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아프리카 호주 등지의 여러 민족은 할례를 행합니다.
할례란 남근의 귀두부 포피를 베어내는 수술로서 아주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할례의 목적은 학자들도 잘 모르는 듯하며
아이를 더 많이 낳는 소원이나 위생의 이유 이외에도,’어른이 되는 표시’로 보아 왔습니다.
사내아이는 할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정식으로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대체로 사춘기가 시작되는 열두 살쯤에 할례를 받습니다.
할례는 더 나아가 종교적인 의미도 지닙니다.
하느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계약의 표시(창세 17,11)로 할례를 명한이래
전통적인 의식으로 이어져 와 유대인 사내아이는 생후 여드레째에 할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으시면서 이름을 예수라 하셨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제국에서는 반대로 할례를 금했습니다.
마카베오 상권에는 “악의 원흉,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 왕위에 올랐다.
그 무렵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을 어기는 반역자들이 생겨
‘주위의 이방인들과 맹약을 맺읍시다’하며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 그리하여
그들은 곧 이방인들의 풍속을 따라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고 거룩한 계약을 폐기하고 — 악에 가담하였다”(1.10-14)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할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불완전이라는 의미를 띱니다.
탈출기에 모세는 야훼께
“저는 입술에 할례를 안 받은 자인데 파라오가 어찌 제말을 듣겠습니까” 하였습니다.(6,30)
‘할례받지 않은입술’이란 말솜씨에 능하지 못한 입이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런말을 누구에게 하라는 것입니까. 일러준들 그 누가 듣겠습니까. 보십시오.
그들의 귀는 할례를 안받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6,10)하고 푸념을 합니다.
‘할례받지 않은 귀’란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할례를 폐지하고 그 대신 세례를 베풀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래 세례는 유대교의 할례를 본받아 갓난 아기에게 베풀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방인 출신 신자가 할례를 받야야 할지 말야야 할지를 두고 격론이 일었지만,
47년에 열린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할례는 필요없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갈라 5,6)라고 바오로는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그만둔 결과 모든 민족들이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기 쉽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