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을 일으킨 브람스 편곡, 작곡의 <헝가리 무곡집>

말썽을 일으킨 브람스 편곡, 작곡의 <헝가리 무곡집>
묵직하고 텁텁한 작품만 쓰는 브람스로선 드물게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곡으로 쓴 <헝가리 무곡집>의 총수는 전부 합치면 21곡이나 된다. 원래는 한 대의 피아노에 두 사람이 달라붙어 치는 네 손용 연탄곡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관현악용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사랑받게 되었으며, 특히 제5번과 제6번이 유명하다. <헝가리 무곡>이란 곡명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헝가리 춤이라고 하기보다는 집시 춤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예컨대 바르토크 같은 사람이 쓴 순수한 헝가리 무곡과는 거리가 있으며 상당히 집시화했기 때문에 <집시 무곡>쪽이 걸맞으리라는 이야기이다.
이 무곡집에는 출판될 무렵부터 좀 치사한 말썽들이 많이 붙어 다녔다. 내력인즉 이러하다.
브람스는 19세 때 헝가리인과 유태인의 혼혈아인 22세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금방 의기투합해 다음 해에 둘 다 빈털터리 무일푼으로 독일 각처를 연주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 때 브람스는 피아노를 담당하기로 했다. 어떤 때는 굶기를 밥먹다시피 하면서 갖은 고생을 겪었겠지만 그래도 뜻이 맞는 두 젊은이의 음악 여행은 즐겁기도 했을 터이고 브람스로선 수확도 많은 여행이었다. 여행 중 리스트를 알게 되고 바이올린의 대가 요아힘과 작곡가 슈만과도 사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다니면서 브람스는 헝가리 출신인 레메니로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배운 집시 음악에 큰 흥미를 느껴 스케치해 두었다가 틈틈히 피아노 연탄용으로 편곡도 했다. 1867년 헝가리의 페스트에 갔을 때 그는 그것을 둔켈이란 출판사에 아주 헐값으로 출판 의뢰했지만 거절당했다. 하는 수 없이 이전부터 좀 아는 사이인 베를린의 짐록 사에 부탁해 봤더니 출판해 주마 하는 답이 와서 1869년 제10곡까지 제1집과 제2집으로 나누어 네 손용 연탄곡으로 출판했다.
발표되고 보니 생기 있고 색채가 풍부한 <헝가리 무곡집>은 금방 히트를 쳐서 사방에서 연주되고 여러 가지로 편곡되기도 했다. 일이 그렇게 되니 처음에 출판을 거절했던 둔켈 사에서는 아뿔싸 하고 몹시 분해했지만, 그보다 더욱 억울하게 생각한 것은 애초에 그런 음악을 귀뜀해 준 레메니였다.
마치 자기 것이나 되는 양 발표하다니 이게 표절이 아니고 뭐냐? 친구끼리 이럴 수가 있느냐? 하면서 레메니는 브람스에게 대들었다. 그런 일을 처음 당하는 브람스가 어쩔 줄 모르고 있노라니 출판사측에서 브람스를 옹호하여 들고 일어났고, 브람스 자신도 출판권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커졌다.
그러나 결국 브람스가 승소했다. 왜냐 하면 <헝가리 무곡>을 브람스는 자기 ‘작곡’이라고 발표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편곡’잉라고 했으며 작품 번호도 매기지 않았으니, 결국 타인의 권리를 침범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원작자가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를, 말하자면 거리에 내팽개쳐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무곡들을 모아 편곡했기로서니 그것이 왜 저작권 침해냐? 그렇게 생각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880년 브람스는 역시 네 손용의 제3집과 제4집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면서 훨씬 창작적으로 써서 제11번부터 제21번까지 11곡을 발표했지만 역시 ‘편곡’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브람스의 본성이 너무 짙게 깔려 연주도 훨씬 어렵고 내용도 무거워 제1, 2집보다는 인기가 없다. 어쟀든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브람스의 전음악 중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라는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힌다.

이 글은 카테고리: music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