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정착-실제 역사와 성서 기록

 

실제 역사와 성서 기록




  이상의 다양한 가설들을 성서의 기록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위의 네 가설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유일한 가설로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다. 네 가설들이 부분적으로는 모두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실제 상황을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가 저마다 달리 체험하고 다양한 전승으로 엮어 다음 세대에 전하였을 것이다. 이 다양한 전승은 신명기계 역사가의 손을 거쳐 여호수아서와 판관기에 나오는 형태의 이야기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과 관련하여 고고학의 발굴에 큰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런데 많은 고고학의 증거자료들이 팔레스티나 도시들의 파괴를 시사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곧바로 가나안 정복에 관한 성서 본문의 기록과 연결하려 할 때는 무리가 없지 않다. 먼저 예리고의 파괴는, 1930-1936년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원전 1385년에 일어난 지진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흙무덤을 탐사한 결과 그 동안 여호수아 시대에 무너졌으리라고 짐작했던 예리고 성벽은 이미 기원전 2200년경에 파괴되었음을 고고학의 발굴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기원전 13세기 말에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의 고원지대를 정복했다는 전승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입증하는 고고학적 증거들도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여호 10,31-33에 나오는 라기스는 기원전 1220년경에, 그 밖에 여호수아가 정복했다고 하는 하솔,베델,드빌, 이글론 등의 성읍들도 기원전 13세기에 심하게 파괴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판관1장의 기록대로 여호수아의 지휘를 받던 이스라엘인들이 평원의 성읍들이 아니라 주로 산악지대의 성읍들을 공격했을 가능성도 고려해 봄직하다. 이는 판관기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주님께서 유다 지파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악 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야의 주민은 쫓아내지 못하였다.그들이 철병거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판관1,19).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의 무리는 그 수효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처럼 적은 수의 무리가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조직적으로 훈련받은 군사들을 지닌 가나안 평지의 도시들을 쉽사리 공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호전적인 요셉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인들은 주로 게릴라 전법을 사용하여 인구가 적은 산악지대의 성읍들부터 공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성곽도시들 내에 흩어져 살던 소외 계층인 하파루들이 새로운 침략자인 히브리인들에게 유리하도록 안에서 동조반란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하피루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인 야훼가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천민들을 해방시켰다는 사실에 큰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분이 이집트에서 몇몇 부족들에게 하신 위대한 일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그분을 믿는 다른 모든이에게도 하실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하게 압축되고 과장된 요소들이 많기는 하지만 여호수아서의 기본적인 주장, 곧 하니므이 도우심과 여호수아의 지도에 힘입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 가나안 정복이 상당한 기간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판관 1장의 보고도 근거있는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단순한 군사력이나 전략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자신들을 구출해 주신 야훼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정복하였다고 믿었다는 점이다.




  정복사업이 일단 마무리되자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모든 부족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광야에서 방랑하던 무리들과 이미 오래 전에 팔레스티나에 정착한 히브리인들이 세겜에 모인 것이다.(여호 24,11-28). 여호수아는 세겜에 모인 모든 부족에게 가나안 땅의 신들을 섬길 것인가 야훼를 섬길 것인가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야훼를 선택하고 야훼와 장엄한 서약을 맺는다. 이리하여 가나안 정착 이전에 야훼를 믿지 않던 부족들도 야훼의 신앙인들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장엄서약에도 아랑곳없이 히브리인들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뿌리내린 토속 종교들, 곧 바알 신앙을 비롯하여 다른 풍산신 숭배 사조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였다.


  성서의 기록대로라면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잔인한 살상과 약탈로 그 곳 원주민들을 궤멸한 것처럼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몇몇 저항 세력들만 응징하였을 것이다. 오히려 문화적으로 수준이 낮은 히브리인들로서는 비교적 고도의 농경문화를 누리던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으면서 서서히 그들과 동화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가나안의 풍산신 숭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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