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시오 빌라도, 가야파

 



  2.4. 본시오 빌라도


  이러한 상황하에서 유다는 빌라도에게 확실히 수월치 않은 상대였다. 날마다 격전지에서 총독과 대사제는 자신들의 용기를 시험받았다. 빌라도가 공을 세워 제국의 권력 서열에서 승진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불일치와 무질서와 폭력의 온상지임을 스스로 입증해 왔던 이 유다 땅에서 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인상을 황제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만약 빌라도가 이 골치아픈 백성을 휘어잡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기민하지 못하다면 총독으로서의 그의 임기는 극히 짧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빌라도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유다인들이 종교적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권리들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권리들이 로마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한 종교적 정당화나 그 구실로까지 확대되지 못하도록 그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것이었다. 본시오 빌라도는 필요한 세금1)을 징수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신이 강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강제력 발동의 충동은 피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지점에다 선을 그을 수 있을지에 관해 조심스럽게 두가지의 실험을 했다.


    2.4.1. 첫 번째 실험: 실패.


  빌라도는 카이사르의 형상이 그려진 군기를 밤에 은밀히 예루살렘에 들여왔다. 유다인들은 그들의 율법이 무참히 짓밟혔다고 생각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의 율법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는 어떠한 형상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은 군기들을 치워달라고 탄원하면서 빌라도의 관저 주위에 엎드려 밤낮으로 꼬박 닷새를 꼼짝않고 버티었다. 빌라도는 답변을 해주겠다면서 유다인들을 소집하고, 자신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에 마련된 재판석에 앉았다. 그리고 무장한 군인들에게 유다인들을 포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빌라도는 만약 카이사르의 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위협한 다음, 군인들에게 칼을 뽑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일치된 동작으로 땅에 엎드려 목을 길게 빼고 율법을 범하느니 차라리 달게 죽게다고 소리질렀다. 이처럼 강한 종교적 열심에 질려 빌라도는 그 군기들을 즉각 제거하라고 지시하였다.




    2.4.2. 두 번째 실험: 성공.


  두 번째 실험은 ‘코르반’으로 알려진 거룩한재물을 수로(水路) 공사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소동을 일으켰다. 유다인들은 분노에 찬 항의를 했지만 빌라도는 사복 군인들을 군중사이에 끼워놓았다가 폭도들을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때려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수많은 유다인들이 희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맞아 죽고, 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는 동료들에 의해 밟혀 죽었다. 희생자들이 처참한운명을 보고 겁에 질린 군중들은 평온해졌다.


  빌라도의 코르반이라는 거룩한 재물의 사용을 불경스러운 행동이었고,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불경스런 행동을 순교로 저항해야만 할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전 재물을 수탈한 자로서 빌라도는 공공연한 도둑질을 행한 죄는 지었을지언정 유다인들에게 우상을 강요하는 죄는 짓지 않았다. 이렇게 빌라도는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유다인들의 저항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었다.




  2.5. 빌라도와 가야파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빈틈없고 강압적이며, 잔인하였으며, 성공한 사람이었다. 재직한 10년 동안 그는 자신에게법과 질서를 유지시키는 탁월한능력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그는 어떤 문제거리가 있을 때 그것이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기 전에 문제의 소지를 없애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효과적인 통치 비결은 정치적인 항의와 종교적인 항의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혁명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의 표적은 동기나 슬로건이 아니라 항의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만약 빌라도의 전략에 빌라도 자신처럼 헌신하는 충성스럽고 유능한 유다인 상대자가 없었다면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가야파가 바로 그러한 상대자였다. 이전의 대사제 가운데 이가이 높은 지위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켰던 사람은 없었다. 헤로데 시대 이후부터 대사제는 통치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임명하고 해임하였다. 대사제의 성의(聖衣)를 정치권력자들이 자물쇠를 채워 보관하였고, 대사제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축제일에만 개봉하였다. 이렇게 대사제들은 애당초부터 꼭두각시 왕이나 총독의손아귀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그러나 가야파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총독을 섬길 수 있는 특별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대사제였다. 빌라도처럼 고압적인 총독 밑에서도 온전히 10년 임기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틀림없이 가야파가 백성들의 분노가 끓어올라 폭력적인 반로마 시위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어떤 심각한 소요가 일어나도 그들의 관계는 금이 가지 않았다. 이것은 작은 불씨가 큰 불꽃으로 번지기 전에 꺼버리는 대사제의 기술을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야파도 혼자 힘만으로는 그의 일을 수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의회, 곧 산헤드린2)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 위원들은 로마 당국에 대항하는 어떤 소요의 주동자가 아무리 결백하고 순수하다 할지라도, 소요가 일어나면 그에따라 심각한 결과들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정치성이 띄지 않은 인물일지라도 그가 도래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설교할 때는 목숨을 내놓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의 회개에의 부름이 너무 설득력이 있어서 군중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어 그의 말을 듣고 희망을 갖는다면, 그의 말이 갖는 힘은 죽음의 입맞춤을 불러들이지 않았겠는가?


 




211.109.137.25 참고1: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이 문서 율법만을 계시하셨다고 믿었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이 두가지 율법, 즉 문서율법과 구전율법을 주셨다고 가르쳤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만약 어떤 산헤드린이 정치적 기준에 따라 재판을 행한다면 참석할 수 있었지만, 만약 종교적 율법의 기준에 따라 재판을 행한다면 그런 산헤드린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산헤드린은 종교적인 근거가 아니라 정치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재판하였다. [02/23-22:39]

빌라도: 빌라도는 폭정으로 시리아의 통치자였던 비텔리우스에 의해 서기 36년에 권좌에서 쫓겨났다. 비텔리우스는 그를 로마 황제에게 넘겼으나 그가 도착하기전에 티베리우스가 죽고 말았다. 그후 전설에 의하면 자살을 했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심판의 대가로 황제로부터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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