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피는 ‘비린내나는’또는 ‘끔찍한’ 무엇을 연상시키는 낱말입니다.
그러나 성서의 배경은 목축을 생업으로 사는 세상이어서
짐승을 잡는 일이 어떤 의미로는 일상 다반사였습니다.
그들에게 양이나 다른 가축의 고기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식품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예로부터 ‘피는 곧 생명’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피를 흘리면 생명체가 죽기 때문에 피야말로 생명의 원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이므로
성서의 세계에서는 피가 특별히 하느님께 속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희생제물을 바칠 때 그 고기는 먹도 되지만 피는 제단위에 흘렸습니다.
제단은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만큼 피를,
즉 생명을 제단 위에서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뜻에서였습니다.
피는 절대로 마셔서는 안되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요한 복음에 나오는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6,56)는 말씀이
유대인으로서는 정말 알아듣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하간 피는 하느님의 것이었으므로
피를 흘리는 일은 하느님께 생명을 되돌려드린다는 의미를 지녔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속주’라고 불리고 계시는데 여기서
‘구속’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설명해 볼까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특히 생명이 그렇습니다.
생명을 하느님께 되돌려드린다 함은
우리들 인간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가장 합당한 감사와 보은의 표현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서 받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됩니다.
우리들 인간깨리도 그런 관습이 있습니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당연한 입니다다만 인간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하느님께 되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다른 것을 써서 상징적으로 하느님께 갚아드리곤 했습니다.
우리같은 농경문화에서는 쌀, 술, 과일 들을 드렸고,
목축문화에서는 짐승을 바쳤습니다.
특히 동물의 피는 생명 그 자체였기 때문에 가장 합당한 갚음이 되었습니다.
피흘림으로써 갚은 셈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죄를 짓기 때문에
그만큼 하느님께 대한 빚과 보은의 책무가 쌓여 갑니다.
옛날 사람들은 희생을 통해, 즉 동물의 피를 흘림으로써, 그 빚을 갚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특히 어린양의 희생이 그러했지만
신약시대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몸소 피를 흘리심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우리들의 모든 빚을 구속(대속)해 주셨습니다.
성서에서 피라는 말을 읽을 때, 피비린내는 그만 잊고,
상징로서의 그 심오한 의미를 생각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