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동정성
아직까지 예수님의 형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성모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성서학자는 없다. 이 형제가 성 요셉이 전에 결혼했던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사촌들이다. 만일 성모님께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겠는가?
또한 성서에서 예수님의 형제가 한번도 마리아의 자식이라고 불려지지도 않았다. 또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을 보더라도 전혀 그런 언급이 없다. 예수님께 다른 형제가 있었다면 12살 때 과월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을때, 그들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또한 동행할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어렸다면 어떻게 마리아가 순례의 길을 나설 수 있었겠는가?
구약성서에서도 사촌을 가리키기 위해 형제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말과 아람말에서는 사촌을 지칭하는 적당한 표현이 없었기 때문에, <형제>라는 말이 한층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은 의혹을 받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며, 확실히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상세한 기록에 의해서도 잘 증명되고 있다.
1. 예수님의 형제
예수님의 형제로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네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다(마태13,55). 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규명하기는 어렵다. 야고보는, 알패오(마태10,3)를 아버지로 하고 요셉의 어머니이기도 한 마리아(마태27,56)를 어머니로 하는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복음사가 요한에 의하면,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자매지간으로, 구로파스 혹은 글레오파(요한19,25)의 아내이다. 예루살렘의 제2대 주교였던 시몬에 관하여 에제집뽀는, 그가 그리스도의 숙부 구로파스의 아들, 예수님의 사촌이었다고 한다(에우제비오 교회사..)또 에우제비오는 에제집뽀로부터 구로파스가 서 요셉의 친형제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2. 중요한 해석
이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해석은, 알패오와 구로파스를 두 사람으로 하고 이상 네 사람의 사촌을 두 조로 나눈다. 다시 말해서, 야고보와 요셉은 알패오와 그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고, 시몬과 유다는 구로파스의 아들이라고 한다.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의 자매(요한 19,25)이고, 구로파스는 성 요셉의 형제(에제집뽀)이기 때문에, 이 네 사람의 사촌은 외가로 보나 친가로 보나 예수님의 사촌이다.
쁘라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성 요셉의 형제인 구로파스 혹은 글레오파가 첫 번째 결혼에서 시몬과 유다를 낳고, 재혼하여 알패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과부가 되었던 마리아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의자매가 되었다. 이 재혼으로 인하여 야고보와 요셉이라는 두 아들이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재혼설은 확실성이 없다.
휴비는, 성서와 성전에 적합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이 두 사람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기 때문에,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이다. 이 마리아는, 성서의 다른 곳에서 구로파스의 아내라고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알패오와 구로파스는 동일인물이며, 이름 한 가지는 아람말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말, 같은 이름이지만 읽는 법이 달랐다고 말한다. 마리아는 알패오(구로파스)의 아내이다.
또 복음사가 요한은 이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의 자매라고 말하고 있다. 예로니모의 이 말에 따라서, 야고보의 어머니들, 성모 마리아의 언니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상당히 오랜 전통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양친인 요아킴과 안나와의 사이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마리아(성모님)만을 낳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복음사가 요한이 말하는 <자매>라는 말도 사촌자매라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사촌 형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패오, 구로파스의 아내는 그렇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사촌자매였다고 생각된다. 이 마리아와 성요셉의 친형제인 알패오, 구로파스는 예수님의 형제라는 네 사람의 친척이었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의 자매(마르6,3;마태13,56)라고 부르는 여인들의 이름은 복음서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잡다한 전설 가운데에는, 이 여인들을, 때로는 마리아와 살로메 등으로 부르고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당신이 어머니 마리아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특별히 강조할 필요는 없었다. 나자렛에서와 마찬가지로 가파르나움에서도,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또 예수님은 여기서 사촌, 혹은 일반적으로 친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가리켜 “바로 이 사람들이…내 형제들이다”고 하셨는데. 이 말의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해서도 형제라고 표현한 방법이 적당하였다.
