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만찬 1

 

주님의 만찬 1 




사이버 성서강좌를 시작하면서.




요즘 축구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필이면 이런 때 성서강좌를 시작하려니 TV 시청하기도 바쁘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강좌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다. 이왕 시작한 것이니 끝까지 잘해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아서 겁부터 난다. 이 강좌를 찾아주실 여러분들의 격려와 기도가 아쉽다.




성서강좌라고 하지만 구약성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신약성서 강좌도 체계적으로 해나가기는 너무 벅차다. 그래서 고심 끝에 그때그때 적당한 주제를 임의로 골라서 다뤄나갈 작정이다.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전례 달력에 따라 주일 독서에 나오는 대목에서 주제를 고르거나 해당 구절을 풀이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 여기에 이견이 있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란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주문식 강의도 불가능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청강하는 분들과 강의하는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말하자면 사이버를 통한 쌍 방향 강의가 될 수도 있으니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대개 한 주간에 한번씩의 강좌가 될 것 같은데 더러 휴강이나 결강하는 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번 주에 시작하는 첫 강좌에서부터는 얼마 동안 주님의 만찬이라는 주제를 다뤄보기로 했다. 이 주제의 선택은 순전히 우연이다. 지난 주일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이어서 강론을 준비하다보니 첫 강좌의 주제로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제 자체는 매우 중요하기도 하고 또 그 연구범위는 매우 넓다. 참고문헌으로는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2001년 초판)를 권해드린다.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것이 있다. 이 강좌에서는 편의상 존칭이나 경어를 원칙적으로 쓰지 않겠다. 






제1강좌  주님의 만찬




1. 들임말.




1.1 낱말의 뜻.


주님의 만찬이라는 말은 kyriakon deipnon이라는 그리스말 표현을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1고린 11,20에 나온다. kyriakon은 “주인님의 소유, 그 차지”라는 뜻으로 알아들으면 무난하다. 그러니까 이 낱말의 뜻부터가 벌서 이 만찬은 “주님”으로 불리는 분이 초대해서 차리고 베푸는 잔치임을 말해준다. 손님으로 초대받아 오는 사람들이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초대하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잔치를 베푸는 “주님”은 누구이고 거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뒤에 다시 보기로 한다. deipnon은 그리스 사람들의 하루 세끼니 식사 중 가장 중요한 정찬(正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정찬은 오후 늦게 또는 저녁에 먹는 식사였다. 이른 아침의 간단한 식사는 akratisma라고 했고 점심때 가까워서 먹는 늦은 아침은 -요즘 말로 “브런치”라고 한다든가…- ariston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deipnon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의 잔치나 연회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영어로 파티 party 라는 말뜻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된 예는 마르 6,21; 루가 14,16.17.24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인 성격을 띠는 제사의 음복과 밀의 종교에서 거행하던 잔치 형식의 의식도 때로 hieron deipnon 곧 거룩한 잔치, 신성한 잔치라는 말로 표현했다.




1.2 초대교회에서 거행하던 주님의 만찬에 관한 기록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




이 기록은 신약성서 여러 군데에 전해졌다. 바울로와 공관 복음서, 요한복음서와 히브리서, 유다서와 베드로 2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신약성서 외에도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디다케, 그리고 유스티노의 저서인 호교론에도 몇몇 증언을 찾아볼 수 있다. 바울로는 1고린 11,17-34에서 당시 교회에서 거행하던 주님의 만찬의 기원을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만찬에 소급시키고 있다. 예수의 최후만찬을 이야기 식으로 진술하는 공관복음 사가들도 단순히 그날 밤에 이 만찬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신문의 보도기사처럼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만은 아니다. 복음 사가들은 이 이야기의 모양새와 꾸밈새를 갖추는 데는 이 복음사가들이 속해 있던 당시 교회의 성만찬 거행의 관습에서 얻은 자료를 활용했다.


