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이 되기까지.
히브리서는 특히 동방의 그리스 계 교회, 그 중에도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교부들 사이에서는 서기 2세기부터 바울로의 편지라는 인정을 받았다(Pantaenus, Clemens, Eusebius). 서방 교회에0서는 사정이 달랐다. 테르툴리아누스, 히뽈리투스 그리고 이레네우스 같은 교부들이 이 편지의 바울로의 친저성을 의심하는 바람에 히브리서를 상당 기간 소홀히 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무라토리 경전 목록에도 히브리서는 빠졌다. 그러나 4세기말에는 동서 교회를 막론하고 바울로의 친저성과 그 권위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동방에서는 아타나시오와 서방에서는 깔리아리의 루치페르, 프리스킬리아노 그리고 암브로시오의 영향이 컸다. 예로니모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교회에서 히브리서의 친저성과 경전성을 의심한 적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동방 교회의 전승을 존중하여 이 편지의 바울로 친저성과 히브리서의 경전성을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은 종교개혁 시대까지 그대로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때 에라스무스와 루터 그리고 칼뱅은 이 편지의 바울로 친저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그 경전서로서의 위치는 아무 탈없이 유지할 수 있었다.
K. 결론.
히브리서에는 궁금한 것도 많고 개념의 성격이나 논리 전개의 독특한 모양새, 기타 여러 특성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같이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히브리서가 매우 고상하고 난삽하면서도 뛰어난 문체로 그리스도교의 전갈을 소개하는데 그 타고난 재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는 점에는 별로 이의가 없을 줄 안다. 아마 신약성서 중에서의 이름 없는 필자는 가장 문체를 의식적으로 다듬어낸 장인(匠人) 기질의 작가라고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