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독서 주해 : 신명 7,6-11
이 연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과 장차 맺을 관계에 대해 다룬다. 일곱 민족들의 목록은 전통적으로 사용된 목록이며 구약성경에서 이것이 어느정도 변형되어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이스라엘은 이 민족들과 어떠한 계약도 맺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이 민족들은 “멸절”되어야 한다. 멸절은 일종의 봉헌제사로서 어쨌든 종교적인 행위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거룩한 전쟁의 제의의식을 마무리 짓는 절차로서 포로와 전리품들을 야훼의 소유로 돌리는 행위이다.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고찰을 하고 있으며, 후대에 작성된 신명기는 이런 점에서 초기의 이스라엘보다 훨씬 급진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원주민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어떠한 인척관계, 즉 혼인도 성립될 수 없었다. 이 규정은 종교적인 하느님의 율법에서 도출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합리적인 설명도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그것의 근거를 밝히는 진술이 제시된다. 즉 원주민과 결혼한 이스라엘 사람은 야훼를 배반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규정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으로, 곧 야훼를 위해 따로 구분된 백성으로서, 오로지 야훼의 처분에만 순종하는 야훼에 대한 이런 종속 관계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중단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동인이 되었음을 말한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선택을 역설적인 야훼의 사랑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이전에는 이처럼 명료하게 나타나지 않았었던 어떤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은 신실하고 계약관계가 잘 유지되도록 배려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준다.
2. 2독서 해설 : 1요한 4,7-16
참으로 하느님에게서 태어나 형제애를 실천하는 신자는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알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을 맛보게 된다. 여기서는 특별히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에 관해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하며 당신의 아드님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사랑의 하느님으로 계시하셨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모든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으로서 삼위일체이신 세 분의 삶 자체를 우리에게 반영해 준다. 또한 하느님께서 성령을 주심은 인간의 믿음과 관련되어 말한다. 곧 성령께서는 사도들에게 본 것을 증언하게 하시고 공동체 안에서 믿음을 고백하게 하시며 신자들이 지닌 믿음을 알아보게 해주신다. 신자들을 위한 성령의 이 행위가 그들이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의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끝으로 믿음은 앎으로 꽃을 피움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믿음 덕분에 세상에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3. 3독서 해설 : 마태 11,25-30
25절에서 말하는 철부지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본디 ‘아이’, 그래서 ‘미성년자, 미숙한 자’를 뜻한다. 여기에서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 아니라, 교육을 받지 못한 이, 지혜를 갖추지 못한 이를 가리킨다. 이 25절을 집회 51장이나 잠언 8장; 집회 24장; 지혜 6-8장 등과 결부지어 하나의 지혜 문학적 말씀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니엘서와 같은 묵시 문학적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게 보인다. 바빌론의 현인들, 곧 “지혜로운 자들과 슬기로운 자들”은 네브카드네자르 임금의 꿈을 해석하지 못한다.(다니 2,3-13) 그러나 “하늘의 하느님께 자비를 청한” 다니엘에게는 “신비”가 계시된다.(다니 2,18-19,28) 다니엘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지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다니 2,23) 예수님께는 “하늘 나라”가 관건이다. 다니엘서에서도 결국 관건이 되는 것은 “나라”이다.(다니 2,44) 그리고 마태오에게 철부지는 일차적으로 제자들을 말한다.(마태 10,42) 바로 이들에게 여러 가지 “일”(다니 2,29) 곧 하늘 나라의 신비가 계시된 것이다.(마태 13,11 참조)
26절을 직역하면, “선하신 뜻이 당신 앞에서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가 된다.
27절의 ㄱ을 직역하면, “모든 것이 나의 아버지에 의해서 나에게 넘겨졌다.”가 된다. 27절은 모든 것이 나의 아버지에 의해서 나에게 넘겨졌다고 말씀하시며,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과 유일무이한 관계를 맺고 계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29절의 ㄴ부분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를 직역하면 “그러면 너희가 너희의 영혼들을 위한 안식을 발견할 것이다.”라가 된다. “너희의 영혼들”은 셈족 말 식의 표현으로 ‘너희 자신’을 뜻한다.
30절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쓰이는 “멍에”의 표상이(예레 2,20; 5,5; 호세 10,11), 유다교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록되거나 구두로 전해지는 ‘하느님의 법’을 가리킨다.(집회 6,24-30; 51,26-27) 그리고 이 멍에는 항상 무겁다거나 사람을 짓누른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유다인들도 ‘멍에의 기쁨’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서의 이 구절에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선포하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산상설교(5-7장)의 맥락 속에, 당신의 자유로우면서 근원적인 율법 해석을 유다교의 율법주의와 대비시키신다. 이러한 대비는 당신께서 갱신하신 법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파하시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4. 강론 주제
①1독서를 토대로, 하느님의 조건없는 사랑.
②2독서를 토대로, 주님께 사랑받는 자녀임을 인식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함.
③3독서를 토대로, 우리의 어려움 안에서도, 그 멍에를 지고 주님께 나아가야함.
④사제 성화의 날을 맞이하여, 특별히 사제들을 기억하길 촉구.
5. 강론
찬미예수님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억하고 본받으며, 아울러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여 누구보다 사제들이 먼저 예수님의 성심을 공경하고 닮아서 복음 선포와 성무에 더욱 매진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제들을 위하여 더욱더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는가?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독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선택하시어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어떠한 좋은 점을 보시고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 가득한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거저 베풀어 주심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해드려서 주님께서 사랑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 우리를 찾아 오시어, 당신의 사랑을 무상으로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시련, 고통이 닥칠 때면, 그 고통에 빠져 주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주님께 버림 받았다 생각하며 고통의 무게를 혼자 이겨내려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이 세상을 살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각자의 짐에 넘어지기도 하는 한계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역시,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혼자 이겨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 무거운 짐을 가지고 당신께 나아오기를 바라십니다. 힘겨운 고통의 무게를 함께 겪자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은 바로 이렇습니다. 고통 중에 힘겨워 하는 우리를 안타까운 눈으로, 마치 자신의 고통으로 함께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그 고통에 힘겨워하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당신이 더욱더 고통 당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시기에 오늘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냥 초대하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고통을 함께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이 초대에 응답하여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줄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며, 끊임없이 우리의 멍에를 매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멍에는 좀 더 쉽고 편안한 멍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을 보내는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2독서에 나온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죄 많은 우리를, 허물 투성이인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바로 사랑하신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멍에를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워 갚아야 하는 것을 당신께서 손수 마련하신 당신 외아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며 우리의 부족함을 대신 기워 갚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거룩한 마음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하십니다.
진정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 주님의 조건 없는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 안에 머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또한 예수성심의 마음을 닮아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주님의 사도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니, 이제 우리도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할 때,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성 됩니다. 그 완성을 위하여, 우리가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아울러 사제 성화의 날을 보내는 오늘, 주님의 모습을 구현하는 사제들이 예수성심의 마음을 닮아 작은 예수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