사도행전 2,42.26에서 말하는 “빵을 쪼개다, 떼다”라는 표현은 일단 예루살렘 교회에서 교우들끼리 나누던 저녁 식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식사에 주님의 만찬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는 나중에 따로 공부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요한 계통의 문헌들 (복음서, 편지들, 묵시록)과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주님의 만찬에 관련되는 본문들을 이해하는 데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신약성서 시대 이후의 문헌 가운데 디다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의 편지들과 유스티노의 호교론은 주님의 만찬을 이해하는 데 각별한 비중을 띠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문헌들에서는 주님의 만찬을 (고린토1서에서처럼 kyriakon deipnon이 아니라) eucharistia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이다(디다케 9,1; 이냐시오, 스미르나인들에게 8,1; 유스티노, 호교론 66,1). 이 말은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보통 감사(제), 또는 성찬(례)로 번역할 수 있으나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서양의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이 eucharistia라는 용어를 꽤 많이 쓰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식사가 사회적인 성격과 아울러 일종의 자선적인 의미를 띠면서부터 주님의 만찬은 차츰 자선 만찬의 성격을 띠게 되어 이를 아가페 agape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관습도 발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애찬(愛餐)이라든가 자선 만찬, 또는 사랑의 바자회 같은 말을 가끔 쓰기도 하고 듣게도 된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는 종교사적 문제이다. 유다교나 다른 비 기독교에서도 주님의 만찬과 비슷한 종교적 성격을 띠는 식사나 잔치나 연회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다른 종교의 이런 의식적인 식사가 주님의 만찬을 거행하던 초대교회의 성만찬 전례거행과 그 뜻을 이해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아보고 가늠하는 문제이다. 이제 차례로 주님의 만찬에 관련되는 신약성서의 본문들을 살펴보는 순서로 강의를 진행해보자!








2. 신약성서의 본문들.




2.1 바울로.


2.1.1. 1고린 11,17-34.


분량이 상당히 많은 이 구절을 일일이 다 다루기는 힘 든다. 구절구절의 풀이에는 주해서를 참고하기 바란다.




문헌사적으로 볼 때 1고린 11,17-34에 전해진 본문은 주님의 만찬과 관련되는 신약성서의 본문들 중에 가장 오래 된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마르코와 이 마르코를 거의 그대로 따르는 마태오, 그리고 바울로의 이 성만찬 제정 기사와 거의 비슷한 전승을 전하는 루가 복음서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라는 말이다. 마르코/마태오와 바울로/루가로 대변되는 성만찬 전승 관련 기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공관 복음서에도 바울로보다 더 오래된 부분들이 없지 않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로가 전하는 이 성만찬 본문 중에서 특히 성만찬 제정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1고린 11, 23-26 부분은 기원 40년대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통용되던 전승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바울로는 이를 넘겨받아 고린토 교우들에게 전한다고 보면 무난하다. 그렇다고 바울로가 여기에 아무런 손질도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


고린토 교회는 물론 바울로가 기원 49년경 제2 차 전도여행 때 그리스의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아카이아 지방의 국제적인 상업도시 고린토에 세운 교회이다. 당시 이 도시는 그 위치상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서 유럽과 오늘의 터키를 위시해서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등 근동지방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차지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 고린토는 좌우에 두 개의 항구를 품에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이어지는 아드리아 (또는: 이오니아) 해 쪽으로는 레카이온이라는 항구가 있었고 소아시아에 이어지는 에게 해 쪽으로는 겐크레아 항구가 있었다. 그런데 이 두 항구를 이어주는 육로는 그 거리가 불과 6 킬로미터 남짓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여기에 운하를 파서 두 항구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여러 번 벌였다.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와 네로도 그중의 하나다. 이 운하 건설 계획은 그러나 1893년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 이로써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와 이탈리아의 브린디시 사이의 항로가 320km 단축된다고 한다. 고린토와 그 교회에 대해서는 정양모 신부님의 위대한 여행 (생활성서사 1997 광주), 쪽 102-113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시 우리 본문으로 돌아와서, 23절에 보면 “전해 받다”와 “전해주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유다교의 랍비들이 스승과 제자가 가르침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 학파나 교파의 전승이 전달되는 과정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주님으로부터”라는 말은 그러니까, 위에서 말한 대로, 바울로도 이 성만찬 제정에 관한 전승을 이를테면 안티오키아 교회에 전해진 대로 넘겨받아 고린토 교우들에게 전해준 것이지 자기가 직접 생전의 예수님의 최후만찬에 동석해서 전해주는 것도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주님의 만찬 제정 이야기를 이를테면 계시를 통해서 직접 받아서 전해준다는 뜻이 아니다. 어쨌거나 이 주님의 만찬은 예수님의 최후만찬에 그 기원을 둔다는 것이 안티오키아 교회와 바울로를 포함하는 초대 교회의 확신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본문이 전제하고 있는 주님의 만찬의 절차와 순서는 어땠을까? 어느 식사에나 본식(本食)이 있고 그에 앞서 전식과 그에 이어 식사 끝에 후식이 있게 마련이었다. 이 본식을 중심에 놓고 볼 때 그에 앞서 먼서 빵을 나누고 본식 끝에 잔을 돌려 마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동작은 식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절차이겠다. 11,15a가 이를 잘 말해준다. “같은 모양으로 만찬 후에 잔을 드셨다”니 말이다.




