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율법학자-바리사이파

 

  3.3.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예수 시대에 있어서 율법학자-바리사이파는 유다교라는 모자이크 속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상감이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었고, 문서율법과 구전 율법에 따라 모든 공적 종교의식이 행해질 수 있도록 규정을 정하는 자들이었다. 즉 종교의 공적인 표현에 관한 한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구전 율법은 모든 유다인들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항상 이런 방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스모니아 혁명(B.C 162-142) 이후부터 비로소 모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조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서열상으로 아론계 사제직에 속해 있었고, 그것은 아론, 엘리아잘, 비느아스, 사독의 혈통을 물려받은 대사제의 감독 하에 있었다. 문서 율법은 아론의 사제직에서 관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에게 선포한 보상과 징벌은 이 세상적인 것이었다.


  그 시대의 율법학자들은 권력이 아니라 지혜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대사제와 그의 동료 아론계 사람들을찬양하여다. 그들은 예수 시대의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과는 같지 않았다.


  이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신참들이었다. 그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다인들을 그리스화하고 다신교화하려는 욕구를 발동했을 때 그 위기에 대응하여 생겨났다. 안티오쿠스는 오니아스 2세를 대사제직에서 해임시켜 에집트로 추방하고 그 대신 처음에는 야손을 다음에는 메넬레우스를 임명함으로써 대사제직 승계에 관한 오경을 규정을 어겼다. 또한 안티오쿠스는 유다인들에게 제우스를 예배하고 그들의 하느님이 주신 율법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유다인들로 하여금 순교의 결과가 무엇일지에 대해 따져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왜냐하면 오경은 보상과 징벌을 이 세상의 일로 국한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개인이 율법에 복종하면 죽고, 율법을 어기면 살 수 있었다. 이러한 일들의 결과로 지도력의 틈과 교리상의 틈이 생기게 되었고,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모세의 자리에 앉음으로써 지도력의 틈을 메웠다. 또 그들은 하느님이 문서 율법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문서 율법과 함께 구전 율법도 주셨는데, 이 이중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영혼의 영생과 몸의 부활을약속하셨다고 선언함으로써 교리상의 틈을 메웠다. 오경에 함축되어 있는 대로 순교는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자신의 이중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계시하셨고, 이 율법을 받아들여 지키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혼의 영생과 몸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었다. 유다 백성 중 압도적인 다수가 기꺼이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랐고,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여 모세의 자리에 앉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전의 아론계 지도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이 율법학자들이라는 새로운 계급을 페루심(perushim: 헬라어로 번역하면 ‘파리사이오’(pharisaio)이고 영어로는 ‘패러시’(pharisees), 즉 분리주의자들, 상식에서 벗어난 자들, 이단자들이라고 혹평하였다. B.C 142년 대회당장이 아론 – 엘리아잘 – 비느아스 – 사독의 직계 후손이 아닌 하스모니아 집안의 시몬에게 대사제직을 수여했을 때, 원로 사제 지도자들은 오직 사독 자손만이 대사제로 봉사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즉 이 계열로부터의 단절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두가이파라고 불렀는데 이 사두가이파의 비난은 유다 백성의 압도적 다수의 주의를 끌지는 못하였다. 유다인들에게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설교한 영혼의 영생과 몸의 부활이라는 기쁜 소식은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문자적 성서읽기보다 훨씬 더 매력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스모니아 혁명기간 동안에 그들이 승리의 주도권을 쥐게 된 그 때부터 예수 시대와 그 이후까지 안전하게 모세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3.4. 권력자들과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의 권력이라는 예복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통치자들과 기꺼이 계약을 맺고자 하였다. 정치 당국자들이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이중 율법을 가르치고 종교상의 공적 표현에 관한 규범과 종교력을 결정하며 영생과 부활에 관한 기쁜 소식을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정치 당국자들에게 세금을징수하고 군대를 모집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생활의 비종교적 영역을 관할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이 원칙은 세속적, 정치적 권력가들에게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꺼이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종교적 자율권을 인정해 주엇다. 그러나 이 원칙이 함축하는 바는 중요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자율권이 침해되지 않는 한, 정치 당국자들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것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당국이 성스러운 영역을 침범하면 그들은 겁먹거나 움추러들지 않고 실제로 순교로써 저항하였다.


  이 계약은 살로메 알렉산드라의 통치 기간 중에 발효되었고 헤로데의 통치기간 동안 유지되었고, 총독이 통치권을 넘겨받았을 때 더욱 강화되었다.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총독의 권한을 승인하였을 때, 그들은 두 영역의 원칙을 해석했던 것이다. 즉 그들은 왕의 것은 왕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린다는 말을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린다는 새로운 정식으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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