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생명의 날 메시지 : 진리의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하느님이시다
(이기헌 주교)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국 가톨릭 교회는 제6회 ‘생명의 날’을 맞아 모든 이가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신 주님(요한 14,6)을 따라 진리를 밝히는 빛의 자녀가 되고 생명을 위해 헌신하는 생명의 수호자로서 거룩한 길을 걸어가도록 초대합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이미 현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반생명적 현상들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현상으로 자유의 그릇된 사용을 지적하셨습니다.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까지 격상시켜 모든 가치의 원천이 되게 함으로써(「진리의 광채」32항) 하느님께 대한 감각의 상실까지 초래하였고, 진리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윤리적 판단을 할 때 선악의 기준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특권을 개인에게 맡기려는 경향 때문에 진리는 상대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오늘날 생명과 관련된 과학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의 분야에서는 단성의 생식세포 만으로 포유동물의 생명을 만들었고, 인간의 유전자 구조를 이용하여 질병을 알아내고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인간의 수명이 150세로도 늘어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 분야의 연구는 인간 삶의 질적 향상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생명공학의 이러한 눈부신 발전은 맹목적인 과학 기술주의적 시각을 갖게 하고, 따라서 이에 따르는 윤리 문제들에서도 과학기술의 이름으로 인정하고 마는 우를 범하고 맙니다.
인간생명에 대한 진리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그것은 결코 인간의 손이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에게서 주어진다는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명은 결코 임의적으로 조작하거나 파괴하거나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만 합니다.
인간 자유를 왜곡하는 윤리적 상대주의는 안락사, 낙태까지도 합리화하고 있으나,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공권력은 이러한 윤리적 위기에 대해 전혀 무방비 상태에 있습니다.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살려야 할 공권력은 인간생명을 거스르는 법의 폐지와 함께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론적, 윤리적 특성을 뒤로하고 오로지 과학기술을 맹신할 때에는 인간에 봉사하는 과학 기술이 아니라, 그 반대 결과를 낳게 되어 인간은 결국 비인간화되고 말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진리의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하느님이시며, 생명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참된 자유입니다. 참된 자유는 인간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표징이기 때문입니다(사목헌장 17항 참조). 생명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2000년 5월 28일 생명의 날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