4. 성모마리아
4.1.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스도교 초기의 여러 신앙고백문은 성서의 증언에 따라서 마리아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선포한다. 예를 들어서 사도신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고,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431년에 개최된 에페소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선포하였다. 공의회 결정문에서 나타나듯이 이 선포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불분명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 “임마누엘이 참으로 하느님이고, 그래서 거룩한 동정녀가 하느님을 낳으신 분(왜냐하면 그녀는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육화하신 말씀을 육에 따라 낳으셨기 때문이다)이 아니라고 고백한다면 파문될지어다”. 칼체돈 공의회(451)는 이런 에페소 공의회의 가르침을 재확인하였다 “거룩한 교부들의 의견에 따라서 우리들은 한 목소리로 한 분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자 하는 바이다… 그분은 신성에 있어서 세기 이전에 성부로부터 태어나셨다. 그러나 같은 그분이 인성에 있어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셨다”.
그런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마치 마리아가 시간을 초월해서 항상 현존하는 모든 존재의 원초적 근원인 성부(聖父)를 낳았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이 칭호는 에페소 공의회의 지향에 따라서 철저히 그리스도론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강생하신 그리스도가 진정한 하느님이고, 그분의 신적인 본성이 인성과 결합됨으로써 소멸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을 낳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신적인 그리스도를 “육에 따라 낳으셨고”, 그에게 인간 생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이렇게 신성과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를 낳음으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는데, 이런 마리아의 모성을 단지 생물학적-육신적 측면에서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예”라는 응답하였기 때문이다.
고대교부들은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마리아는 몸으로 보다 정신으로 먼저 잉태하였다.”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셨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으로 모친이 된 것이다.
4.2. 원죄에 물들지 않은 잉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 하느님의 영을 통해서 동정으로 잉태하신 어머니라는 신학적 진술은 본래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리스도론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마리아는 원죄의 흔적에 물들지 않았다는 가르침은 직접적으로 이런 역할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중세에는 상당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가 마침내 교황 비오 9세에 의해서 1854년에 믿을 교리로 선포된 이 교리는 성서에서 직접 근거를 찾을 수는 없고, 성서적으로 근거된 가르침의 사변적 전개라고 하겠다. 성서에서 직접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은 성모의 잉태 교리는 종교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이해의 접근이 어려웠지만, 이 교리가 지향하는 신학적 의도를 이해하는 데에는 꼭 넘지 못할 장애물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마리아의 무죄함이란 죄에 물든 인류와 관계를 맺으려는 의향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종말론적이며 궁극적으로 표현한 하느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신앙적 준비 자세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마리아의 무죄한 거룩함은 일차적으로 윤리적 차원의 진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뜻, 그분과의 결합에 자신을 개방하는 마리아의 신앙적 태도(신학적으로 이해된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한 증언이라고 하겠다.
하느님께서는 미래의 구세주를 위해서 마리아를 이런 해악에 물든 실재에서 특별히 보호하셨다. 이런 내용의 무염시태 교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신학의 근본 주제인 하느님 은총의 선행(先行)을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하느님은 역사의 한 순간에 죄로 인한 결과에 빠져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도권을 장악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은총에 의해서(sola gratia) 새로운 인류, 즉 당신의 뜻에 개방되어 있으면서 구원에 헌신하도록 자신을 내어놓는 인류를 만드신다. 이런 하느님의 주도권에 의한 새로운 인류의 창조는 구체적으로 시간적으로 인간 마리아의 삶의 시작과 관련되어 있다. 즉 하느님은 마리아가 자기 스스로 결단을 내리기 이전에 그녀를 선택하셨는데, 마리아는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아서 자신의 신앙적 신뢰(sola fide)를 실현하게 된다.
4.3. 몽소승천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의 지상 생애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그 마지막도 하느님의 행동을 통해서 거룩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DS 3903).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님의 승천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라틴말에서는 이 차이를 분명히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승천(ascensio)”, 마리아는 “받아들임(assumptio)”이라고 구분함으로써, 마리아의 승천에서는 하느님이 이 사건의 능동적 주체임을 분명히 한다. 마리아가 육체성과 함께 전인적으로 완성된 것은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인한 구원의 주도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