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는 히브리 말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입니다.
그리스 말과 마찬가지로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 말을 잘 아시는 분들은
오늘날 쓰고 있는 ‘타우’자의 모양이 예전의 그것과 달라졌음을 아실 것입니다.
고대 히브리 말의 타우는 T 의 형태로 쓰였습니다.
영어의 대문자 T와 똑같습니다.
이제 에키엘 9장 4-6절을 인용해 봅시다.
“너는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니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발칙한 짓을 역겨워하여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의 이마에 도장(히브리 말로’타우’)을 찍어 주어라.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내가 듣는데서 이렇게 이르셨다
‘너희는 저 사람 뒤를 따라 도시 안을 돌아다니며 마구 쳐라.
가엾게 여기지도 말고 불쌍히 보지도 말아라,
노인도, 장정도, 처녀도, 어린이도, 부인도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도장이 찍힌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라.'”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는 타우라고 씌어 있지는 않지만,
“(천사는)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이 도장을 짝을 때까지는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치지 말아라'”(7-3)라는 표현이 보입니다.
이 날인도 분명히 타우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타우(T)는 십자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우연히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교부시대로부터 타우는 ‘십자가의 싱징’으로 쓰여 왔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인들이 사형에 처하는 방법으로서
처형자에 십자가의 세로 선 나무는 늘 붙박이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형수인 예수님도
십자가에 가로지를 나무를 이고 언덕을 오르신 것이 됩니다.
사형장에 당도하면 우선 그 가로지를 나무에
사형수의 양손을 못박은 채 그대로 밧줄로 달아올려
이미 세로 서 잇던 기둥에 밧줄로 매어 고정시켰을 것입니다.
사형장에 당도하면 우선 그 가로지를 나무에
사형수의 양 손을 못박은 채 그대로 밧줄로 달아올려
이미 세로 서 있던 기둥에 밧줄로 매어 고정시켰을 것입니다.
지금의 십자가에는 그 모습이 안 보이자만
세로 선 기둥 중간쯤에는 걸터앉는 일조의 턱이 있었다고 봅니다.
가로지른 나무에 못박힌 사형수의 손이 찢어지지 않도록
사형수는 그 턱에 걸터앉아야 했습니다.
물론 발도 못박혔지만 아마 기둥 양옆쪽에 못박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형태는 역시 타우 모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는 앞서 인용한 묵시록이 말한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이 도장을 찍을 때까지”(7-3)
라는 대목으로 도장은 타우의 뜻으로 요한이 썼을 것으로 봅니다.
여담입니다만,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서는
지금도 타우자를 십자가의 상징으로 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