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에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Nomen est omen.Nmen – 이름, est- 이다, omen- 징조, 다시 말해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독자성과 특별한 힘’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그 이름을 알면 어느 만큼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게 되면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을 내놓는 것은 이런 뜻의 자기소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탈출기 3장 13-15절에 좋은 예가 하나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에집트에서 혹사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려 내오라고 명하십니다.
모세가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이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하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야훼(곧 있는 그)다” 하고 가르쳐 주셨고
모세는 하느님의 이 이름으로 자기 사명을 다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제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어버이는
그자식의 더 나은 미래를 기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순(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면
‘이 아이가 순수하기를’희망하는 뜻이 거기 담겨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일부러 궂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풍습이 최근까지 있었습니다.
궂은 이름을 붙이면
그 아이를 악령들이 싫어하여 질병 같은 것을 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사히 자라난 다음에야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성서에는 어떤 사람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바꾸어 주는 경우가 가끔 있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두드러진 예를 하나 들자면,
‘아브라함’의 본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이는 ‘아브-아비’, ‘라함-많은’이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리니,
네 이름은 이제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 불리리라”(창세17,5)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어
그 손이 점점 번성하리라고 하느님께서 점지해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예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 마을의 마리아를 찾아와서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가1,31-32)하고 고합니다.
그리스 말로 발음하면 ‘예수스’이지만
히브리 말로는’요슈아'(요-야훼. 슈아-구하다)가 되어,
‘야훼께서 구하신다’는 뜻의 이 이름은 예수님의 사명을 잘 드러내 줍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살다가 새 이름으로 바꾸는 일은 있습니다.
작가의 필명이나 예술가의 예명 등이 여기 해당합니다.
교황님이 취임하실 때에도 새 이름을 취하십니다.
지금의 교황님이 요한 바오로라는 이름을 택하신 이유는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께서 하시던 일을 이어나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받을 때 영명으로 새 이름을 받습니다.
오늘날은 대체로 성인의 이름들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데 이것도 같은 뜻에서입니다.
그런데 몇년 전 영명으로 어떤 이름을 택해도 좋다는 새로운 규정이 나왔습니다.
따라서 영세자는 자기가 신자로서 앞으로 다할 사명을 나타내는 이름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데 꾸밈없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진실’이라는 영세명을 택해도 상관없습니다.
제 이름은 미셀입니다.
본래 히브리어와 라틴어로는 미카엘’로서,’
미-누구, 카-닮았다, 엘-하느님’, 즉 감히 ‘누가 하느님을 닮았을까’ 하는 뜻으로,
‘하느님의 초월성’을 나타냅니다.
앞으로도 저는 하느님의 훌륭하심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우리들은 신자로서 하루에도 몇 번씩’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십자표를 그으면서
기도나 일이나 모임 등을 시작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이제부터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힘을 받아 더 잘 행하겠다는 다짐과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