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다인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예수께서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은 “유다인이 당신이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어떻게 물을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거부한다. 그렇다면 유다인과 사마리아 사람이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었기에 사마리아 여인이 이런 응답밖에 할 수 없었는가를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역사적인 관점이다.
솔로몬 왕이 사망한 기원전 926년 이후에 에프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 사이에 파벌이 가중되면서 결국 통일 이스라엘 왕정은 남․북 이스라엘왕정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스라엘 왕국은 북쪽에 자리하고, 유다 왕국은 남쪽에 자리하면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각각 수도로 정한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완전히 패망하게 되고, 그 중에 많은 유다인들 즉 지도급 인사들이 남쪽으로 피신해 오게 되는데 피신해 오게 될 때 그들이 형성해 놓은 성서문학을 갖고 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시아 시대에 와서 이런 것이 합쳐져서 모세 오경이 되고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유배를 떠나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본토에 살면서 식민지 민족으로써 살게 되었다. 그리고 북쪽 왕국을 지배하던 사람들은 앗시리아 사람들이었다. 즉, 앗시리아의 이방 신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다. 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다른 민족이 아니라 동일민족이다. 야훼 하느님을 섬기는 동일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앗시리아 사람들에 의해서 영토를 잃은 북쪽 왕국에는 이제 더 이상 야훼 하느님이 유일신으로 머물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히려 앗시리아 사람들이 섬겼던 신에 종속된 그런 신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앗시리아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그 땅을 점령하게 되고 이방 민족들의 종교와 자연스럽게 혼합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야훼가 유일한 신으로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이 종교적인 감정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고, 남쪽에 있던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을 더 이상 유일한 하느님으로 섬길 수 없는 저 민족과는 우리가 같이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종교적인 감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587년에 남쪽 왕국도 패망하게 되고, 고레스 칙령에 의해서 538년에 본토로 돌아오게 되고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힘을 받아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이 때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다인들 사이의 적대감은 그렇게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종교적인 문제로만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남쪽 왕국에 살던 유다인들이 유배로부터 돌아와서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 시켐 남쪽에 있는 그리 짐 산에 나름대로 성전을 증축을 하였다. 그러면서 이 그리 짐 산이야말로 성조들의 산이다.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이다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이 그리 짐 산을 중심으로 모였던 것이다.
기원전 621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신명기 12장의 내용을 선포하고 있는데 여기에 유일한 성전에 관계되는 율법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는 것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세우실 산, 당신이 머무실 곳으로 설정하신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것을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 짐의 성전이다라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다인이 이것을 볼 때 모세의 율법을 아주 내놓고 모독하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을 제외하면은 이스라엘 신앙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 오경만이 선조들이 자신들에게 물려준 합법적인 유산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모세와 흡사한 예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성서 해석은 유다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관계를 적대화하는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성서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즉 성서를 공개적으로 모독하는 것이기에 내재해 있던 종교적인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해서 예수님 시대에 와서는 거의 적대적인 관계에 까지 왔다. 여기서 보면 이 예수님 시대에 얼마나 적대 관계에 있었는가하면 요한 복음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8,48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의 눈으로 볼 때에 마귀 들린 사람들이다. 마귀 들린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벌받은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민족적인 감정이 노골화되있던 시점에서 요한 복음에서는 주석을 붙이기를 유다인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었다라고 완곡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이것은 선교적 관심사를 드러내주는 표현이다.
2)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사마리아 사람들
그 다음에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이것이 그리스도교공동체에 의해서 창출된 문학이기 때문이다. 오직 공관복음에서는 루가복음 만이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전해주는 그런 부분에서만 나타난다. 특별한 관심은 표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행전 8장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해서 필립보가 복음을 전하고, 또 필립보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을 베풀어서 예루살렘 모교회와 어떤 연계를 맺게 하는데, 그 연계를 맺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모교회로부터 사명을 받고 사마리아로 파견을 받게 되는 내용이 하나 전해지고 있으며, 마태오 복음서에서 보면은 제자들을 파견하면서 10장에서 사마리아 고을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만을 찾아가라고 하면서 사마리아를 복음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소란을 야기시켰는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내용을 미루어 보아 우리가 다루고 있는 요한 복음 4장은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사마리아 지방에서의 선교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