24절의 “여러분을 위한다”는 말은 최후만찬 때의 예수의 직제자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주님의 만찬에 참석하는 모든 교우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주님께서 당신 몸을 내주시면서 이룩하신 구원의 제사에 동참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25절b에서 주님께서 드신 이 잔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당신의 피라는 말은 없다. 사실 유다인들은 사람이건 짐승이건 피를 마신다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기피했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이런 감수성을 무시하고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대놓고 말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마태오와 요한복음서는 다르다. 먹고 마시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을 직설법적으로 알아들으면 오해 받기 십상이다. 유다인들도 이런 표현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고 이방인들도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린 아이를 잡아먹는 것으로 오해도 하고 비방도 했다. 이런 문제를 의식한 것은 아니겠지만 바울로도 먹고 마시라는 말은 전하지 않는다. 그 대신 특히 잔과 관련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당신의 피 곧 그분의 죽음으로 맺어진 새로운 계약을 강조하는 것 같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계약을 맺어 당신의 새 백성을 모으셨다고 하는 것은 이 계약의 수직적인 차원을 말해준다. 여기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 계약의 수직적 차원이다: 주님의 잔치에 동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제 하나의 계약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만찬을 “나를 기억하는” 뜻으로 거행하라는 것이 주님의 당부이다. 기억을 그리스말로는 anamnesis라고 한다. 마르코 복음서의 성만찬 제정 기사에는 “나를 기억하여…” 이 만찬을 거행하라는 말이 없다. 루가는 한 차례밖에 이 말을 전하지 않는다. 바울로가 전하는 이 제정 기사에서는 “나를 기억하여 행하라”는 말을 두 차례나 반복한다(11,24.25). “행하라”는 말은 주님의 만찬 거행을 빵 나누기와 잔 돌려 마시기라는 동작으로 집약해주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와 같은 반복적인 강조는 바울로 자신의 것일 수도 있다. 후대에 가서 이렇게 집약되는 빵 나누기와 잔 돌려 마시기는 정찬으로 먹는 저녁 식사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독립된 전례 행위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사실 식탁에서 정찬으로 저녁 식사를 할 때, 본식을 가운데 놓고서는 빵을 먹는 행위와 잔을 돌려 마시는 행위를 연이어서 거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이 성찬을 저녁 식사에서 분리해서 따로 거행하는 데 하나의 촉진제로 작용했을 법하다. 결론적으로 만찬의 본식과 성찬례를 한꺼번에 겸해서 하지 말고 따로 떼서 지낸다는 것을 전제하거나 넌지시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고린토 교회에서 지내던 주님의 만찬 절차는 어떤 것이었을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절차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저녁에 정찬으로 먹는 공동 식사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성찬례 부분이다. 그래서 공동 식사는 아가페 (agape) 곧 사랑의 잔치에 해당하고 성찬례는 위에서 말한 대로 에위카리스티아 (eucharistia) 곧 감사의 잔치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빠질 수 없는 주님의 만찬의 전례를 이루는 구성 요소이다. 다만 이 두 부분을 거행하는 선후 관계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느냐가 문제다: 아가페를 먼저 먹고 그 다음에 성찬례를 지냈는가 아니면 성찬례를 먼저 지내고 거기에 이어 아가페를 다 함께 먹었을까? 크리소스토모스 같은 교부는 이 둘 째 순서를 증언해준다: 먼저 성찬례를 지내고 그 다음에 아가페를 함께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가페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성찬례를 지냈다는 것이 정설이다. 첫 째 순서를 따라 성찬례를 먼저 지내게 된 것은 아마도 성찬례  때 먹는 빵과 포도주를 신성시하고 이를 먹으려면 일반적인 음식, 세속적인 음식을 금식해야 한다는 금욕주의적 동기가 그 동기로 작용한 것 같다.


