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동산(정원)

농경문화가 시작하기 전에는 인류가 숲속에 살면서
과일처럼 먹을 수 있는 것을 따러 다니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채집, 수렵 시대입니다.

이 구석기시대의 삶들은 완전히 자연 안에서 지냈습니다.
숲속에는 악령이라든가 무서운 짐승이 가득있어서
사람들은 안전한 동굴을 찾아 집으로 삼았습니다

언제 부터인가 사람들은
채집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차츰 옮아가면서 숲에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토지의 둘레를 울타리로 에우고
그 울타리 안에 나무나 푸성귀를 심어 가꾸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농민이 된 이들에게도 종전의 숲은 여전히 악령과 짐승이 사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정원은 숲의 위험에서 자기들을 지켜주는,
안심과 안정, 평온과 행복을 주는 곳이 되어 깄습니다.

정원안은 악령이 아닌, 자기들을 수호하는 제신도 함께 사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의미의 정원을 ‘낙원’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어원은 페르샤 말로 ‘에워싼 땅’이었다고 합니다.
정원은 점점 아름다워져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되어 갔습니다.
바빌로니아 의 공중정원등이 특히 유명합니다.

성서에서는 에덴 동산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창세기에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동산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돋아나게 하셨다”(2,8-9)고 한
저 동산은 실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약속하신 행복의 상징’입니다.

에덴 동산이 동쪽에 있다는 것은 아침해가 뜨기 시작하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루는 것은 불교의 정토인데 서쪽에 있다고 합니다.
해가 지는 서쪽이,에집인도 그렇게 여겼듯이 ,
죽은 이를 쉬게 하는 데 어울리기 때문이겠지요.
애당초 불교가 우리에게는 서쪽으로부터 전해온 연유도 아마 있겠지요.

에덴 동산은 인간이 일구고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동산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카오스(혼돈)부터 코스모스(질서있는 세계)를 창조하시둣이
인간도 하느님과 더불어 공동 창조자로서 동산의 질서를 지키면서
이 세상이 완성에 이를 때까지 힘써 나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지배자가 된 것입니다.

다만 지배자라 하더하도 실은 관리자에 불과한 존재이지
결코 창조주가 된 것은 아닌 터입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에덴 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2,17)고 하신
주 하느님의 명령의 뜻은 인간이 제멋대로 선과 악을 결정할 수는 없고
선악을 결정할 수 있는 분은 어디까지나 하느님뿐이심을 말해줍니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하느님 규정을 어기고 선악의 나무 열매를 먹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을 하느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훌륭한 에덴 동산으로 되돌리는 구원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정점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요한 복음18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돌아기시기 전에 게쎄마니 동산에서 밤을 지새우시면서
거기서 십자가의 운명을 면하였으면 하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아담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이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셨습니다.

요한 복음19장 41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 근처의 동산으로 옮겨져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묻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곳도 동산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잘못 알고
“그분을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셔요”(요한 20,15)하며 찾았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그 오묘한 의미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새 아담으로서 다시금 에덴 동산으로 되돌아오셨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잘못 안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의미로 에덴 동산의 동산지기가 되신것입니다.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천사는 또 수정같은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로부터 나와
그 도성의 넓은 거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 양쪽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뭇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22,1-2)한 예언 말씀은
에덴 동산의 회복, 즉 인간이 다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는
‘세상의 완성’을 나타내 줍니다.

이야기를 현대로 옮기겠습니다.
인류는 채집문화에서 농경문화로 접어든 시대로부터
자연을 마음대로 쓰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마치 자기가 자연의 주인인 양 행세하면서 자연에 오염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선물을 남용할 것이 아니라
이 대자연을 존중하는 일이야말로 에덴 동산의 회복,
즉 구원의 완성에 이어짐을 알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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