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

 

“사랑의 불”


불은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메마른 대지에 불이나면 모든 것이 타 버립니다. 그런데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불을 통해서 다시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은 강한 것을 부드럽게 만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줍니다. 쇠 덩어리를 가지고 멋진 항아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쇠 덩어리를 녹이는 것입니다. 불로 녹여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금덩어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산에서 캐온 금덩어리들에는 다른 물질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을 순수한 금으로 만드는 방법은 불로 가열하는 것입니다.


불은 필요 없는 것을 태워 버립니다. 불은 강한 것은 부드럽게 만듭니다. 불은 그 안에서 견딜 수 없는 것들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불을 통해서 무딘 마음의 나는 다시 부드러워 지고, 필요 없는 것들(믿지 않는 마음, 행동하지 않는 마음)은 사라져 버리게 되고, 다시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가정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들에 사랑이 불이 타오른다면 어떻게 변했고, 변해야 할까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불이 타오른다면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나는 변해야 합니까? 변했습니까? 그런데 나는 변하기 싫어하면서 변하겠다고 말로만 하고, 예수님의 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아닐까요?




①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는 분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의 때는 바로 평화의 때이고, 메시아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메시아에게 이것을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와 구원의 시대가 밝아 오기 전엔 다툼과 분열과 불화의 시기가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② 미카 예언자의 예언 성취


 예언자 미카는 구원의 때에 앞서 오게 될 이 재난과 분쟁의 시기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6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7 그러나 나는 주님을 바라보고 내 구원의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내 하느님께서 내 청을 들어 주시리라. ”(미카 7,6-7)




③ 예수님께서 불을 지르시는 방법


예수님께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그 불은 조금씩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불을 지르시는 방법은,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방법은 바로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세상은 새로워집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통의 세례인 것입니다.




④ 분열을 주시는 예수님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사람들은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저분은 메시아다”“저분은 그냥 예언자다”“저분은 사기꾼이다.”“저분은 죄인이다”“저분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각자의 선택은 서로를 갈라놓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믿지 않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교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신앙생활 하는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우리 성당가요”하면 “야! 너나 잘해!”“나는 성당 안다녀도 너 만큼은 해!”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는 포기하게 되고 “그래! 언젠가는 때가 오겠지?”하면서 기다리게 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했기에 이렇게 살고,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인내하고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자나 가족이 성당에 안 나올 때 가슴이 아픈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바라보시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⑤ 사랑의 불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 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가까운 관계이고, 그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어떤 행동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 안에 불신이 자라나면 그 누구도 화해를 시키기 어려운 관계이기도 합니다.


자녀가 고등학교에만 올라가면 신앙생활을 권하지 않고, “대학교 가면 신앙생활 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방치할 때 주님께서 오신다면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책임을 넘기고, 아버지는 또 아들에게 넘기게 될 것입니다.


 성당에 가는 것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성당에 다닌다고 해서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불안한 부모는 그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함께 기도하자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험 때가 되면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 “부적”을 만들어 오기도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서로 위해줄 수 있는 관계이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부려먹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빨리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그 가정에 행복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며느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시어머니, 성당에서는 열심히 활동하고, 노인들을 위해서 봉사도 많이 하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시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는 며느리. 그들은 사랑의 불로 편협한 마음들을 태워 버려야 합니다.




 또한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시거나 개신교에 다니시면 며느리는 성당 못 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다음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성당 다니지!” 하고 성당 안나오면 어머니 돌아가셔도 성당에 못 나옵니다. 기도하는 것을 잊어 먹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한 번 더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신앙이지 갈라지고, 싸우고,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신앙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의 불”로 태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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