둘째 순서는 먼저 빵을 먹고- 다음에 아가페 곧 애찬을 먹고- 마지막으로 잔을 돌려 포도주를 마시는 순서다. 11,25에도 “만찬 후 잔을 드셨다”고 한다. 이것은 또한 당시의 일반적인 식사 관습과 일치하는 순서이기도 하다. 다만 21절에 “각자는 자기 만찬을 미리 든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쪽 884. 이 책보다 먼저 나온 단권으로 된 200주년 신약성서 보급판 쪽 590에서는 “서둘러 든다”)는 번역이 문제다: 만찬을 미리 들다니 주님의 만찬에 참석하러 와서 빵을 쪼개어 먹는 절차는 서둘러 해치우고 애찬을 먹는데 만 허겁지겁 서둘렀다는 뜻인가? 만약 그렇다면 바울로는 이런 폐습을 지금보다는 훨씬 더 호되게 나무랐을 것 같다. 이런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미리 먹기- 빵 나눠먹기-  아가페- 포도주 마시기의 순서를 가정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가설에서는, 본식을 두 번 드는 셈이 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식사 관습과 정면으로 충돌되는, 파격적인 만찬 순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대체로 다음과 같이 고린토 교회의 주님의 만찬 순서를 생각하는 것이 좋게 여겨진다: 고린토 교회에서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소 여유 있는 교우들은 주님의 만찬에 참석하러 올 때 자기들이 준비해 가지고 온 저녁 식사, 이를테면 도시락을 -늦게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는 저녁 굶겠다는 이유로 불평도 하면서-  미리 먹어 버리고는 했다. 그래서 형편이 다소 어렵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아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과 노예 신분인 교우들이 늦은 시간에 아가페에 참석하러 오면 먹을 게 별로 남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 저녁 식사를 거르는 일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형편이 좀 나은 교우들이라고 해서 주님의 만찬 자리에서 포식을 하고 폭음을 했다고 생각할 근거는 전혀 없다.




당시 사회의 신분에 따라 만찬을 드는 자리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교회 공동체의 교우들은 자연스럽게 비교적 넉넉하게 사는 동료 교우의 널따란 집에 모였다 (가령 로마 16,23에서 말하는 가이우스의 집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집에는 당시의 가옥 구조를 놓고 볼 때 자유인의 상징으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식당(triclinum)은 평균 9 명에서 12 명의 손님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큰 저택에는 그밖에도 안마당을 낀 대형 응접실(atrium)과 둥글게 주랑으로 싸여있는 현관(peristylium)이 붙어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는 30 명에서 50명 정도의 손님들이 함께 자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적 신분에 따라 먼저 온 부자나 지위가 있는 교우들은 식당에, 나중에 오는 교우들은 응접실이나 현관에 자리를 잡았을 것 같다. 이런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없어도 일반 가정집에서 만찬 전례를 거행하려면 우선 장소가 좁기 때문에 이런 차이는 거의 불가피했을 것이다. 초대 교회에는 아직 독립된 대형 성당이 없었던 것이다.




