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 에티켓 4

에티켓 4. 박수에도 세심한 신경을
한국 사람은 박수에 좀 인색하다는 말이 있다. 희노애락 감정을 헤프게 나타내지 말라는 선현들의 말씀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는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감정 표출을 다소 과장될 정도로 드러내도 상관없는 때가 되었다고 할까.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연주자들에게 청중들의 아낌없는 박수가 얼마나 고맙고 고무적이겠는가 하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박수가 그런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마구 치면 그 또한 망신스런 꼴이 되고 만다. 이래저래 고전음악이란 까다로운 분야인 것만은 틀림없다. 만약 지켜야 할 법규나 관습을 지킬 자신이 없으면 아예 문화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소나타나 협주곡, 교향곡은 보통 몇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고 악장 사이에 약간의 인터벌이 있다. 그 같은 곡들은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박수를 쳐서는 안 된다는 무슨 규칙이 있다기보다 현재의 전세계적인 관습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관습이 생긴 것은 서양음악의 역사 자체에 비하면 비교적 근래의 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0년대부터였다. 1922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된 푸르트벵글러가 바로 그와 같은 관습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악장마다 요란한 박수로 악사들을 격려하는 것이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져왔다. 거기에 새파란 녀석이 나타나 쐐기를 박은 것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주장인즉 이러했다.
“악장과 악장은 깊은 유기적 관계가 있다. 이를테면 제2악장은 제1악장의 바탕 위에서 생겨난 음악이다. 잠깐 쉬는 동안 박수 따위의 잡음을 넣어 그 맥을 끊지 말라.”
처음에는 소수의 의견에 불과했으나 어느 사이엔가 그의 의견이 옳다는 쪽으로 형세가 기울어 마침내 전세계적으로 관례화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이것에 반기를 든 저돌적인 인물이 또 나타났다. 요즘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고음악의 기수로 활약하는 영국의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이다. 그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가령 모차르트의 음악이라면 당시의 스타일로 연주함이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악기도 그 때의 것이나 모조품을 써야 하고 주법도 당시 하던 대로 따라야 한다. 또 청중의 매너도 그 때로 되돌아가야 한다. 당시에는 악장 사이사이에도 박수를 치는 것이 관례였으니 마땅히 그 관례를 따라야 한다.”
우리로서는 도대체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호그우드의 주장은 푸르트벵글러의 그것에 비하면, 유리잔으로 바윗돌을 부수려고 덤비는 격이다. 어디까지나 돌출적인 의견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멋모르고 호그우드의 견해를 따랐다가는 모처럼 비싼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콘서트 홀에서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모르는 곡일 때는 연주가 다 끝나고 연주자나 지휘자가 청중에게 인사할 때 박수를 쳐도 늦지 않다. 그것이 박수를 잘 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다.

오페라는 좀 다르다. 가극 속에서는 영창이나, 중창, 합창 아무 대목에서나 잘했다 싶으면 그 곡이 끝난 순간에 아직 오페라가 진행중이라도 관계 없이 박수를 쳐주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다.
오페라(opera)라는 단어는 원래 오푸스(opus, 작품)의 복수형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오페라란 여러 곡이 합쳐서 이루어진 음악이므로 그 속의 한곡 한곡을 독립된 음악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는 해석이다. 그러한 사실을 작곡가들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박수를 끌어낼 자신이 있는 노래의 후주는, 박수소리에 깔아뭉개져도 별로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의 대단치 않은 내용으로 작곡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몹시 기분이 상한다. 가령 차이코프스키의 제6교향곡<비창>의 마지막 악장이 아주 여리게 끝난다. 저 멀리 허공이나 깊은 안개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듯 점차 여리게 끝나가는 음악은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여운을 음미하듯 3,4초 간격을 두고 조용히 박수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마치 “나도 이런 곡쯤은 알고 있다구!”하고 과시나 하듯 곡이 여리게 여리게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요란한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 광경은 정말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은 성격이 좀 급하다는 말도 있지만 급하게 굴 일이 따로있지 그런 데서까지 국민성을 발휘해 나라 망신 시킬 것은 없지 않은가.
음악회를 자주 다니다 보니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자주 발견하곤 한다. 우리 나라에 오는 세계적인 메이저 오케스트라, 이를테면 베를린 필, 뉴욕 필, 모스크바 필 등은 연주회 입장권 값만 해도 A석 정도면 10만원을 넘는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값비싼 입장을 가지고 들어가는 콘서트일수록 앞에서 나열한 갖가지 꼴불견 사태가 빈번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평소에 고전음악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 요란스럽게 차려 입고 나타나 아무데서나 마구 박수를 쳐대는 일은 부디 사라져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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