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분이 누구냐?”하고 묻고 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위대하신 분이라고 말만 하면 회당에서 쫓겨날 판이니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11 그러자 군중이 “저분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군중은 자신감있게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 죽은 이를 살려주시는 예수님.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얘기해 줄 수 있었습니다. “저분은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 예언자 예수님이시오.”라고.

 나 또한 예수님에 대해서 자신감 있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구원자이십니다.”라고.



3. 나눔 및 묵상

1. 나귀를 내어 준 사람의 마음이 되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나에게 있는지를 알아보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사람들의 환호를 재현하는 것이 바로 성지주일입니다. 성지가지를 들고 나 또한 예수님을 환호하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환호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유다인들처럼 그렇게 배척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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