주님의 만찬을 위해 모이는 날과 시간으로 말하면 십중팔구 토요일 저녁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요일, 그러니까 주일 저녁이었을 것이다 (1고린 16,2; 묵시 1, 10을 참조하라! 그러나 이 묵시 1,10은 바울로의 시대에 적용하기에는 시대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만찬 자리에서는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기도 말씀이 있었을 것이고 성서를 낭독하거나 시편을 노래하고 찬송가를 부르기도 하고  -바울로의 경우처럼- 사도들의 강론이나 만찬 식을 집전하는 주례나 다른 사람들의 강론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1고린 14, 10-40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교우들 중에 예언하는 분들의 예언도 듣고 성령의 은사를 받아 중얼대는 소위 방언 같은 것도 곁들여 있었을 것이다.




고린토 교우들은 이 주님의 잔치 자리에서 자기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잔치에 동석하면서 하느님의 새 백성, ekklesia 곧 교회를 이룬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것이고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11,18.11; 14, 23을 참조하라!




주님의 만찬은 이렇게 저녁 식사는 물론 그에 앞서 그리고 그 끝에 거행되는 빵과 포도주의 예절을 포함하는 이벤트 전체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명칭이 되었다. kyriakos 곧 “주님의 것”이라는 말은 이 만찬의 주인이 곧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이 교우들을 초대하여 이 만찬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잔치를 베풀고 주관하시는 그리스도는 그러기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훨씬 후대에 와서 집전 사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눈에 보이는 대리자, 대변자로 이해된다- 살아계신 분으로 교우들과 이 잔치에 동석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지금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만찬의 이해이다. 이 이해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을 전제한다. 일반 제사에서도 제찬을 음복하면 고인들의 영혼과 친교를 나눈다는 게 당시 널리 펴져있던 믿음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죽은 자들의 망령과의 교류이지 산 자와의 친교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주님의 만찬에서 주님의 죽음을 회고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새로움은 더욱 돋보인다. 주님의 만찬은 죽은 예수의 추모제가 아니다. 살아계신 주님과의 친교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이룩하신 구원의 모든 혜택을 동석하는 교두들에게 만찬이라는 상징적인 형식으로 베푸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우들이 저녁 식사로 먹기 위해 준비한 모든 음식도 당연하게 주님의 차지가 되고 이 음식을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시다. 이 물질적 보시(普施)는 그분이 이루신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바울로가 대변하는 전승이 그려주는 주님의 만찬의 이상적인 이해라고 할 것이다. 고린토 교회의 현실은 이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난한 교우들과 노예들은 저녁 늦게 서야 주님의 만찬에 참석하러 올 수 있었다. 여유 있는 교우들은 이미 본식을 다 마친 다음이기 때문에 가난한 교우들은 식사 전에 나누던 빵 쪼개기에는 참석도 못하고 식사 끝에 거행되던 잔 돌려 마시기에만 겨우 함께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빵과 포도주의 만찬례가 식사 끝에 맨 나중에 거행되었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먹을 게 별로 남아있지 않으니 배고프거나 굶을 수밖에. 바울로는 주님의 만찬 제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런 작태를 개탄하고 비판한다. 사실 주님이 내주시는 당신의 몸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던가?! “위함”과 계약이라는 유대는 곧 공동체를 의미한다. 공동체는 그러나 친교 없이는 그 성립이 불가능하다. 고린토 교회의 일부 교우들의 작태는 하느님과의 계약으로 성립되는 하느님의 새 백성으로서의 교회의 정체를 부인하고 이 공동체의 수평적인 유대를 희화화하는 하나의 도착(倒錯)이라고 할만 하다. 그러기에 이런 폐습은 그야말로 파괴적이다 (11,27-32).




바울로가 고린토 교우들 중에 병자와 죽은 자들이 많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그는 주님의 잔치에서 먹는 빵과 포도주라는 음식물은 신성한 것이고 따라서 이 신성한 음식을 모독하는 행위는 저주나 불행을 가져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금기 음식의 금기 효과를 대부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울로가 질병과 기인적인 잘못 사이에 무슨 인과 관계가 있는 듯이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단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울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개개인을 안중에 두고 있다 기 보다는 교회라는 공동체 전체가 병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그리고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사실도 임박한 주님의 재림이라는 전망 안에서 새롭게 조명해준다. 달리 말해, 주님의 만찬을 제대로 거행하지 못하면 죽음과 질병 같은 파괴적인 권세들이 우리가 사는 현실 안에서 활개를 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한 실례가 바로 가난한 교우들을 부끄럽게 하고 소외시킴으로써 공동체를 파괴하는 짓이라고 할 것이다.




