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 계약의 중요성
시나이 계약은 모세오경의 중심 사건이다. 탈출 1―18장은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거룩한 시나이산까지 가는 여정을 다루고, 탈출기의 나머지 장(19―40장)과 레위기 전체, 그리고 민수기 처음 열 장은 이스라엘이 시나이산에 머물면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내용을 다룬다. 모세오경에서 시나이 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계약은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준비된다. 야훼 전승과 엘로힘 전승에 따르면, 시나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세 15장).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은 이사악과의 계약(창세 26장)과 야곱과의 계약으로 갱신되며(창세 28장), 마침내 시나이산 위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으로 봉인된다(탈출 24장).
사제계 전승은 시나이 계약의 원천을, 아브라함 시대보다 훨씬 더 이전인 천지창조로 거슬러 올라가 하느님께서 창조물을 대표하는 첫 남녀에게 내리신 번성의 복에 둔다(창세 1,28). 하느님께서는 이 번성의 복을, 홍수로 세상을 벌하신 뒤에 노아에게 내리신 복으로 갱신하시고(창세 9,1-7),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통하여 이 복의 실제 내용을 자손의 번성과 가나안 땅의 소유로 밝히신다(창세 17,1-8). 여기서 우리는 복을 내리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언제나 계약과 연결되고 계약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하신 당신의 약속을 모세를 통하여 장엄하게 선포하심으로써 새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신다. “나는 야훼이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느님으로 나타났으나, ’야훼‘라는 내 이름으로 나를 그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또 나는 가나안 땅, 그들이 나그네살이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계약을 세웠다. 그리고 나는 이집트인들이 종으로 부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나의 계약을 기억하였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나는 주님이다. 나는 이집트인들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내고, 그 종살이에서 너희를 구해 내리라. 팔을 뻗어 큰 심판을 내려서 너희를 구원하리라. 그리고 나서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느님이 되어 주리라.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이집트인들의 강제 노동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 그런 다음 나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리러 가서, 그 땅을 너희 차지로 주리라. 나는 주님이다‘”(탈출 6,2-8).
자손의 번성과 땅의 소유에 관한 주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큰 민족이 됨으로써 성취되었다. 신명기에서 열왕기에 이르는 신명기계 역사는 시나이 계약과 더불어 하느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계약을 부각시키는데. 두 계약은 서로 다른 계약이 아니라 연결된 계약이다. 다윗과의 계약은 왕정제도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임금이 중개자로 들어섰기 때문에,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중개자로 내세워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이번에는 다윗을 중개자로 내세워 새로운 왕국의 백성들과 계약을 맺으셔야 했다. 다윗과의 계약 역시 아브라함과의 계약처럼 축복을 약속하신다. 다윗의 자손들이 왕좌에 앉아 영원히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영원히 굳건해질 것이다.(2사무 7장).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당신의 아들로 삼으시겠다는 약속도 덧붙이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2사무 7,14). 이런 약속이 담긴 다윗과의 계약은 시편2장과 110장 등의 메시아 본문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과 메시아로 선포하는 신약성서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한편 신명기계 문헌은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에서 주님께 충성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약속된 땅에서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는 주제는 여호 23―24장의 세겜 계약과 2열왕 22―23장에 나오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에도 반복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들이 하느님께 충성하지 않고 자주 계약을 깨뜨렸음을 증언한다. 심지어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순간에도 백성과 아론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탈출 32장). 이스라엘의 불충으로 하느님과 그들 사이의 계약은 처음부터 깨질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시나이 계약의 경우, 계약이 깨진 뒤에 그 저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삼천 명이 레위인들의 칼에 맞아 쓰러져 죽었다(탈출 32,26-28). 그리고 계약은 다시 맺어져야 했다(탈출 34장).
시나이 계약의 정신은 예언서에도 이어진다. 아모스와 호세아 예언서는 모시나 시나이산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계약의 정신을 자주 반영한다. 후기 예언서인 예레미야서와 에제키엘서의 약속과 심판 신탁에는 시나이 계약이 언제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이처럼 시나이 계약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관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규범으로 자리잡는다. 계약의 이행 여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여호수아와 판관 시대에 민족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왕정 시대를 다루는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에서는 이스라엘 임금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에는 시나이 계약을 바탕으로 유다교의 개혁과 쇄신이 이루어진다.
시나이 계약은 더 이상 계약이 깨질 위험이 없을 때 확립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시나이 계약의 확립을 새 계약으로 묘사한다. “그 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 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야곱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이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올 때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그들의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그 시절이 지난 다음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게 될 계약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 가슴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써 넣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그 때에는 더 이상 제 이웃이나 동기간에 서로 ‘주님을 알아 모셔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 모두가 다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나를 알아 모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예레 31,31-34).
예레미야의 예언은 6백여 년이 지난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온 인류와 맺으신 새 계약에서 성취된다. 신약성서에서 계약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만찬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수께서는 최후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빵을 당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내어주신다. 이는 당신 자신을 과월절에 바치는 빠스카 양과 같게 보신 것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다음 날(유다인 날짜 계산법으로는 같은 날)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당신의 목숨을 빠스카 양으로 내주셨다. 복음서 저자들은 특히 십자가의 피흘림에 주목한다. 시나이 계약에서도 피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모세는 짐승의 피 절반을 제단에 뿌려 제단을 정화한 다음, 계약의 내용을 백성에게 들려 주고 나머지 피는 백성에게 뿌리며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 24,8). 레위기에서 짐승의 피는 속죄예식에 쓰였다(레위 17,11). 곧 어떤 사람이 계약의 규정을 어겼을 때에 그는 짐승의 피로 자기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계약의 위반에 따르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짐승의 피와 관련된 탈출기와 레위기 두 대목은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태 26,28;병행: 마르 14,24; 루가 22,20). 바울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율법의 저주를 스스로 맡아 지셨다고 말한다(갈라3,13). 그리스도께서 맺으신 새 계약이 옛 시나이 계약의 저주를 영원히 철회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