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보면 헤로데와 헤로디아가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데 세례자 요한이 그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릅니다.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자 헤로디아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헤로데를 설득합니다. 결국 헤로데는 요한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죽었을 때, 그 영토는 세 아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아르켈라오는 유다를 차지하고,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페레아를 차지하고, 필립보는 트라코니티스와 이두레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데 대왕에게는 또 한 아들(이 아들도 헤로데라고 불렸고, 마태오와 마르코에 따르면 필립보라고 불렸다) 헤로데 필립보는 팔레스티나 바깥 외지에 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토를 분배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마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로데 안티파스가 로마로 가는 도중에 헤로데 필립보를 방문하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헤로데 필립보는 아리스토 불루의 딸, 헤로데 대왕과 마리안네의 손녀, 자기의 조카 딸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고 있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아레타 왕의 딸을 아내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하는 동안에 그 집안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생의 아내(계수)가 되는 헤로디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결혼을 신청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즉시 응하였습니다. 권력이 없는 헤로데 필립보 보다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헤로데 안티파스가 자신에게 더 큰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로마에서 돌아 오자마자 아레타 왕의 딸을 쫓아 내고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아레타 왕의 딸은 자기 부왕의 궁전이었던 베트라로 달아났습니다. 이 사건이 정치 문제화할 것을 헤로데 안티파스는 미리 생각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레타 왕은 자기 딸 때문에 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헤로데 안티파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안티파스 사건은 동생의 아내이며 자기의 조카벌 되는 헤로디아 사이에 간통죄가 될 뿐 아니라, 레위기(18,1-8)에 따르면 근친상간의 죄도 성립하였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세례자 요한이 체포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세례자 요한의 선교가 폭동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엄중한 비난의 소리가 그 체포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