3. 오늘의 의미를 위해서.


이상으로 1고린 11,27-34의 대목을 살펴보았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정돈이 덜 된 느낌이다. 우리의 현실과 관련해서 다음 몇 가지를 반성 자료로 제안해 본다. 본문을 해석했으니 이렇게 풀이해본 이 본문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살필 차례이다. 소위 본문의 역사적 주석 다음에 이어지는 해석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순서다.




3.1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억” (히브리어로는 zkr)은 구약성서에서 이미 단순한 과거 회상의 단계를 넘어 그 과거를 현재에 재현하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성만찬례의 기억은 이런 배경을 전제한다. 한편 이 기억의 만찬은 헬라 문명권에서 죽은 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제사 음식을 음복하는 관습과도 일견 닮은 데가 있다. 아마 헬라 문명권에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주의 만찬을 거행하게 되자 차츰 자신들이 고인들을 추모하면서 거행해 오던 이런 제사 잔치와 연결해서 주님의 만찬을 이해했을 것이고 따라서 주님의 만찬도 자연스럽게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잔치로 더 잘 그리고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기억하기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시라는 지침을 되풀이한 것은, 위에 말한 대로, 바울로 자신의 가필일 수도 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울로도 26절에서 주님의 만찬과 주님의 죽음을 매우 밀접하게 연결시켜 이 만찬의 의미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지, 그 방향을 가리켜준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만찬은 바로 그리스도의 과거의 죽음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선언하는 자리라고 할 것이다. 교회에서 거행하는 이 주님의 잔치에 부활하신 주님이 현존하시는 것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에 도취되어 구원은 이제 따놓은 당상이기나 한 것처럼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이 부활의 승리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과거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을 일깨워준다. 동시에 이 과거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은 현재 이 만찬에서 우리와 함께 계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분은 장차 오신 분으로 기다려야 하는 분이기도 하다. 마르 14,25에서도 예수는 최후만찬 때 하느님 나라에서 포도주를 마실 때까지는 다시는 현세의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연상시켜주기라도 하듯이 바울로 역시 그분의 재림을 열렬히 기다리면서 이 만찬에서 그분의 죽음을 선포하라고 한다. 이것은 곧 부활하신 주님의 미래를 안중에 두고 하는 말이다. 성만찬은 과거의 예수, 현재의 그리스도, 미래의 주님을 기억하고 친교를 나누고 기다리는 자리다.




3.2 이와 같이, 주님의 만찬을 지내는 우리는 이 식탁에서 그리스도의 초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빵을 나누고 그분의 피가 담긴 잔을 돌려 마시면서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새 백성으로서의 교회 공동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분의 선택에 감사드린다. 동시에 다른 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쪼개서 나눠주시는 빵을 이웃 형제들과 함께 나누며 그분의 재림과 세계의 구원이 완성되기를 열렬히 기다리면서 이 기다림의 증거로 보다 나은 세계 건설을 위해 우리의 신명을 바치기로 다짐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죄스런 과거는 그리스도의 과거의 죽음으로 사장되었다. 우리의 현재는 그리스도와의 친교,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그분의 재림으로 자리매김하는 곳이 주님의 만찬 자리이다. 그리고 이 자리는 동시에 우리 교우들과 친교를 나누는 사랑의 자리이다. 이 이중의 친교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고 바로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없고 불행한 이웃들을 위해, 이들이 구원받을 저 미래 세계와 조금이라도 더 닮은 세계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자리에 만들기 위해 봉사하라는 소명을 받아 파견되는 자리가 바로 주님의 만찬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만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선포되고 실현되는 자리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존의 모든 차원을 집약시켜주는 자리가 바로 이 주님의 만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주님의 만찬을 특히 주일에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것은 그러기에 하나의 교회 계명이기 이전에 그리스찬 실존 영위를 위한 하나의 절실하고도 필연적인 요청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 없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존재를 꾸려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잔치를 마치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이런 주님의 만찬의 의미가 이미 충분히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신약성경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