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수요일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1. 말씀읽기: 마태26,14-25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다 (마르 14,10-11 ; 루카 22,3-6)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 (마르 14,12-16 ; 루카 22,7-13)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 (마르 14,17-21 ; 루카 22,21-23 ; 요한 13,21-30)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엿보고 있는 유다. 이제 예수님은 3년 동안 함께 한 스승님이 아니라 자신이 유다인들에게 넘겨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가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말할 때의 모습에서 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길 기회만 엿보고 있는 유다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위로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유다의 변질된 그 마음의 원인을 생각해보고, 나는 유다가 걸어간 길을 걷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2.1. 유다의 배반

유다 이스카리옷이 수석 사제들에게 갑니다. 왜 갔을까요?“열 두 제자 가운데 하나”(마태26,14)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 그는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넘기려고 갔던 것입니다.

 

①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26,15)

유다는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마태26,15)라고 말합니다. 수석 사제들에게 스승을 넘겨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합니다. 얼마의 값을 받을 수 있냐는 유다의 말은 마치 상품을 사고 파는 듯한 그런 말투입니다. 유다는 예수님 대신 돈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도 가슴아픈 상황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주는 대가로 유다는 은전 서른 닢을 받았습니다. 은전 서른 닢(30세겔)은 노예 한 사람의 목숨 값이었습니다. 세겔은 사제들이 쓰던 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액수는 거느리는 종이 황소 뿔에 받혔을 때 그 주인에게 지불되는 배상금이기도 했습니다(탈출기 21,32) 하인 하녀가 사고로 죽었을 경우, 애도의 표시로 주는 돈으로 율법이 정하고 있던 금액이었습니다. 수석 사제들은 노예 한 사람의 값으로 예수님을 샀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그렇게 노예 한 사람의 값으로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보잘 것 없는 값에 예수님을 넘기려는 유다. 유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을 겨우 은전 서른 닢에 바꾸고 있는 유다의 모습에 화가 납니다. 그런데 문득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것에 나 자신의 양심을 넘겨주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화내는 내 모습을…, 유다는 30세겔이나 받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유다의 모습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또한 수석사제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노예 한 사람 값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그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알았을 것입니다. 비록 받아들이기 싫고, 자신들의 권위와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께 죽음의 칼을 내밀었지만 적어도 자신들과는 다른 분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알고 있다면 합당하게 대우를 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②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리는 유다(마태26,16)

수석사제들로부터 은전 서른 닢을 받은 유다는 그때부터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습니다. 더 큰 불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유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온통 머리속에는 그것 밖에는 없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밀려오는 죄의식으로 가득 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 배신의 이유

유다는 다른 열 한 제자와 함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유다는 분명 사도로서 합당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 일행의 돈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요한12,6;13,29) 재정 책임을 맡을 만큼 신용을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선교에 파견되고(마태10,5) 기적도 행하였을 것입니다(마르6,13). 그런데 왜 그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되었을까요?

 

유다의 배신 동기는 처음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자기 몸을 바쳐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접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사도들도 나중에 유다가 자신이 맡은 직책을 이용하여 도둑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요한12,6) 아마도 유다는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보상이나 퇴직금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탐욕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만일 어떤 원한을 예수님께 가지고 있었다면 은전 서른 닢의 돈으로 예수님을 팔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좌우지간 유다가 물질에 욕심을 보이고, 횡령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도 사실입니다. 마음이 바뀌니 행동이 바꾸었고, 그렇게 스승을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유다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2. 최후의 만찬

① 파스카 음식을 차리려는 제자들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마태26,17)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마태26,18)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습니다.


② 최후의 만찬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습니다.(마태26,19) 제자들에게는 그것이 축제의 연중행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제자들과 함께 하는 최후의 만찬입니다. 그러므로 그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았더라면 제자들의 마음은 눈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가끔은 나도 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이고, 아주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제들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이런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미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지금 주어진 일상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③ 만찬 중에 제자의 배반을 예고하시는 예수님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마태26,20)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26,21)

 

그런데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유다야! 회개하거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실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로봇처럼 만드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한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인간이 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막지는 않으십니다. 내 안에서 선과 악이 싸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도 아시고, 내 마음에 잘못을 품고 있는 것도 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싸워서 이기길 바라십니다.

 

④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26,22)

그러자 제자들은 저마다 몹시 근심하며 물었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26,22) \”설마 제가 그러겠습니까?\” 사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나 자신이기게 이 말씀은 크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 즉시 제자들이 유다에게 폭력을 가하며, 상황을 바꿔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26,23) 당시 식사의 방법은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니 손으로 음식을 집어서 먹는 것입니다. 빵과 고기, 채소 등을 집어서 소스에 찍어(담가서) 먹습니다. 이제 한 편의 영화가 촬영됩니다. 유다가 빵을 집어서 적시려고 할 때, 예수님의 손과 닿게 됩니다. 이때 유다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제자들은 관심없지만 유다는 그렇게 당황하며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서도 유다를 바라보십니다. 만일 내가 유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⑤ 배반자에 대한 불행 선언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인간의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 하느님의 어린양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에게는 불행입니다. 그 불행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26,24)

 

예수님과 함께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유다. 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신앙인으로 영세를 받고 예수님과 함께 하지만 예수님과 결코 함께하지 않는 “나” 입니다.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나입니다. 비록 이런 모습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저에게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다의 선택이 불행합니다.

 

⑥ 그것은 네 말이다.(마태26,25)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 앞에 유다는 당황스러워 합니다. 아직 다른 제자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유다는 다른 사도들이 “저는 아니지요?”라고 물으면서 자신들의 확고한 믿음을 고백할 때, 유다도 나서서 이런 말을 합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26,25) 참으로 뻔뻔스러운 말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유다는 했습니다. 유다는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아닌 척”하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내 일상에서도 자주 있습니다. 나도 자주 유다처럼 그렇게 “아닌 척”하며 위선을 떨 때가 있습니다.

유다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는 모두에게 폭로될까봐 두려워 다른 사람들이 말 한 후에 자신도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네 이놈!”하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조용하게 유다의 눈을 보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마태26,25)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는 말씀 안에서 유다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다는 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 것뿐이지 자신이 하려는 행동을 말로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유다는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제가 예수님 사랑하지요?”라고 여쭈었을 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그건 네 말이다.”라고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제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씀 드렸을 때,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 예수님을 팔아 넘길 유다, 그리고 다가오는 수난의 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가 예수님의 옆에 있다면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 드릴까요?

 

③ “주님! 저는 아니지요?”라고 말하는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나 또한 매일 주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내가 드리는 이 말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4. 실천사항

① 불편한 사람과도 기쁘게 식사하며 그에게 기회를 주기

② 일상생활을 충실하게 하며,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기

③ 진실한 사랑을 주님께 고백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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