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율법학자들
헬라주의 시대의 유대교 역사에서 율법학자들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율법학자들이 기원전 2세기에 형성된 여러 개의 그룹들을 권위있게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원은 포로시대때로 올라간다. 에즈라가 세운 대회당의 남자들로부터 율법학자의 계열이 이어졌다. 율법학자들의 지위가 발전된 것은 헬라주의와의 만남과 대결에서 온 결과였을 것이다. 그들은 성서를 연구하고 해석할때 희랍인들의 정신적인 도구와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말들은 권위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들은 신학적인 질문에는 물론 법률적인 문제에도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보편적인 명망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율법학자들은 가문이나 혈통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아무나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위치에 올라가려면 철저히 공부해야하는데 유명한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예수 당시에 헬렐과 샴마이가 율법학자들 가운데에 가장 뛰어났다. 힐렐은 샴마이와 그의 제자들과 치열한 논재을 전개하며 학파를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힐렐이 내린 법규에 대한 결정은 샴마이의 결정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었다. 힐렐학파의 랍비 가말리엘과 유대 공동체의 재건을 도움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도 유명한 율법학자였다. 기원전 2세기 초에 가장 유명한 선생은 랍비 아키바였다. 그는 바르 코흐바의 반란때에 그들 메시아로 여기고 도왔지만 죽임을 당했다. 랍비 이스마엘도 중요한 인물중의 한 사람이었다.
율법학자들은 바르 코흐바 시대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이러한 재난을 극복하고많은 전승자료들을 정리하였다. 이 일은 랍비 예후다가 정력적으로 추진하여 2세기 말경에 끝낼 수 있었다. 이로써 이후에는 성서의 말씀과 함께 그의 규정들이 공동체의 생활에 있어서 규범적인 의미를 갖는 율법의 해석도 확고하여졌다.
구분 | 사두가이파 | 율법학자 – 바리사이파 | 에쎄네파 |
율법 | 오직 토라만 | 문서 율법과 구전 율법 | 오경과 다른 책들에 계시 |
율법과 제사를 관장 |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 처음에는 모세, 다음에는 여호수아, 다음에는 장로들, 다음에는 예언자들, 그리고 자기들에게 이중 율법을 관할 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주셨다고 믿음 | 일반 사람들과 당시의 열광적인 무리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음 |
구원 | 이 세상에서 의를 보상, 죄악을 응징 | 영혼의 영생과 몸의 부활을 의의 대가로 갚아주시고 사악한 영혼은 지옥의 영원한 고통으로 징벌하실 것으로 봄. | 의로운 영혼이 영생을 누리게 됨. 그러나 몸의 부활은 믿지 않음 |
공통점 | 로마 황제가 아니라 하느님을 그들의 주(主)로 섬겼다. 즉 이들은 하느님에게 멍에로 연결되어 있었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