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은 수(數)에 따라 분류되고 질서가 잡힙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몸을 보고 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머리와 심장은 하나씩인데
눈과 귀와 손발은 각각 둘씩 있고
손가락은 다섯 개나 달려 있다고.
그리스 철학 피타고라스는 존재 자체의 원리는 수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스인과 이스라엘인은 수를 문자로 표시했습니다.
예컨대,A는 하나,B는 둘,C는 셋 하며 써 나가다 보면’C사람’이 ‘세 사람’을 가르키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떤 낱말을 수로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예로 잔학한 로마 황제 네로의 이름을 들 수 있는데,
그 수는 히브리 말로 666에 해당합니다.
성서에 있어 6은 좋지 않은 수입니다.
그 6 이 세 차례나 되풀이되다 보니 극히 나쁜 무엇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12장’여섯’참조)
이러한 숫자놀이를 그리스인이나 이스라엘인들은 매우 좋아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이삿짐 센터의 전화번호를 2424로 한다든가
택배 서비스를 8282로 부른다든가 하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되겠습니다.
아무튼 어떤 문화에서든지 수에는 제 나름의 의미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제부터 성서 안에 나타나는 수의 의미를 조금씩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성서 안에 나오는 수의 의미를 알게 되면 성
서의 좋은 소식이 더 잘 이해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
‘하나’라는 수는 특히 한분 이신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신명기 6장 4절에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이시다. 아훼 한 분뿐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것의 근원은 하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는 ‘일치’를 표시합니다.
*둘*
그러나 인간이 죄를범한 결과 그’하나’가 무너졌습니다.
선과 악, 남과 여, 삶과 죽음 등 모든 것이 둘로 갈리어 이 세상에는 분열이 생겼습니다.
그 전형적인 이야기가 바로 바벨탑의 설화입니다.
그때까지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한가지 말로 이야기했었는데
오만의 죄의 결과로 온갖 언어가 생겨나 서로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둘’은 ‘분열’을 의미합니다
원래의 ‘하나’를 되살리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셋*
‘셋’도 대단히 중요한 숫자입니다
셋에 의하여 이원성, 상대성이 풀이됩니다.
‘셋’은 또 사물과 시간의 시작과 가운데와 마침을 가리킵니다.
신기하게도 힌두교, 불교등 대부분의 종교에는,
특히 그리스도교에는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성서 안에서도 ‘셋’이라는 수는 귀중한 것으로,
‘셋’과 ‘세차례’는 ‘하느님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느님(이사6,3)하며
천사는 찬미합니다.
이는 하느님을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라고 칭송하는 노래입니다.
이밖에도’셋’의 예를 다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노아의 아들들은 셈,함, 야벳 세 분이었습니다.
장궤도 세 번씩 하는 등 무엇을 할때면 세 차례씩 되풀이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신약성서에도 삼위일체뿐 아니라
예수님이 세 차례의 유혹을 받기도 하셨고 사흘 동안 무덤에 묻혀 계시기도 하였습니다.
전례에서는 세 번 되풀이가 예사로 되어 있어
자비송, 감사송, 평화의 찬가 등 모두 세 차례씩 부릅니다.
삼세번이라 하는 흔한 말을 비롯,
불교에서 쓰는 삼세인과(三世因果)라는 심오한 관념을 보더라도
우리 문화권에서도 ‘셋’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