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의 ‘고전음악’

넓은 의미의 ‘고전음악’
민요나 춤곡도 고전음악이 될 수 있다
언제 누가 작사 작곡했는지도 분명치 않으나 하도 오랫동안 애창되어 왔기에, 이제는 우리 민족의 피나 살과 다름없이 되다시피 한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은 고전음악인가, 아닌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사전의 풀이를 되새겨 보자.
“옛날에 만들어진 것으로 오랜 시대를 거쳐 현재도 아직 높이 평가받고 있는 예술작품.”
이와 같은 정의에 비추어보면 <아리랑>도 꽤 부합되는 점이 많지만 우리 스스로 <아리랑>을 민요라고 할 뿐 고전음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 자신도 우리가 아끼고 애창하는 <아리랑>을 자랑스러운 민요라고는 여겼으나, 우수한 예술작품이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자랑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수년 전 <칸타테 도미노>라는 CD 한 장을 사온 뒤로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그 디스크에 수록된 15곡은 대부분이 스웨덴의 성가대 합창으로 녹음된 성가였다. 그것과 비슷한 디스크는 비교적 흔했기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롭 번째 곡인 <자장가>에 비상한 관심이 끌려 널름 사오고 말았다.
그것은 1967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영국의 유명한 합창지휘자 겸 교향악단 지휘자로서 ‘대영제국 음악대사’라는 애칭까지 받았던 말콤 사전트 경이 편곡한 자장가였다. 가사는 스웨덴어로 되어 있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놀랍게도 가락이 우리의 아리랑이었다.
서전트 경이 편곡도 왕성하게 했던 시절이라면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이전의 일이겠는데 그가 어떤 경로로 우리의 <아리랑>을 입수하고 거기에 매혹되어 자장가로 편곡했는지 내력의 설명이 없어 알 길은 없다. 다만 “<아리랑>도 유능한 예술가에 의해 멋지게 편곡되니 이토록 예술적으로 들리는구나!” 하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선율은 거의 원형대로였지만 거기에 붙여진 화성과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의 실력에 의해 소박한 <아리랑>이 품위 있는 예술품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사실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기타 수없이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시골 구석에 처박혀 있던 향토민요나 춤곡 등이 훌륭한 편곡을 거쳐 멋진 고전음악으로 남게 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듯 일견 하찮게 보이는 것도 일단 우수한 예술가의 입김을 쐬고 탁월한 예지에 의해 다듬어지면 능히 예술품, 고전음악의 대열에 끼이게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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